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제5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마르코) 폴로 헬렐레ㅔㄹㅔ레

옥스포드 대학교의 고전학자 르웰린 모건 교수님의 블로그에서 2013년 12월 31일자 글을 옮깁니다. Polo on Alexander on Pol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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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마르코) 폴로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에서 필자는 여러분이 셰익스피어 연극을 조금 보았으면 하는데, 너무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여주려는 연극은 "헨리 5세"의 첫 장이다. 여기서 프랑스의 황태자는 새로 왕위에 오른 영국왕 헨리의 성격을 심각하게 잘못 짚었다. 그 결과 프랑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헨리 왕에게 "성품에 보다 걸맞는" 선물로 답을 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테니스 공이었다. 헨리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므로 어린아이한테 어울리는 물건이나 가지라는 것이 선물의 의미였다. 그러나 헨리 왕은 프랑스 측에게 농담을 되받아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어른스럽고 결단력 있는 적수인지를 보여준다.

(한글 자막이 달린 다른 버전의 영상도 올려놓았으니 본문 최하단 참조.)

브라이언 블레시드[역주: 선물 상자를 여는 엑세터 공작 역의 배우. 헨리 5세 역의 배우는 케네스 브래나인데, 모건 교수의 착오인듯 하다.]는 제한적인 대본으로도 명연기를 선보인다. 10대 학창시절의 필자는 헨리 5세를 공부했다. (물론, "네 알이 불 붙은 대포알로 변하길"이라는 대사를 읽으면서 낄낄거렸다.) 그런데 최근에야 "알렉산드로스 기사도 문학"(이게 무엇인지는 뒤에서 설명하겠다)에 대한 몹시 흥미로운 저서를 읽으면서 이 장면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가 이를 깨닫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100년도 더 전에 누군가가 이와 똑같은 사실을 진작에 발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건 학계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쩝... 하지만 그래도 흥미롭긴 마찬가지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사건은, 페르시아 침공을 고려하던 알렉산드로스에게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보낸 사절단이 선물을 갖고 찾아온 일이다. 이야기에 따라 어떤 선물이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변동이 있지만, 항상 같은 것은 다리우스 왕이 알렉산드로스에게 보낸 선물의 의미는 알렉산드로스가 여전히 어린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른들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다던가 그런 일 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례로 알렉산드로스도 선물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을 내리는데, 아주 정반대의 해석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이 이끌 페르시아 원정이 오히려 대단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 오래된 버전에서는 다리우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회초리, 공, 황금으로 채운 상자를 보내면서, 그 뜻을 설명하는 편지도 딸려 보낸다. 회초리는 소년 알렉산드로스가 여전히 훈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공은 가지고 놀라는 것이고, 황금은 페르시아 제국이 이토록 부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에게 자신만의 해석으로 답한다. (여기서는 올로호쟌이 번역한 아르메니아 버전을 따른다.) 

"그대는 과인에게 선물하였소. 회초리와 공, 그리고 황금 궤짝. 이 선물을 통해 짐을 조롱하고자 한 것이지. 그러나 나는 이 선물을 받고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소. 회초리는 짐의 무용과 무력으로 오랑캐를 털어버리고, 호되게 매질을 가한 다음, 노예로 복속시키겠다는 것이오. 그리고 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에게 맡겨주었는데, 짐이 세상을 지배하고 내 권세 아래에 둘 것이라는 것이오. 왜냐면 지구는 둥글기 때문이지. 공처럼 말이오. 그리고 황금 궤짝은 당신이 내게 보내온 대단한 선물이오. 그것을 보냄으로써 내게 순종하겠다는 것을 선언하였기 때문이오. 왜냐면 내게 패배하고 내 권세 아래 놓였을 때, 당신은 내게 공손히 조공을 바쳐야 할테니." 

