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하스다 타카시] 주인선 무역・니혼마치 관련 지도 고증 (1)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지도 1: 키무라 지도] 키무라 나오키 「근세의 대외관계」
『이와나미 강좌 일본역사 근세 2』, 이와나미쇼텐, 2014년), 119쪽


[지도2: 아라노 지도] 아라노 야스노리 편저 『일본의 시대사 14 에도막부와 동아시아』 (요시카와코우분칸, 2003년), 31쪽




주인선 무역・니혼마치 관련 서적 소재 지도 
베트남 부분의 표기에 대해


하스다 타카시(蓮田隆志)


I

이번에 간행을 시작한 『이와나미 강좌 일본역사』 근세 2편에는 키무라 나오키(木村直樹)의 「근세의 대외관계」라는 논고가 있고, 그 119쪽에 「주인선 기항지와 일본인 마을・화교 마을」이라는 지도가 게재되어있다. [지도1 : 키무라 지도] 여기에 따르면, 「케쵸우」(현재의 하노이)에 화교 활동지가 있었고, 홍하(紅河 sông Hồng)을 낀 연안에 「루-킹」이라는 별도의 지역이 있어, 그곳에 「일본인 재주지」가 존재했던 것으로 되어있다. 지도의 출전은 아라노 야스노리(荒野泰典) 편저 『일본의 시대사 14  에도막부와 동아시아』(요시카와코우분칸, 2003)으로 되어있다. [지도2 : 아라노 지도]

이 "일본인 재주지 루-킹"의 실체에 대해, 필자는 오래도록 의문을 가졌으나 추궁하지 않은 채로 두었다. 그리하였던 것은, 여기에 해당하는 지명이 떠오르지 않았을 뿐더러, 17세기 중엽 통킹 정권에 개입하며 활약한 상인, 와다 리자에몬(和田理左衛門)[1]이 현재는 요업(窯業)으로 유명한 하노이 건너편 연안 마을, 밧짱(Bát Tràng, 鉢塲)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냈음을 현지의 가보(家譜)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2], 시대도 일치하기 때문에, 서양 사료에 그러한 기록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배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필자는 아라노 야스노리 선생님께 이 사안을 질문할 기회를 얻었다. 본고에서는, 그 자리에서 판명한 바를 소개함과 동시에, 이 기회에 대표적인 주인선 무역・니혼마치 연구서에 수록된 지도의 베트남 부분에 관하여 현재의 연구상황을 정리하고, 정정 및 주석을 더하고자 한다.

이들 지도는 중고등학교의 (일본사와 세계사 모두를 포함한) 역사교육 및 대학 교양강의용 교재 작성, 전문분야 밖의 사람이 교과서 및 개설서를 집필할 때 의외로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양(南洋) 니혼마치 및 주인선 무역의 연구는 일본사와 (동남아시아 각국사 뿐 아니라 중국사 지식도 필요한) 동양사, 서양사(동서교섭사)가 겹치는 흥미진진한 영역임에도, 전후(戰後)에는 어떤 분야에서도 비주류(傍流)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개별 사실확인 단계에서 연구 성과가 서로 반영되기 어렵고, 전전(戰前)부터 오류가 그대로 이어지는 일조차 있다.[3] 사실 이 점은, 한번 출판하면 수정이 어려운 학술서 보다도 정기적으로 개정하는 중고등학교 지리 역사 과목의 교재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그 성격상 "수정된 결과" 만 보여지고 그 근거가 명시되는 일은 대체로 기대하기 어렵다.[4] 본고는 베트남 부분에 한정하지만, 가능한 한 자세히 해설을 더함으로써, 고전적 연구의 어느 부분이 지금까지도 가치를 지니고, 어느 부분이 변경되어야 하는지를 명시하고자 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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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실은 나가즈미 요우코(永積洋子), 『주인선(朱印船)』 (吉川弘文館, 2001년), 209-211쪽 참조.

[2] 판 다이 조안(Phan Đại Doãn), "17세기 베트남 - 일본인 가족에 대하여: 밧짱의 "완씨가보(阮氏家譜)"를 통해" (오오니시 카즈히코大西和彦, 번역), 사쿠라이 키요히코(櫻井清彦), 키쿠치 세이이치(菊池誠一) 편저 『근세 일본 교류사: 니혼마치・도자기』 (柏書房, 2002년), pp. 89-93. 

[3] 교과서에 채용된 경우, 입시 문제에 출제될 가능성도 있다.

[4] 물론, 전문서보다 간략히 기록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틀린 옛 정보를 게재하지 않는 것만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5] 여기서 기록하였듯이, 본고는 고등학교 교육현장을 위한 정보제공도 강하게 의식하고 있기에, 원출처가 외국어 연구더라도 (그럴 만 하면 해당기록이 있는) 일본어 문헌을 우선으로 인용한다.

이 밖에 모모키 시로우 선생님이 개인 블로그엣에서 정보를 게재하는 등, 개선의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모모키 시로우 「동남아시아사 오해와 진실」 (「제4회 전국 고등학교 역사교육 연구회」 발표자료 (2006년 8월 2일), http://www.let.osaka-u.ac.jp/toyosi/main/seminar/2006/momoki_honbun.pdf, 최종열람일: 2015년 1월 1일) 5-6쪽, 동일 출처 『이해하는 역사 재미있는 역사 쓸모 있는 역사』 (오사카대학 출판회, 2009년) 196쪽 주석 3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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