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협상패로 쓰인 풍설서 (121-123) 아란타 풍설서



무역 교섭의 협상패로 쓰인 풍설서


1780년에 제4차 영란전쟁이 발발했다. 그로 인해, 네덜란드 선박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 또는 아시아 역내에서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았다. 그 결과, 일본 무역에 돌아갈 배가 부족하게 된다. 더욱이, 1787년부터 시작한 칸세이 개혁(寛政改革)의 일환으로, 1790년 이후 나가사키 무역은 "반감 무역(半減商売)"으로 정해졌다. 다시말해, 내항해도 되는 네덜란드 선박이 연 2척에서 1척으로 줄어들어, 거기에 상응해 무역량도 줄었다는 것이다. 다만, 2년 뒤 아담 락스만[1]이 네무로(根室)에 내항하여, 러시아에 관한 정보를 네덜란드로부터 들을 필요가 생긴 막부는, 네덜란드 무역에 대한 제한을 약간 풀었다. 마츠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는 네덜란드 글(蘭書)의 수집과 분석을 개시하고, 그 유용성을 인정했다고 여겨진다. 경영이 악화되어가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상관장을 일본에 5년간 주재시키는 일, 또 상관장의 참부(参府)를 매년에서 4년에 1번으로 줄일 것을 청원해, 선뜻 허가를 받았다. 

그러한 시대에, 유난히 강렬한 개성을 발휘한 상관장이 있다. 이삭 티칭(Isaac Titsingh)이라는 인물은, 유능한 상관장인 동시에 학자 기질의 교양인이기도 하여, 일본문화에 끊임없이 강한 흥미를 보였다. 일본 상관장을 3번에 걸쳐 역임한 뒤에도, 통사 및 난학자들과 개인적인 서신을 이어나갔다.[2]

1784년 8월 19일, 일본 상관장을 3번째 맡기 위해 내항한 티칭은, 이례적으로 도착과 동시에 상관장의 지위와 권한을 인수인계 받았다. 그리고는 풍설서 서명을 거부한 것이다. 이 사이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상관장 일기의 기사를 보도록 하자.

상관장의 직책을 이어받자마자 나는, 회사 수입품의 가격 인상에 대해서도, 상관장에 대해 불명예스럽다 여겨지는 몸수색의 면제에 대해서도, 지난 상관장이 에도에서 제출한 요구가 거부된 사건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느 것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전 상관장의 보고에 의하면 몇 번이나 신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끔히 무마된 상태라고 하여, 나는 불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인도 및 조국의 최신 정보를 통사들에게 제공할 때, 서류에 서명을 거부했다. 그 종이에 회사의 일본 무역이 쇠퇴한 것에 관한 안타까운 사정이 적혀있지 않는 한 서명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해의 마치도시요리(町年寄)가 오후에 데지마에 나타나, 풍설서는 무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서명 거부는 에도 막부가 나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여, 끝내 나를 설득시켜 최신정보(풍설서)에 서명하게 하였다.

이것은 무역조건 완화를 위해 상관장이 풍설서에 서명을 거부한 보기 드문 사례다. 나가사키 부교를 곤란하게 하려고 풍설서에 서명을 거부한 것이지만, 결국 설득되어 이 날 중에 서명을 한 것이다. 계획은 실패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일부러 현지인 관료(地役人)중 급이 제일 높은 마치도시요리가 데지마에 찾아와 필사적인 설득을 할 정도의 사건이었다. 시급히 에도에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풍설서에 상관장의 서명이 없으면 부교 만이 아니라 현지인 관료들도 질책을 피할 수 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11월 26일을 마지막으로 티칭은 일본을 떠나, 벵골이나 중국 등지에서 근무한 뒤, 유럽에 돌아갔다.[3] 


출처: 松方冬子, オランダ風説書, (中公新書, 2010), pp. 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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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92년에 아담 킬리로비치 락스만이 표류민 다이코쿠야 고다유 등을 데리고 홋카이도에 왔다. 이때 러시아는 어디까지나 표류민을 송환시킨다는 인도적인 목적을 내세웠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이들을 우호적으로 접대했다. 그리고 일본은 러시아와 교역을 할 의사가 없으며 앞으로 표류민 송환등은 일본의 대외 교섭 창구인 규슈의 나가사키로 올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 일본이 러시아의 교역 요구를 거절한 것이었으나, 러시아는 나가사키에서 교역하라고 허가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김시덕,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2015 : 메디치미디어), pp. 188.


[2] 이삭 티칭에 대해서는, 적륜 님의 
를 참조.

또, 타치바나 난케이의 서유기 中 84. 기기 (네덜란드)에 언급된 이사아테츠신키(イサアテツシンキ)와 동일인물.


[3] 〔⑥〕티칭 각하는 황제폐하(건륭제)께 대사(大使)로 부임해 중국에서 특별한 후대를 받았다.
1795년, VOC가 전해주는 소식을 통사가 받아적은 것으로 보이는 초안 中. (바타비아에서 미리 써서 갔을까? 참조.)

이 사절단에 대해서는, 적륜 님의 연경의 하란국 조공사절단 - 한 세계가 끝나갈 즈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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