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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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타 풍설서" 항목 정리

1. 근세 동아시아를 찾은 스타킹.나폴레옹의 모자, 그리고 조상님들의 스타킹 사랑?스타킹으로 대동단결!2. 마츠카타 후유코의 "네덜란드 풍설서".松方冬子, オランダ風説書, (中公新書, 2010)원문 논란 (16쪽-31쪽)"원문"이 존재했다는 통설 (pp. 16-18)부교 나으리의 호불호에 맞춰 제출? (pp. 18-20)바타비아에서 미리 써서 갔을까? ...

"서양 근대"라는 새로운 위협 (136-139)

"서양 근대"라는 새로운 위협그러한 만성적 정보 부족 속에서 나가사키 부교나 통사들은 러시아 선박이나 영국 선박의 승무원에게도 세계 정세를 질문했다. "서양 근대"의 물결에 접촉하는 동시에 막부는 네덜란드 풍설서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원을 손에 넣은 것이다. 러시아 선박이나 영국 선박이 새로운 정보제공자로서 나타난 이후로는 네덜란드인도 거짓말을 ...

거짓말을 하는 상관장 (134-136)

거짓말을 하는 상관장1809년 2월, 에도에 가있던 통사는 상관장에게 질문할 내용을 로쥬(老中)로부터 극비로 지시받아 돌아왔다. 거기에 기반해, 막부 내에 퍼지고 있던 소문에 대한 해명을 구하기 위해 통사는 두프를 찾아왔다. 그 골자는, 네덜란드와 네덜란드 식민지가 이미 영국인에게 정복되었고, 또 수 년 간 일본에 온 아메리카 선박은 전부 영국 소유라는...

레자노프 내항 예고 정보 (130-132)

레자노프 내항 예고 정보러시아 사절 레자노프의 내항은, 그보다 2개월 정도 전에 네덜란드 상관장이 나가사키 부교에게 알렸다. 상관장 두프의 일기, 1804년 8월 8일 조를 보자.배가 도착한 후 나는 즉시 고나이요카타(御内用方) 대통사인 나카야마 사쿠사부로(中山作三郎)와 이시바시 스케자에몬(石橋助左衛門)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넸다. "프랑스 공화...

철수를 검토한 VOC (123-125)

일본 상관에서 철수를 검토한 VOC1801년, 런던에 있던 티칭이 친구인 탄바 후쿠치야마(丹波福知山) 번주, 쿠츠키 마사츠나(朽木昌綱)에게 보낸 개인 서신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쿠츠키 마사츠나는 일본 굴지의 네덜란드어 능력자였다. 이 편지도 네덜란드어로 쓰였다.제가 중국에 체류하던 사이 유럽에서는 큰 전쟁이 발발하여, 저를 맞이하러 올 예정...

협상패로 쓰인 풍설서 (121-123)

무역 교섭의 협상패로 쓰인 풍설서1780년에 제4차 영란전쟁이 발발했다. 그로 인해, 네덜란드 선박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 또는 아시아 역내에서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았다. 그 결과, 일본 무역에 돌아갈 배가 부족하게 된다. 더욱이, 1787년부터 시작한 칸세이 개혁(寛政改革)의 일환으로, 1790년 이후 나가사키 무역은 "반감 무역(半減商売)"으로 정해...

[네덜란드 풍설서] 캔디 왕국의 시나몬 전쟁 (116-118)

일부만 전한 실론의 정세그러나 같은 시기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일은 1765년의 네덜란드 풍설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1765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실론 섬 캔디(Kandy)의 왕, 키르티 스리 라자싱하(Kirti Sri Rajasinha)와 전투를 벌여 승리하였고, 수도를 점령하였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이 전쟁에 개입하려 하였으나, ...

[네덜란드 풍설서] 사라져가는 가톨릭 세력의 공포 (110-113)

사라져가는 가톨릭 세력의 공포1690년에서 1715년까지는 대개 예년과 같이 시암에서 오는 소식 만을 전하는 풍설서가 작성되었다. 그 중 몇 편은 아예 "시암 풍설"이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시암 정보에 특화된 풍설서가 보이지 않는다.한 가지 이유는, 1715년의 정덕신례(正德新例)로 인해 일본에 올 수 있는 네덜란드 선박의 수가 연 ...

[네덜란드 풍설서] 가족관계까지 일러바치는 VOC? (79-81)

▲찰스 2세와 브라간사의 캐서린리턴 호 사건네덜란드 풍설서는 실제로 막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던걸까? 영향을 미친 것이 확인되는 사례로, 리턴 호 사건이 있다.1673년,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일본과 통상 재개를 요구하러 나가사키로 리턴 호(The Return)를 파견했다. 히라도(平戸)에 있던 상관을 1623년에 철수한 이래...

[네덜란드 풍설서] 또 하나의 초안 (26-29) & 원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29-31)

또 하나의 초안'통상적인' 풍설서의 초안이라고 생각되는 사료가 또 한 점 현존한다. 1833<텐포天保 4>년 풍설서의 원본이 된 문서로, 일본어 네덜란드어가 섞여있다. 통사 나카야마(中山) 가문에 전해지던 것으로, 현재는 시볼트 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어 부분을 남기고, [ ] 안에 일본어 번역을 달았다. 의미가 통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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