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네덜란드 풍설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시암 왕국 (102-104) 아란타 풍설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시암 왕국


한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나라이 왕과 조약을 체결하여, 시암산(産) 소목, 사슴가죽 따위를 독점적으로 일본에 수출할 권리를 얻었다. 그 대신 회사는, 시암 정크선이 일본산 구리를 시암으로 가지고 들어올 독점적 권리를 인정했다. 그 결과, 매년 5월에서 7월에 걸쳐 동인도 회사 선박 1, 2척이 시암에 도착하여, 거기서 시암으로 갈 화물을 내리고 일본으로 갈 소목이나 사슴가죽을 실어서, 7월에서 8월 사이 일본에 도착하는 형태가 되었다. 무역을 끝내면 화물과 함께 바타비아로 직항한다. 일본에서 사들인 구리를 시암에 들여오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상품과 선박의 움직임에 따라, 정보의 움직임에도 특징이 나타난다. 시암 상관에서의 서한은 2개월 전후로 나가사키에 도착하나, 10월 경 일본 상관에서 시암 상관으로 발송한 서한은 반 년 이상 걸려서 이듬해 5월 경 시암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보의 연착을 회피하기 위해, 일본 상관은 시암으로 돌아갈 정크선에 서한을 맡겼다.

시암 정크선에 서한 운반을 위탁하는 것은 막부가 유쾌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더러, 바타비아 총독도 "짧고, 남이 읽어도 되는 서한 만"을 허가했다. 따라서 정크선에 맡긴 서한에는 이듬해 일본에서 판매될 법한 사슴 가죽의 수량과 함께, 미리 정한 듯이 "시암 왕국 내 가톨릭 교도의 동향을 알려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있다.[1] 사슴 가죽은 쉽게 부패하는 상품이라서 시암에서 신속하게 적재를 완료하고 일본으로 보내길 원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시암과 소통할 필요성을 막부에게 강조하기에 가장 유효한 수단이, 가톨릭에 대한 정보원으로 시암 상관을 자리매기는 일이었던 것이다.

상관장 일기 1687년 8월 28일에는, 제공한 정보의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시암 대사 3명이 선물을 가지고 포르투갈 선박으로 고아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다. 프랑스 왕, 영국 왕, 포르투갈 왕에게 시암 군주의 이름으로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암 왕실과 프랑스, 포르투갈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여 시암 왕실 정크선에 대한 막부의 의혹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게다가 영국을 향한 적대심도 부풀리려는 듯이 적혀있다. 당시 영국 왕은 가톨릭교인 제임스 2세였던 것이다.[2] 이 정보를 받아서 작성한 풍설서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하나, 작년 남만인 배에 시암 지배자(屋形)로부터 사자(使者) 3명을 태워, 1명은 프랑스국, 1명은 에게레스 국, 1명은 포르투갈(波爾杜加兒) 국에 보냈다고 합니다. 이로써 고와 국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출항하여 카아프라고 하는 곳 근처, 안가우라라고 하는 곳에서 파손되었습니다. 사람은 대체로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라파()로 보냈다고 합니다.  

시암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사신단의 배는 결국 카아프(희망봉) 근처에서 난파되었고, 구조된 사람들은 네덜란드 배에 의해 바타비아로 보내졌다고 하는 1문장이 추가되어있다. 이 부분은 네덜란드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통사(通詞)가 더욱 심도있게 질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3] 통사는 시암 왕이 보낸 사신단의 성공 여부를 필히 알고 싶었을테고, 네덜란드인은 자신들의 강성함과 자비로움을 이야기하고 싶었을테니 말이다.


출처: 松方冬子, オランダ風説書, (中公新書, 2010), pp. 102-104. 
===================================================================================================================================

[1] 1680년대부터 1710년 경까지 약 30년 동안 일본 상관장은 시암 상관장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가톨릭 세력의 동향을 통상적으로 물어본다. ("시암 정세와 연결해서 전달하라" 꼭지 참조.) 

[2] 저자는 앞에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고아"나 "마카오" 같은 가톨릭 관련 지명을 나열함으로써 일본의 공포심을 자극했다는 나가즈미 요우코의 주장을 인용한다. (가족관계까지 일러바치는 VOC? 참조.)

[3] 상관장이 안가우라에서 배가 침몰했다고 하자, 통사는 거기가 어딘지를 물어봤을 것이고, 이에 상관장은 보다 익숙한 지명인 카아프(희망봉) 근처라고 설명했으리라는 것이 마츠카타 선생님의 추정으로 보인다.



핑백

  • 남중생 : "아란타 풍설서" 항목 정리 2020-02-22 00:47:41 #

    ... 79-81) 쇄국정책과 쇄국체제는 다르다 (pp. 97-98)똑바로 서라, 카피탄! (pp. 98-100)시암 왕실의 정크선 무역 (pp. 100-102)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시암 (pp. 102-104) 에도 막부가 보고 받은 프랑스 대혁명 (pp. 127-129) 별단 풍설서 (146쪽-160쪽) 아파르트 늬우스를 작성하라 ... more

덧글

  • 홍차도둑 2020/02/22 15:36 # 답글

    역시...대항해시대 온라인의 고증이란...
    일본의 수출품중에 동 이 있고 또 사슴가죽이 남만무역에 왜 돈버는 물품으로 꼽히나 했더니만...
  • 남중생 2020/02/22 15:50 #

    하네다 마사시 선생님의 "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를 읽었을 때도 시암-일본 교역에서 사슴가죽은 대단히 중요한 상품이었다고 하더군요. 고증 굳굳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