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네덜란드 풍설서의 황금 시대 (118-121) 아란타 풍설서



네덜란드 풍설서의 황금 시대 


18세기 중엽, 일본에게 정보제공을 하는데 있어 네덜란드인에게는 경쟁 상대가 없었다. 네덜란드인이 말하는 것이라면 일본인은 뭐든지 믿는다고 상관장이 느낄 정도였던 것이다. 중국 발 정보는 유구나 조선을 경유해 흘러들어왔지만, 거기에 막부가 커다란 위협을 느끼는 요소는 없었다. 정크선은 더이상 동남아시아의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인이나 스페인인 등 선교사의 밀입국도 중단되었다. 그때문에 오늘날 말하는 베트남 보다 서쪽의 정보는, 네덜란드인이 독점적으로 공급한 것이다. 

네덜란드인이 해외정보를 대체로 독점했다는 의미에서, 18세기 중엽은 네덜란드 풍설서의 황금 시대다. 게다가 막부는 네덜란드인이 건네는 정보를 더 이상 기타 주체와 비교하여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는 나가사키 관료조차 이를 불안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시기, 구미 여러 나라가 세력 다툼을 벌인 주 무대는 벵골이나 실론 섬이었다. 일본의 전통적인 대외적 관심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막부는 흥미를 갖지 않은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구석에서 막부는 잠깐의 평온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막부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나 가톨릭 세력이 다시 일본에 다다를지도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 근대"의 새로운 움직임은, 일본인 사이에서는 아직 위협이라고는 인식되지 않았다. 해외에 두려워할 만한 것이 없는 이상, 일본인은 네덜란드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도록 요구할 적극적인 이유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측에서도 따라잡아야만 하는 경쟁상대가 없어져, 정보를 제공하는 동기는 감소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네덜란드 풍설서는 대개 짧고 내용도 가볍다. 상관장 일기에도 내용이 아니라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만 적어놓은 경우가 많다. 

내용이 가볍다는 의미에서, 이 시기는 풍설서가 정체된 시대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아유타야 왕조의 멸망이나 플라시 전투, 미합중국의 독립 등, 당연히 전해야할 법한 대사건이 전해지지 않은 것이 이를 상징한다. 

네덜란드 풍설서가 정체된 시대는, 동시에 일본-네덜란드 무역이 쇠퇴한 시대기도 했다.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주던 대일본 생사(生絲) 수입 무역은, 이제 풍전등화의 상태였다.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중국 생사의 집하지였던 대만을 1660년대에 상실한 이래, 회사는 통킹(베트남 북부) 산, 페르시아 산, 벵골 산 생사를 일본으로 실어날랐다. 그러나 수출이 금지된 일본의 은을 대신해 통킹에 수출할 유력한 상품을 찾지 못한 채 통킹의 정세 불안도 겹치는 바람에, 1700년 회사는 통킹 무역에서 철수한다. 더욱이, 페르시아 산의 생사도 매입과 수송의 비용이 올라서 단념하였다. (1759년에는 페르시아 상관을 폐쇄). 1705년부터는 벵골 산 생사 만을 실어나르게 되었으나 이익은 오르지 않았다. 한편, 일본의 생사 생산은 순조로이 늘어났다. 1720년대에는 교토 니시진(西陣) 지역의 방직업(機業) 수요가 국내산 생사로 대개 충족되었다고 한다.

1641년에 포르투갈인 추방을 결정할 때, 막부는 네덜란드인으로부터 "포르투갈인이 가지고 오는 것과 동일한 양의 생사를 수입할 수 있습니다."라는 언질을 얻어낸 뒤에 최종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 정도로 수입 생사의 수요는 대단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자, 절대적으로 수입이 필요한 품목은 약재와 서적 정도 뿐이었다.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나 관심의 저하는, 자신들의 사회(그걸 "일본"이라고 인식하였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나 경제, 문화에의 자신감이나 자부심의 반영이기도 했다. 기근이 발생하거나 막부의 권위가 흔들리는 등 내부적으로 심각한 모순이나 문제를 떠안으면서도, 천하는 태평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이쿠(俳句)나 가부키(歌舞伎) 등 오늘날 우리가 자랑할만한 "일본"적인 문화가 성숙해나간 것이다.


출처: 松方冬子, オランダ風説書, (中公新書, 2010), pp. 11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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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3인칭관찰자 2020/03/09 20:11 # 답글

    생사를 자급할 수 있게 되면서 네덜란드를 통해 이를 수입할 필요도 없어졌군요. 당시의 일본은 어지간한 건 내수로 충족할 수 있다 보고 해외국가와의 교역엔 별 관심도 절박함도 느끼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쇄국의 안락함이 감지되네요.
  • 남중생 2020/03/09 20:40 #

    제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는 18세기 의학자 타치바나 난케이도 중국 및 기타 외국에서 수입하던 물산을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를 자주 펼칩니다.

    황금기이자 정체기라는 마츠카타 후유코 선생님의 말씀이 한결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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