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월인越人"은 누구였는가? [도돌이표]

Liam Kelley 교수님 블로그에서 번역합니다. Who Were the Yu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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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越人은 누구였는가?

역사학자 에리카 브린들리의 저서, 고대 중국과 월인(Ancient China and the Yue: Perceptions and Identities on the Southern Frontier, c. 400 BC - 50 CE)의 첫 장은 "월인은 누구였는가"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얼핏 쉬운 질문처럼 들린다. 중국의 사료를 보면 기원전 1천년기 말부터 남방에 사는 월(越/粤)인에 대한 많은 언급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백월(百越/百粤)이라고 통틀어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니 이들 사료를 살펴본다면 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파악을 하고 월인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 첫 장에서 브린들리는 중국 문헌을 통해 월인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정보가 얼마나 적은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월인"이라는 용어를 쓸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최초의 중국 문헌들을 보면 중국인들이 다른 인구집단을 지칭하기 위해 쓰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월"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데 "월"이라고 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브린들리의 책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대체로 월인들이 ...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이들이 스스로를 어떤 인종적 문화적 차이점으로 구분하였는지도 알지 못한다." (22)

중국 측 사료의 저자들은 월인이라고 부른 민족이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종종 이들을 무분별하게 "오랑캐(만蠻, 만이蠻夷)"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또한 오랑캐를 가리키는 용어에 비해 백월과 같은 용어는 "문화적, 인종적 의미가 실린 경향을 보인다"고 브린들리는 지작한다. (32)

그러므로, 이 장에서 브린들리는 "월"이라는 용어가 가리켰을 문화적 또는 인종적 구분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아낼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장에서 브린들리가 사용하는 것은 문헌 상의 근거다.


중국인들이 문헌 상에서 "월"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은 원전 6세기의 일이었다. 우리가 "중화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체들이 있던 중부지역(中國)의 동남쪽에 붙어있는 왕국을 일컫는데 쓰였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월나라를 양쯔강 남부에 위치했던 것으로 비정한다. 오늘날 절강성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월나라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고, 이들은 어떤 언어를 구사했을까?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브린들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 본토의 동남부 지방이 대만 선주민의 본고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할 때, 대만의 인구집단이 중국 동남 해안의 '월'과 유사하다고 마땅히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 (25)

또한 대만 사람들이 본고장에서 이주해 도서부 동남아와 태평양 지역으로 나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할 때, "대륙부 동아시아의 월인의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아마도 프로토-오스트로네시안의 역사를 다룬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언어적으로 (어쩌면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전근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해양 식민세력과 연관된 인구집단일 수 있다." (25) 다시 말해 월인은 오스트로네시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중국인들은 중국 남부와 남서부(멀리는 광서성과 베트남 북부까지) 사는 사람들도 "월"라고 불렀다. 그리고 브린들리의 책에서 언어적 근거를 다루는 장에서 보여주듯, 이토록 광활한 영토 내에서 쓰인 단일 언어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백 가지 월족이라는 뜻으로 "백월(百越)"이라고 불린 것이다. 백월이라는 표현에는 해당 지역에 서로 다른 인구집단이 여럿 살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니 옛 중국인들은 이들 사이에 모종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아보았다. 그러나 조금씩 다른 사람들을 같은 용어를 써서 묶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점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특정 집단 사이의 연관상을 찾을 수 있을까? 

이는 모두 몹시 어려운 질문이고, 브린들리는 구(甌)라는 용어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현대 중국어로 "오우", 베트남어로 "어우"라고 발음하는 한자 구(甌)는 같은 지역에 살던 몇몇 인구집단을 가리키는데 쓰인 용어다.


기원전 3세기에는 옛 월나라를 계승한 국가가 절강성, 복건성 지역에 있었다. 이 나라는 월동해(越東海)라고 불렸다. 월동해의 수도는 동구(東)라는 곳이었고, 기원전 2세기에는 이 나라의 이름도 동구라고 불리곤 하였다.

한편, 같은 시기에 오늘날 광서성(에서 어쩌면 북부 베트남까지)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서구(西甌)라고 불렸다.

동구와 서구라는 용어를 보면 이 둘이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증명해줄 증거는 없다.