셰익스피어의 장면과 유사성은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리고 제일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이 둘이 매우 의미있는 평행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연극 내내 셰익스피어는 헨리 왕을 알렉산드로스와 연관짓고 싶어한다. ("그 어떤 정치적 사안일지라도, 고르디우스 매듭처럼 그가 풀어내리" 등등. 필자의 이름이 플루엘렌Fluellen이라서 여기에 대해 한 마디 얹고 싶은 것도 있다.[역주: 플루엘렌은 "르웰린"이라는 이름의 유래로, 헨리 5세의 등장인물 이름이기도 하다.]) 둘다 예상을 능가하는 실력을 발휘하는 젊은 왕인 만큼, 헨리의 정당한 프랑스 침공을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원정과 같은 반열에 놓은 것이다. 그러니 설령 헨리 5세의 테니스 공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시대보다 훨씬 더 전에 창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셰익스피어 본인은 이 이야기를 실제 헨리 5세가 통치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료에서 찾았다.) 이 이야기는 여전히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연관성을 유지했다. 

그 다음으로, 이걸 먼저 확실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다리우스가 선물을 보내는 일화는 실제 알렉산드로스의 일생에 있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고대와 중세의 민간 전승에서 알렉산드로스와 연관지어진 각종의 환상 기담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총칭하여 알렉산드로스 기사도 문학(Alexander Romance)이라고 부른다. 알렉산드로스 기사도 문학의 전승은 한 편의 소설에서 비롯되었다. 이 소설은 현재 전하지 않는데, 아마도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이집트에서 그리스어로 쓰였다. 그러나 그 소설 속 이야기는 재가공되고 부풀려지면서도 항상 하나의 전승으로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리하여 이 문학 전통은 궁극적으로 서쪽으로는 아이슬란드까지,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이동하기에 이른 것이다. 중국 지리서에 이들 이야기가 흔적을 남기게 된데에는 무슬림 상인들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상상 속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역사적인 실체와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 속에서 알렉산드로스는 다이빙벨에 들어가 바다를 탐험하고, 날틀을 타고 하늘을 탐험하며, 거대한 장벽을 세워, (Gog)과 마곡(Magog)이라는 부정한 민족들로부터 세계를 지켜 내고, 영생의 물을 찾아나섰다가 결국은 실패한다. 

알렉산드로스 기사도 문학이 얼마나 습합성과 지속력을 갖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가 있다. 13세기에 중국으로 향하던 마르코 폴로가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바다흐샨(Badakhshan)에서 접한 이야기다. (율Yule의 번역을 따른다.) 

"바다샨에는 마호멧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언어가 독특하다. 아주 큰 왕국을 이뤘고, 왕위는 세습된다. 왕실 혈통은 모두 알렉산드로스 왕과 페르시아 대제국의 군주, 다리우스 왕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이다. 그리고 이곳의 왕은 모두 사라센 언어로 줄카르냐인(Zulcarniain)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이는 알렉산드로스라는 뜻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기리는 뜻에서 그리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마르코 폴로가 들은 이야기는 이슬람권 전역에 걸쳐 아랍어, 페르시아어, 만딩카어, 말레이어로 들을 수 있다. 이 창작된 알렉산드로스 일대기에서는 알렉산드로스의 아내 록산느(Roxane, 사실 바다흐샨이 아니라 박트리아 출신이다)가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의 딸로 등장한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본인도 쿠란의 18번째 수라에 묘사되어있는 줄카르나인(Dhu'l-arnayn, 뿔이 두 개 달린 자)이라는 전설적 존재와 동일시된다. 알렉산드로스 기사도 문학에 대한 탁월한 연구서를 저술한 리차드 스톤맨은 알렉산드로스의 "전설이 그리스를 제외한다면 지구 상 어떤 지역 보다도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오랫동안 구전 전승으로 남았다"고 한다. 서양이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발걸음을 할 때까지도 이 이야기들은 여전히 활발히 전해지고 있었다. 19세기 영국 군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알렉산드로스 설화를 건너들음으로써 낯익고 환대하는 장소에 와있다는 환상에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같은 요소를 공유하는 이야기의 전통은 이슬람권 말리, 기독교권 에티오피아, 몽골리아, 영국 뿐만 아니라 이 장소들을 잇는 공간에서도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었다. 현지 문화에 알맞게 조금씩 번안된 결과, 이슬람권 알렉산드로스는 독실한 무슬림이 되었고, 기독교권 알렉산드로스는 기독교인이었으며, 유대교권에서는 유대인이 되었다. 몽골리아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유목군주 칸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셰익스피어가 차용한 장면인 다리우스의 선물에 집중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이 일화가 알렉산드로스 전승의 역동성과 지속성을 보여주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일화가 시간과 문화권에 걸쳐 덧칠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나폴리의 대사제 레오가 (외교 사절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했다가 발견한 그리스어 버전에서 번역하여) 들려주는 10세기 라틴어 버전은 유럽에서 알렉산드로스 신화가 전파되는 주요 수단으로 작용한다. 여기서 다리우스의 회초리와 공은 이제 공과 "구부러진 채"가 되어있다. 그리고 레오가 번역한 이야기의 12세기 확장판인 히스토리아 데 프로엘리이스(Historia de Proeliis)를 보면, 필라 루드리카(pila ludrica, 놀이 공)와 조카니(zocani)라고 되어있다. 조카니라는 단어는 비잔틴 그리스어로는 추카니온(tzukanion)이지만 사실 페르시아어 초간(چوگان, chowgan)에서 온 말이다. 이 초간이 쓰이는 경기는 페르시아 전통 놀이로 "공과 채"라는 뜻의 "구이 오 초간(guy-o-chowgan)", 즉 폴로 경기다.


