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하스다 타카시] 주인선 무역・니혼마치 관련 지도 고증 (3)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주석은 전부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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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여기서는 주인선 무역의 시대에 해당하는 시대의 베트남 각종 지명 표기에 대해 정리하지만, 그 전에 베트남어에서 고유명사 표기의 특징을 확인하도록 하겠다. 베트남 지명이나 고유명사 (사원 및 사당 등)에서는, 한자로 쓰고 한월음(漢越音, 베트남 한자음)으로 읽는 한자명(뗀 쭈, tên chũ)와 베트남어 고유어를 주로 쓰는 구어 이름, 속어명(뗀 놈, tên nôm)이 있다. 뗀 놈의 경우, 종종 한자표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쭈놈으로 표기할 수 밖에 없고, 어순도 베트남어 어순이 되는 경우가 많다.[7] 정확히 대응하지는 않지만, 浅草寺를 "센소우지"와 "아사쿠사데라"라고 2가지로 읽는 것과 비슷하다. 

17세기 중엽의 시점에서 존재한 것은 여조(黎朝) 대월국(大越國)이다. 대월(大越, Đại Việt)이라는 국호는 스스로를 부른 이름이지만, 중국이나 일본 등 한자문화권과 교류할 때는 당나라 안남도호부에서 유래해 역대 중화왕조가 부른 국호 "안남(安南, An Nam)"을 썼다.[8] 여조 베트남은 황제는 실권이 없고, 왕을 칭하는 정(鄭) 씨가 최고 권력자였다. 이 때문에 정씨 정권이라도 불린다. 그러나 정씨와 대적하는 완씨가 순화(順化)를 거점으로 두고 그 이남[9]의 지역을 지배하여, 여조 황실을 섬기면서도 독립세력으로 존재하였다. 다시 말해, 정치권력은 사실 상 둘로 분열되어있었던 것이다.[10] 또한, 현재 빙투언, 닝투언 성 지역에는 참파가 존재했고, 그보다 남쪽으로 바리아-붕타우 성 이서의 지역에는 캄보디아의 세력권이었다. 그러나 17・18세기를 통틀어 남진을 이어나간 완씨의 압박으로 인해, 이들 지역은 서서히 완씨의 영토로 편입되어갔다. 

[8] 일본 국내에도 안남(安南)을 통용하는 경우는, 모모키 시로우(桃木至朗)「근세 베트남 왕조의 '우리나라'」 키무라 히로시(木村汎), 응우옌 주이 중(Nguyen Duy Dung), 후루다 모토오(古田元夫) (편) 『일본 베트남 관계를 공부하는 사람을 위해』 (世界思想社, 2000년), 18-39쪽.

[10] 완씨의 입장에서 쓴 사료에서는 정씨 측을 "북하(北河)", 완씨 측을 "남하(南河)"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또한 구어에서는 전자를 당 응오아이(Đàng Ngoài, 바깥쪽), 후자를 당 쫑(Đàng Trong, 안쪽)이라고도 부른다.

현재의 하노이에 해당하는 지역의 당시 정식명칭은 동경(東京, Đông Kinh)이다. 서양 사료에서 정씨 정권 하에 있는 지역 및 그 지역을 지배하는 국가를 가리키는 "통킹(Tonkin / Tonking)"은 여기서 유래한다. 한편, 구어로는 께 쩌(Kẻ Chợ, 시장 지역)라고 불리었고, 서양 사료에도 종종 보인다. 나가즈미 지도, 키무라 지도, 아라노 지의 "케쵸우"라는 것은 이것을 가리킨다. [11] 또한, 리조(李朝) 이래의 승룡(昇龍, Thăng Long)도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일본 사료에는 완씨정권 및 그 지배 하에 있는 지역을 "교지(交趾)" 또는 "광남(廣南)"이라고 적고 있다. 교지는 유명한 "다옥 교지 무역 도해 회도(茶屋交趾貿易渡海繪圖)"에 "하내(河內)"라고 되어있듯이, "코우치(こうち)"라고도 읽는다. 이것은 한나라 때 홍하 삼각주에 설치한 교지군에서 유래하여, 10세기 베트남 독립 후에도 베트남 전의 별칭으로 안남과 함께 쓰인 용어다. 한편, 서양인은 완씨 지배 하의 지역을 "코친차이나(Cochinchina)", "코치시나" 등으로 불렀다. [12] 일본사료에서 중부베트남에 자리잡은 완씨 영토를 가리키는데 "교지"를 쓴 것은, 서양사료의 "코치시나", "코친차이나"를 옛 한문 문헌(漢籍)에 보이는 "교지(交趾)"라는 한자로 대입한 새로운 용법이라고 생각한다. 키무라 지도에서 베트남 남부에 있는 "코-친(コーチン)"이라는 카타카나 표기는 아무래도 적절한 표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위치도 참파 대신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지지나(交趾支那)"라는 표기는 필자가 아는 한 동시대 사료에 존재하지 않는다.[13]

 
[12] 말레이어 쿠치 치나(Kuchi China)를 음차한 것으로, 쿠치는 교지(交趾)의 고음(古音) 내지 광동어음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전반에 성립한 토메 피레즈의 "동방제국기"에서는 베트남 전체를 가리키며, 정씨와 완씨의 분립/대립에 따라 후자 만을 가리키게 되었으나, 로홈(Michel van Lochom)의 "아시아 지도(Carte de l'Asie" (1640년) 등, 베트남 전체 및 통킹을 주로 가리키는 사용법도 남았다.

