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동인도회사의 소멸 (126-127) 아란타 풍설서



동인도 회사의 소멸


1796년에서 1807년까지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네덜란드(1799년까지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그 이후는 바타비아 공화국 치하의 식민지 정부)는 일본에 배를 거의 못 보냈다. 그래서, 항해 경로 상에 영국 배에 나포될 가능성이 낮은 중립국(미국이나 덴마크, 독일의 한자동맹 도시인 브레멘)의 선박을 고용해서 일본 무역에 충당했다. 

1800년, 신임 상관장 빌럼 바르데나르(Willem Wardenaar)가 부임하지만, 전년에 동인도회사가 해산된 것은 일본인에게는 비밀로 부쳤다.

바르데나르는 1803년에 떠나, 바타비아로 돌아갔다. 이 때 상관장의 직무를 인수인계 받은 것이 헨드릭 두프(Hendrik Doeff)였다. 그의 임기 중, 1804년에 러시아 사절 니콜라이 레자노프가 나가사키로 찾아오는 사건이 발생했고, 1808년에는 마카오를 점령한 영국 함대에 속한 페이튼 호가 나가사키 만에 침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811년, 영국의 벵골 부총독 스탬퍼드 래플스(Stamford Raffles)가 바타비아를 점거하고 1816년까지 자바를 지배했다.[1] 1810~1816년에는, 네덜란드 선박이 전혀 오지 않았다. 

두프는, 후임자가 오지않았기 때문에 1803년부터 1817년까지 상관장 직에 있었고, 위기가 닥친 나가사키 네덜란드 상관을 지켰다. 무역에 의존하던 나가사키 마을 그 자체도 곤경에 빠졌으나, 상관이 겪은 곤궁함은 한층 더 심각했다. 그 기간 동안 무역이 불가능하다 시피 하여, 생활비조차 일본에서 빌릴 수 밖에 없었던 상관원을, 일본인은 계속해서 우애의 정으로 대해주었다, 고 두프는 적고있다. (『두프 일본 회상록』)[2]

에도 시대를 통틀어, 풍설서는 대체로 정확한 정보를 전했다. 지금까지 본서에서 서술하였듯이, 18세기 초까지 네덜란드인은 거짓말을 하고 싶더라도 아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오는 중국 선박(唐船)이나 밀항 선교사라는 별개의 정보원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18세기 중엽에는 거짓을 고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상황이 나쁘다는 것은 침묵만 지키고 있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말이 되자, 침묵만 지켜서는 해결되지 않고,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원인은 유럽에서 일어난 세계사적인 대사건이었다. 


출처: 松方冬子, オランダ風説書, (中公新書, 2010), pp. 126-12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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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탬퍼드 래플스 통치 하의 자바에 대해서는 최병욱(2015) 『개정판 동남아시아사 - 전통 시대』, 322-324쪽 참조.

[2] 두프가 상관장으로 재임한 시기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적륜 님이 2010년과 2011년에 쓰신 일련의 글들 중 다음을 참조.
[3] 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번역한 "에도 막부가 보고받은 프랑스 혁명(127-129)"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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