이렇게 본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다리우스가 선물로 건넨 유치한 장난감이라는 상투적인 함의는 정식 경기를 떠올리게 되는 정교한 연상작용으로 굳어진다. 페르시아 전통에서 (그리고 레오의 이야기에서도 되풀이되듯이) 다리우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폴로를 치고 놀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연극 헨리 5세에서 젊은 왕은 테니스나 치고 놀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런데 페르시아어 알렉산드로스 기사도 문학과 헨리 5세에 들어가있는 이야기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두 가지 전승이 그저 자연스럽게 독립적으로 발달한 것이 상투적인 놀이에서 정식 경기라는 동일한 방향을 따르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해당 종목들이 몹시 흡사하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영국에서는 "왕실(royal)"의 경기인 리얼 테니스(Real Tennis, 옛날 방식의 실내 테니스), 페르시아에서는 왕의 경기라는 별명이 붙은 폴로 경기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또다른 흥미진진한 가능성은 미궁처럼 복잡하게 꼬인 알렉산드로스 기사도 문학의 역사 속에서 페르시아 전승의 요소가 유럽의 전승에 영향을 주었다는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영국 헨리 5세가 받은 테니스 공은 페르시아 폴로 경기의 먼 메아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관객층은 연극 속 헨리 왕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현신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헨리/알렉산드로스 이야기가 알렉산드로스 기사도 문학 전통이라는 가장 놀라운 국제적 스토리텔링의 용광로 속에서 빚어졌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페르시아로부터 유래한 핵심 요소까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말이다.

중세 시대 문화간 상호교류의 사례로 들기엔, 이만한 것이 없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이 새해 복 많이 받길 바라며, 부디 여러분의 알이 포탄으로 변할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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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분 30초부터 21분 30초 참조.)


덧글

  • ㅎㅂㄱ 2019/08/27 17:03 # 삭제 답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위의 긴 답글들은 부러 방문자들 재밌으라고 합 짜서 콩트나 부조리극 하시는 건 아니시지요? ㅋㅋㅋㅋ 이글루스 어디든 나타나 자기 할 말만 하시는 분이던데 차단하시는 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 남중생 2019/08/27 20:05 #

    잘 읽어주셨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차단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열린 블로그를 표방하고 싶어서 저도 생각이 많아지네요.

    제 블로그를 방문하는 다른 분들께 폐가 될지도 모르니, 어쩌면 차단이 정답일지도 모르겠어요^^
  • ㅁㄴㅇㄹ 2019/09/03 01:00 # 삭제 답글

    여전히 저 솔까역사는 빈수레 그 자체군요.
  • 남중생 2019/09/03 01:44 #

    ㅎㅎㅎ
  • ㅁㄴㅇㄹ 2019/09/08 14:54 # 삭제

    솔까역사는 무식이 드러나니 덧글을 삭재했나봅니다. 수년전부터 키배에서 불리하면 덧글과 트랙백 차단하고 포스트 삭제하고는 자신이 이겼다고 정신승리하던 것의 연장선상이겠죠.
  • 남중생 2019/09/08 15:13 #

    아하, 실은 제가 이번 기회에 차단하면서 지나치게 긴 댓글 타래는 지웠습니다.
    다른 방문객 분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될 것 같아서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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