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제 6화> 붓다 더 드래곤 슬레이어 헬렐레ㅔㄹㅔ레

옥스포드 대학교의 고전학자, 르웰린 모건 교수님의 블로그에서 2017년 4월 22일자 글을 옮깁니다. On St George and his day입니다. 
아래는 추천 배경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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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게오르기우스 축일을 기념하여

가장 최근에 성 게오르기우스(Saint George)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은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무렵이었다. 필자는 바미얀 지역을 조사하고 있었고, 다레-예 아즈다하(Darre-ye Azhdaha)라는 계곡을 방문했다. 바미얀 마을로부터 몇 마일 서쪽에 있는 곳이었다. 오늘날 계곡 입구에는 이란에서 돌아온 난민을 수용하기 위한 주택지구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비좁게 깍아내지른 계곡을 따라 올라가보면 높은 화산성 산맥으로 가로막혀있는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민담이 얽혀있다.


전승에 따르면, 이 산은 하즈랏 알리(Hazrat-e Ali)가 죽인 용(아즈다하)의 시체라고 한다. 하즈랏 알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이고, 대다수가 시아파에 속한 바미얀 지역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한 인물이다. 산등성이 꼭대기를 따라 생성된 크레비스는 알리가 검을 뽑아 용을 벤 자국이고, 그 주변의 불긋불긋한 광석이 노출된 부분은 용의 피다. 지하수가 흐르는 소리는 용이 죽으면서 내는 신음소리고, 산등성이 끝자락에서 흘러나오는 희뿌연 암반수는 참회하는 용의 눈물이다.

이 용은 바미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1930년대 고고학자 아흐마드 알리 코자드와 리아 해킨이 수집한 민담에 따르면, 용은 마을 주민으로부터 매일 600파운드 가량의 먹이, 낙타 두 마리, 처녀 한 명을 바치도록 하였다. 마침내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라는 구원자가 나타났다. 구원자 알리는 돌돌이라는 이름의 말을 타고 줄피카르라는 이름의 검을 휘둘렀다. 알리는 용을 베어죽이고, 처녀를 구출하고, 여지껏 이교도였던 바미얀 주민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켰다. 신의 가호 덕분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알리의 위업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감탄한 나머지 교화된 것이다.

사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걸친 여러 암석 형상에 얽혀있다. 필자가 이 설화를 처음 들었을 때 보인 첫 반응은 물론 성 게오르기우스 설화와 빼어닮은 점에 놀라워하는 것이었다. 게오르기우스 성인도 용을 죽이고, 처녀를 구하고, 사람들을 개종시킨다. 단지 기독교로 개종할 뿐이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떠올린 것은 필자가 최초가 아니다. 1840년 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영국 장교들은 영국의 수호성인인 성 게오르기우스와 흡사한 설화가 카불 주변 지형에 서려있다는 것을 듣고는 불편해했다. 

그렇다면 이토록 동일하다시피 한 민담이 아프가니스탄과 영국에 모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용을 물리치는 자의 전설은 태초부터 역사와 함께 해왔다. 페르시아와 인도 문명권의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을 보더라도 이미 이 전승이 정립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타 고대 중동 문화권에서도 유사한 전승을 찾아볼 수 있다. 캘버트 왓킨스의 저서, "드래곤 죽이기"는 태초의 인도유럽어족 구사자들이 노래한 시적 언어의 메아리를 규명하려는 시도다. 해당 전승은 인도유럽인들의 조상이 스텝 지대의 고향에서 떠나기 전부터 이미 전해지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성 게오르기우스와 하즈랏 알리의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옛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용을 무찌르는 자의 형상은 이슬람이 도래하기 이전에 이란을 다스린 사산조 왕가에서 특히 중시하였다. 용을 무찌르는 자의 이야기의 요지는 항상 혼돈의 힘에 맞선 질서와 문명의 승리다. 전승 중에는 물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 많았는데, 수자원은 농업에 필수적이었고, 다시 말해 정착된 문명 생활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각종 성 게오르기우스 민담에서 물은 용이 독차지하고 있다가 영웅이 방출시킨다. 동방의 설화에서도 마찬가지로 흔히 보이는 요소다. 예컨대, 리그베다의 영웅 인드라는 용을 베어 무찌르고 "일곱 줄기의 강이 흘러나오도록" 함으로써 세계를 창조하였다. 한편, 고대로부터 전래되는 이란의 명절인 노루즈(Nowruz)와 메흐레간(Mehragan)은 모두 용을 무찌르고 풍족함을 되찾고 지켜낸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다. (바미얀의 아즈다하 산기슭에서도 물이 흘러 지나간다.) 그런데 이슬람 도래 이전의 이란에서 용을 무찌르는 자의 이름은 가르샤스프(Garshasp)나 페레이둔(Feridun)이나 다른 여러 이름을 띠곤 하였지만, 그 이야기는 사산 왕조의 국교, 조로아스터교의 심오한 교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세계사를 두고 극명히 구분된 선과 악 사이의 영원한 세력 다툼이라고 이해한다. 괴물을 죽이는 여웅의 이야기에 이 끝없는 다툼이 담겨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라니카 백과사전Encyclopaedia Iranica에 등재된 "아즈다하Azdaha"항목이 몹시 흥미롭다.)