그리하여 브린들리는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편에는 복건성, 다른 한편에는 광서성/베트남 북부로) 수 천 킬로미터나 떨어져있는 서로 다른 두 월인 집단을 묘사하기 위해 어째서 '구'라는 용어가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이 나와있지 않다. 현재로서 필자는 결정적인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어쩌면 이 두 집단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을 공유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문신의 특정한 문양이나 위치로 인해 중화의 인구집단이 이 둘을 같은 항목으로 묶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어쩌면 동일한 용어를 쓴 것이 그저 우연에 불과할 수도 있다. 각 집단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이름이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듣기에는 비슷하게 들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어쩌면 실제로 같은 계통의 민족에서 일부가 떨어져나가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 것일 수도 있다." (35)


옛 문헌 만으로는 "동구와 서구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낸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브린들리는 해당 질문에 대해 가설 형태의 해답을 여럿 내놓음으로써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가설 형태로 된 질문은 우리를 불확실성의 수렁으로 더 깊이 밀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가설을 잠재적인 해답으로라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마련되어있지 않은 몇몇 조건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화의 사람들이 이 두 인구집단을 묶은 이유가 특정 표식을 공통으로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자. (이는 아주 논리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중화 사람(들)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두 집단과 만나보았어야 한다. 그리하여 위와 같은 공통점을 알아보고, 그 사람(들)의 관찰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 이들 인구집단을 이름붙이는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맞아떨어지기 어려운 조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와 유사하게, 서구와 동구 사이의 연관관계가 인구 이동이었다면, 여기에 대한 근거도 남아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예를 들어, (평민들이 이주하는 것 보다는 훨씬 가능성 있는) 지배 계층의 이동이었다면 기록에도 남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를테면, 한나라 혜제(재위 기간: 기원전 195-188)가 옛 월나라 왕(구천句踐)의 후손을 동구의 왕으로 공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한나라에서는 월나라의 집권세력과 후대의 동구를 통치한 세력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상류층 이민집단이 서구를 세운거였다면, 이 또한 알려지고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는 주변 국가들의 집권 계층이 누구인지 알았고, 그들의 연관관계도 알았기 때문이다.

가장 수락하기 쉬운 가설은 두 이름 사이의 유사성이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다시 한번 묻게 된다. 그 "우연"은 정확히 어떤 것이었길래 두 이름이 유사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없다.


위의 논점들은 브린들리의 주장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문헌 상에 나타난 월족 관련 정보에 대해 브린들리가 보여준 논의는 훌륭한데, 브린들리는 자신의 생각을 미리 정해서 보여주거나 독자들이 믿어야 할 주장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월인이 누구였는지,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연관성과 차이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틀림없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정보 더미가 필자의 눈 앞에서 정리되어진다면 좋겠다. 월인이 누구였는지를 명확히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근거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너무 많이 때문이다.

브린들리는 제 1장 "월인은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지만, 독자들에게 현존하는 문헌 근거를 제시하고 이들 문헌의 문제적인 요소를 명확히 지적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할나위 없이 중대한 학술적 공헌을 한 셈이다.

무언가를 명확히 알 수 없다면, 적어도 무엇을 알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해야 한다. 제 1장에서 브린들리는 바로 그런 류의 확실함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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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말초 2019/08/15 20:03 # 답글

    저는 춘추전국시대 책들을 보면 불만이 많았던게 - 너무 중국 역사라는 틀에서 보고 초나라, 월나라, 오나라, 조나라 등등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이 없는게 아쉬웠거든요. 끽해야 진나라, 주나라만 디테일하게 들어가고. 진시황이 분서갱유로 다 날려버린 것두 있지만요

    번역판이 나오면 읽어보고 싶네요
  • 남중생 2019/08/15 21:06 #

    동감입니다. 너무나도 흥미로운 주제예요!
  • 동두철액 2019/08/19 19:41 # 답글

    중국인들이 월을 보는 관점을 연구하면 중국인이 먼저 기록에 남긴 한반도 남부의 한의 실체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듭니다
  • 남중생 2019/08/19 20:07 #

    동감입니다. 실제로 서술 방식에서 겹치는 양상이 더러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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