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혼란한 유럽 정세 (95-97) 아란타 풍설서



혼란한 유럽 정세


18세기를 거쳐 유럽이 여러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그 사이 네덜란드의 국력은 서서히 시들어갔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네덜란드가 미국을 지지한 것을 계기로 제4차 영란전쟁(1780-1784년)이 발발했다. 이 전쟁에 참패함에 따라, 네덜란드의 해운, 무역업, 금융업은 파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이를 틈타 주변 국가들이 프랑스를 침공한다. 이를 격퇴하기 위해 편셩된 혁명군은 예상외의 강력함을 보이고, 1794년 여세를 몰아 네덜란드로 침공한다. 네덜란드에서는 국내 친불파가 네덜란드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바타비아 공화국을 건설한다. 한편, 친영파 총독인 오라녜 공 빌럼 5세는 가족을 데리고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1797년, 영국이 바타비아 공화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한다. 망명중에 있던 오라녜 공은 네덜란드의 해외거점에게 영국의 보호 아래 들어갈 것을 명령한다. (큐 서한, Brieven van Kew). 해외 거점을 잃어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막대한 부채를 안은 채 1799년에 해산. 회사의 자산과 채무는 바타비아 공화국이 떠안았다.

그후, 프랑스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06년 동생 루이를 네덜란드 국왕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루이가 대륙봉쇄령을 엄격히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1810년 나폴레옹은 네덜란드를 직할령으로 병합해버린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일시적으로 소멸한다. 나폴레옹과 대립한 영국은 네덜란드를 적으로 간주해, 큐 서한이 불러일으킨 혼란을 이용하여 1811년에 바타비아를 포함한 자바 섬을 점령한다.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네덜란드는 독립을 회복하고, 빌럼 5세의 아들이 네덜란드 국왕 빌럼 1세로 즉위한다. 네덜란드 왕국이 탄생한 것이다. 영국은 희망봉, 실론 섬, 남미의 일부 식민지를 제외하고 옛 네덜란드의 해외 거점을 반환하기로 약속하였다.

1816년에는 약 5년 동안 이어진 영국의 자바 점령이 끝을 맺었다. 이를 대신하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정부가 바타비아에 설치되어 식민지로서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일란무역도 동인도 정부 식민국이 관할하는 관영 무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식민국"은 굳이 직역하면 "식민지 산물 및 민생창고 국"이 되지만, 본서에서는 이타자와 타케오板沢武雄 선생님을 따라 이 번역어를 쓰겠다.) 나가사키 데지마에 있는 상관장도 18세기 말까지는 동인도회사 직원이었던 것에 비해, 19세기 이후는 동인도 정부의 관리가 되었다. 그러나 나가사키에서는 회사가 존속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한 채로, 거래가 계속되었다.

1824년, 영국과 네덜란드는 아시아 내 양국의 세력범위에 선을 그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말레이 반도 이서(以西)의 모든 근거지를 버리고,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만을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확보하게 되었다.


출처: 松方冬子, オランダ風説書, (中公新書, 2010), pp. 9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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