유사역사학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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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풍설서] 가족관계까지 일러바치는 VOC? (79-81)

▲찰스 2세와 브라간사의 캐서린리턴 호 사건네덜란드 풍설서는 실제로 막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던걸까? 영향을 미친 것이 확인되는 사례로, 리턴 호 사건이 있다.1673년,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일본과 통상 재개를 요구하러 나가사키로 리턴 호(The Return)를 파견했다. 히라도(平戸)에 있던 상관을 1623년에 철수한 이래...

[네덜란드 풍설서] "원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29-31)

"원문"은 존재하지 않았다카타기리 씨[1]는, 이 사료를 같은 해 막부에 제출한 일본어 풍설서와 비교대조했다. 거기에 따르면, 순서가 일치하지 않는 조항, 초안에는 있고 일본어 풍설서에는 없는 조항, 초안에는 없는데 일본어 풍설서에는 있는 조항이 있다. 카타기리 시는, 이 풍설서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부분 DEF에 대해, 초안에서 일본어 풍설서...

[네덜란드 풍설서] 또 하나의 초안 (26-29)

또 하나의 초안'통상적인' 풍설서의 초안이라고 생각되는 사료가 또 한 점 현존한다. 1833<텐포天保 4>년 풍설서의 원본이 된 문서로, 일본어 네덜란드어가 섞여있다. 통사 나카야마(中山) 가문에 전해지던 것으로, 현재는 시볼트 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어 부분을 남기고, [ ] 안에 일본어 번역을 달았다. 의미가 통하도록 ...

[네덜란드 풍설서] 부교 나으리의 오코노미에 맞춰 제출? (18-20)

통사가 남긴 기록대통사(大通詞) 미나라이 바바 타메하치로우(見習馬場為八郎)가, 1814(분카文化 11)년에 연번통사(年番通詞)로서 수행한 일을 기록한 "만기장(萬記帳)"을 보도록 하자(화력和曆 6월 23일 조). 나가사키에 있던 다수의 네덜란드 통사 중 상위의 대통사, 소통사 중 한 명씩 교대로 연번(年番)이 되어, 그 해 네덜란드인과의 관계를 관장했다...

[네덜란드 풍설서] "원문"이 존재했다는 통설 (16-18)

"원문"이 존재했다는 통설풍설서에는, 원래 네덜란드어 문서가 있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측에는 "풍설서"에 해당하는 특정한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식(nieuws)" 따위의 몇몇 일반적인 용어가 쓰였다. 그렇다는 것은, 네덜란드 측에는 특별한 문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해서 이타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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