안토니 리드 "대항해시대의 동남아시아 2권 확장과 위기" (히라노 히데아키・타나카 유우코 번역, 호세이대학출판국, 2002년), 459쪽 주석1.
토메 피레즈 "동방제국기" (이쿠타 시게루 등 역주, 이와나미쇼텐, 1966년), 227-228쪽.
Li Tana and Anthony Reid eds., Southern Vietnam under the Nguyễn: documents on the Economic History of Cochinchina(Đang Trong), 1602-1777. (Singapore: ISEAS, 1993), pp. 2-3.

[13] 베트남을 식민 통치한 프랑스는 19세기 말에 응우옌 왕조 영토를 보호령 통킹(東京), 보호국 안남(安南), 직할식민지 코친시나(交趾支那)로 삼분하였다. 각각의 이름은 본고에서 다루듯이 근세 이전으로 소급되지만, 이들 이름이 가리키는 지리적 범위의 직접적 유래는 19세기 응우옌 왕조의 북기(北圻), 중기(中圻), 남기(南圻)라는 지리 행정적 구분이다. 


명나라 사람 장섭(張燮)의 『동서양고(東西洋考)』는 "교지(交阯)"[14]를 베트남 전체에 대입해, 그 일부인 완씨 영역을 "광남(항)"이라고 부른다. [15] 청나라 기록에도 완씨 영역을 광남이라고 한 것이 다수 있다. [16] 네덜란드 사료는 "뀌남(Quinam)을 쓰고 있으나, 것은 광남의 중국어 남경음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17] 일본사료에 보이는 "광남"에도 "쿠이나므クイナム"라고 읽는 것과 "쿠와우난くわうなん(코우난こうなん)"이라고 읽는 두 가지가 있다. [18]

[14] 교지(交趾)와 교지(交阯)는, 양쪽 모두 예로부터 쓰여왔으나 일반적으로는 교지(交趾)를 많이 쓰는 편이다.


완씨 영역은 순화(투언 호아: 현재의 꽝빙 성과 트아 티엔-후에 성)와 광남(꽝 남: 현재의 꽝남 성 및 다낭 중앙직할도시 이남의 지역)이라는 2 지역으로 나뉜다. 일본사료에 보이는 "순화(順化)"는 "손하ソンハ", "스노하이スノハイ" 따위로 읽힌다. 이와오 세이이치는 서양사료의 세노아(Senoa), 시노아(Sinao), 신호아(Siñhoa) 등에 대응하여, 모두 투언 호아(Thuận Hoá)를 음차한 것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베트남어의 쓰 호아(xứ Hoá)의 음차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22] 완 씨의 본거지는 일관되게 순화에 있었으나, [23] 상술한 대로 완씨 영역 전체를 "광남"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존재한다. 광남에는, 완씨 영역 최대 교역항인 호이안(Faifo)[24]가 존재했기 때문이다.[25]

[22] 교지(交趾)와 교지(交阯)는 예로부터 혼용되어왔으나, 일반적으로는 교지를 쓰는 경우가 많다. 


위와 같이, "안남"이나 "교지" 등의 지명이 가리키는 범위는 복수의 개체이기 때문에 용례를 개별로 검토할 필요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주인장에 기록한 도항지로 한정한다. 주인장에 기록된 도항지 및 실제 주인선의 목적지에 대해서는 이제껏 이와오 세이이치의 『신판 주인장 무역사의 연구(新版 朱印船貿易しの研究)』 127쪽의 표 2번(연차별 지방별 도항 주인선 선수 표)가 많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에 한정하더라도 이 표는 171쪽 표 4번(주인선 도항지별 집계표)과 별도의 설명도 없이 일부 수치가 불일치하는 등 불충분하거나 불친절한 점이 있기에 그 점을 보충하고자 한다. 주인선 무역 시대의 초기에는 도항지로서 안남(安南), 교지(交趾), 동경(東京), 순화(順化), 광남(廣南), 가지안(迦知安), 천남국(天南國)이 보인다. [26] 안남(安南)에는 정씨 영토로 도항한 경우와 완씨 영토로 도항한 경우 모두가 포함되지만, 1611년에 발급이 중단된다. 이를 대신하여 등장하는 것이 교지(交趾)다. 1612년 이후는 정씨 영토는 동경(東京), 완씨 영토는 교지(交趾)라는 구분이 정착하고, 전체 수량으로 보더라도 2곳이 다른 곳들을 훨씬 뛰어넘는 다수를 차지한다.

순화는 표 2번에서는 1이지만, 표 4번에서는 2로 나와있다. 이는 케이쵸우慶長 11년(1606) 9월 19일부 천남국 행 주인장(하라 야지에몬原弥次右衛門에게 발급)이 실제로는 "스노하이"로 항해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27] 4번 표에서는 순화로 계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남은 2번 표에 보이지 않지만, 본문에서 언급하였기 때문에 [28] 교지로 계산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2번 표는 한눈에 망라하게끔 집계한 것으로 보이면서, 이와오가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숫자를 계산한 부분이 있기에 주의가 요구된다.[29] 가지안 행 주인장은 케이쵸우 9년(1604)의 한 통 밖에 안 나왔지만, 이것은 베트남어 께 찌엠(Kẻ Chiêm, "참족 사람의 땅"이라는 뜻)을 적은 것이기 때문에 호이안 등 현재 꽝남 성 및 다낭 중앙직할시 주변, 또는 그 중심지에 있는 광남영(廣南營)을 가리킨다. [30]

[26] 점성 행 주인장도 실제로는 완씨 지배하의 항구로 도항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여기서는 배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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