여기에 따르면, 조로아스터교가 이슬람교로 대체되었을 때, 민담은 여전히 살아남았으며, 단지 알리가 기존의 페르시아 영웅의 자리를 차지했고, 용은 조로아스터교 대신 이슬람교에서 설파하는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멀리 서쪽으로 눈을 돌려본다면 게오르기우스 성인은 중동 지역 천주교의 산물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쓰는 도상과 교리는 오래 전부터 이웃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로부터 빌려오곤 했지만, 성 게오르기우스의 용 토벌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후대에나 나타나는 것으로, 최초 기록은 기원후 11세기이다. 이 이야기는 특히 조지아와 코카서스 지방에서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지역은 이란 문화권의 경계에 놓여있었으며 페르시아의 예술적, 사상적 전통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사라 쿠엔의 저서, "동방 기독교와 이슬람교 미술의 용"에 나와있는 상세한 연구를 참조.)

그러므로 바미얀에서 필자가 하즈랏 알리를 통해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죽이고, 처녀를 구하고, 왕국을 개종시킨 일을 떠올렸다면 필자는 결국 동일한 페르시아 신화를 보고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이야기하는 빛과 어둠의 싸움을 워낙 극명하게 표현해놓은 나머지, 이 신화는 조로아스터교의 쇠퇴를 넘어 이란 고원에서 서로 반대편에 자리잡은 이슬람권과 기독교권 모두에서 민간 전승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코카서스 지방에서 영국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성 게오르기우스가 영국의 수호성인으로 변신한 것은 사실 십자군 원정의 간접적 결과였다. 전투 성인 게오르기우스의 묘소와 숭배 중심지는 이스라엘의 릿다(Lydda)였다. 십자군은 릿다를 성 게오르기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곳은 십자군이 정복한 이래로 2세기 동안 대부분 기독교권의 통치 하에 놓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 게오르기우스는 서유럽에서 숭배자 세력이 늘었고, 영국에서도 차차 유명인사가 되었다. 하지만 "영국 하면 세인트 조지"라는 연결고리는 1348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가터 훈장(Order of the Garter)을 창설할 때까지는 없었다. 이는 가터 훈장이 성 게오르기우스를 수호성인으로 두고 윈저 궁의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에 본적을 두게 됨으로써 굳어진 연결고리다.

바미얀으로 돌아가 지질학적으로 형성된 드래곤을 보자면, 이 녀석은 이전부터 바미얀 계곡의 불교사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고고학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 가지 유명한 가설로는, 1천 피트 가량 되는 이 산등성이가 전설 속의 1천 척(尺) 길이의 "파리니르바나 붓다"(열반에 든 부처님)와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이 와불의 존재는 바미얀의 불교 시대를 가장 생생히 보여주는 현장 법사의 기록에 언급되어있다. 구미가 당기는 가설이지만, 아마도 사실은 아닐 것이다. 대체로 현장 스님은 지리적인 정보를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기록한 편인데, 천척 와불(千尺臥佛)은 바미얀으로부터 동쪽으로 몇 마일을 가면 있다고 했지 서쪽으로 5마일이 아니다. 현장이 보았다는 이 와불상의 거대한 크기로 말할 것 같으면, 아마도 그가 남긴 기록이 와전되면서 일어난 현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미얀의 불교 시대에 아즈다하가 이미 숭배 대상이 아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화의 뿌리는 워낙 깊이 뻗쳐있어서,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 불교가 전래되자 평화를 사랑하는 부처님조차 용을 무찌르는 전사가 되었다. 여정의 후반부에서 현장 스님은 우드야나(優塡, 스와트)를 방문하는데, 용 한 마리가 스왓 강의 강물이 계곡 사람들의 밭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틀어막고 있다가 부처님이 금강저로 산을 내리쪼개서 용을 억누르고 물을 방출시켰다는 옛 이야기를 전한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바미얀 용의 계곡에 얽혀서 한 때 전해지지 않았다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하즈랏 알리와 세인트 조지가 그토록 닮은 이유는 둘 다 진짜 정체가 페레이둔이기 때문인걸까? 필자는 이와 같은 유사성이 보일 때, 최선의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세계의 여러 종족과 종교가 각기 다른 깃발과 영웅 뒤에 줄서는 모습을 보며 실망하기 십상이지만, 그 각기 다른 영웅들이 사실 기본적으로는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해본다면 또 꽤나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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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맥스! 매드 조지! 매드 알리! 매드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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