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레자노프 내항 예고 정보 (130-132) 아란타 풍설서



레자노프 내항 예고 정보


러시아 사절 레자노프의 내항은, 그보다 2개월 정도 전에 네덜란드 상관장이 나가사키 부교에게 알렸다. 상관장 두프의 일기, 1804년 8월 8일 조를 보자.


배가 도착한 후 나는 즉시 고나이요카타(御内用方) 대통사인 나카야마 사쿠사부로(中山作三郎)와 이시바시 스케자에몬(石橋助左衛門)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넸다. "프랑스 공화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네덜란드와 영국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지만, 신속히 종결될 것이라고 소문이 돌고 있다." 나는 이 일을 풍설서에 추가해 제출할 지 여부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오래도록 대화를 나눈 뒤, 이것이 지금 알려지면 큰 곤란함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 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동시에, 혹시 내가 이 일을 알리지 않았는데 소문이 퍼진다면 한층 더 나쁜 상황이 되지는 않을지도 생각해달라고 그들에게 제안하였다. 거기에 대하여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리 되더라도 일절 문제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풍설서에 그것을 적지 않는 이상 다른 누가 무엇을 말하더라도 신빙성이 없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덧붙여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시아 황제의 사절이 탄 2척의 러시아 선박이 세계일주 항해에 나섰고, 아마도 이곳 일본에도 오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침묵하기 보다 알리는 쪽이 회사의 이익이 되리라. 그리하면 어느 나라더라도 일본에 공격을 하거나 사절을 파견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즉시 알리라고, 네덜란드인이 쇼군으로부터 매년 받는 명령을 엄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쇼군이 기뻐할 것이며, 네덜란드인의 손실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그들은 말했다.

밤 10시 가까이 되어서, 모든 통사가 쇼군에게 보낼 풍설서를 채록하기 위해 왔다. 이 때 나는 영국과 화평을 파기한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였고, 러시아 선박의 내항과 그 밖의 통례의 풍설을 알렸다.

(『나가사키 네덜란드 상관 일기』 참조)


1802년 나폴레옹이 영국과 맺은 평화조약(아미앵 조약)은 이듬해 파기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네덜란드 사이에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는 정보는, 통사의 반대로 인해 풍설서에 담기지 않았다. 참고로 고나이요카타 통사(御内用方通詞)란, 쇼군을 위한 수입품을 선별하여 우선적으로 매입해 에도로 보낸다는 목적에서 세운 직책으로,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통사가 맡았다. 19세기 들어서도, 통상적 풍설서는 네덜란드어 문서를 건네 통사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양측이 대담을 가진 뒤에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혹시 풍설서에 적히지 않은 것이 소문으로 퍼진 경우에도 (네덜란드 상관의 상관원으로부터 일본인에게 비정규 경로로 전해진 것을 상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문제가 될 일은 없다고 통사가 생각한 점도 주목된다. 1660년대에는 풍설서에 적히지 않은 것이 소문으로 돈다면 문제가 되었지만, 풍설서의 황금시대에는 풍설서의 권위가 증가해, 이 시기는 상관원의 말실수 정도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러시아 선박 내항 정보는 통사를 거쳐 나가사키 부교에게 전달되었다. 마츠모토 에이지 씨에 의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고 정보는 에도에 전달되지 않은 채 나가사키 부교의 손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레자노프가 내항하여, 에도에서 온 상사(上使) 토오야마 카게미치(遠山影未晋)에게 전년 예고 정보가 있었던 것이 알려 졌을 때에도, 나가사키 부교가 처벌받은 정황은 전혀 없다. 네덜란드인에게도 "러시아인이 온다고 사전에 알린 것을 대단히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이 나가사키 부교로부터 통사를 거쳐 전해졌다.

나가사키 부교가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에도에 전한다는 것은, 에도의 막부도 어느 정도 인지한 상태였다. 딱히 나가사키 부교가 태만하다고 질책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에도로 전달할 지 여부는 나가사키 부교의 재량에 맡길 수 밖에 없다고 막부도 생각한 것이 아닐까. 저건 전달하고, 이건 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준을 진작에 설정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버려둔 것이리라.

출처: 松方冬子, オランダ風説書, (中公新書, 2010), pp. 13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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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3인칭관찰자 2020/04/14 16:31 # 답글

    50여 년 후의 페리 내항 때도 그랬듯 막부가 이 내항 정보를 요긴하게 사용했던 건 아니라지만, 러시아 선박의 내항까지 알려주는 이들의 정보력만 감안해도 막부로선 네덜란드를 쉽사리 박대할 수는 없었겠군요.
  • 남중생 2020/04/14 17:43 #

    저도 그렇게 봅니다. VOC를 통한 무역의 필요성은 점점 줄었지만 그 정보력 만은 여전히 붙잡을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일본이 수입의존도를 낮추면서 그에 따라 해외 정보 입수는 어려워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VOC도 이를 간파하고 정보(풍설서)를 협상패로 내민 것이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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