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17세기 일본을 찾아온 둥근 지구와 천경혹문(天經或問) 너는 별... 은별

미시간 대학 도서관 블로그에서 번역합니다. A New Acquisition: Tenkei wakumon, an early Japanese reprint of a Chinese astronomy tex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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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재출판된 중국 천문학 서적, 천경혹문(天經或問)

푸 량위 (Liangyu Fu)
2019년 6월 21일 

▲ 지구, 태양, 달의 궤도를 묘사한 목판화. 지구가 중심에 놓여있다. - 천경혹문 中. 

최근 우리 도서관의 특별 서고 연구소(SCRC)가 근세 일본의 천문학 서적을 구입하였다. 제목은 천경혹문(天經或問)이다. 1730년 도쿄에서 출간된 이 책은 중국 천문학 서적을 재출판하면서 일본어 독점을 단 것이다. 중국에서 서양 천문학 지식이 전파되고 도서 교역과 재출판을 통해 중국과 일본 간 지적 교류가 이뤄지는 양상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다.


책 자체에 대한 소개

여기서 다루는 "천경혹문"은 3권으로 되어있다. 한 권 당 100쪽 내외의 분량이다. 서지학적으로 볼 때 이 책은 전통적 동아시아 도서 양식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서양 책과는 모든게 정반대로 되어있는 것이다. 글을 읽는 방향, 페이지 수 순서, 책장을 넘기는 방향 마저도 모두 반대다. 표지에는 중국 원전의 출판 정보가 나와있다. 본래 천경혹문은 중국의 문인이자 천문학자로 서양 학문의 영향을 받은 유예(遊藝, 호는 자육子六, 1614?-164?)가 썼고 중국의 유명한 철학자 방이지(方以智, 호는 밀지密之, 1611-1671)가 검토한 책이다. 일본에서는 도쿄의 코우잔보우(嵩山房)가 인쇄하였다.

▲ 천경혹문의 표지. 도쿄: 1730

일본에서 재출간된 천경혹문은 완전히 한문으로 되있어서 중국 원전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다만, 일본 천문학자 니시카와 세이큐우(西川正休)가 달아놓은 읽기 부호가 추가되어 당대 일본 독자들이 읽는데 편의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또한 흥미로운 점은, 무명의 독자가 붉은 붓글씨로 주석을 달아놓음으로써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 일본식 읽기 부호와 무명 독자의 필기. 읽기 부호란 주로 한문 옆에 일본어 발음을 표기해놓은 작은 부호들을 의미한다.

1권에는 장황한 머릿말이 연이어 실려있고, 도판이 실린 부분도 있다. 일본 재판본에 대한 서문으로 시작해서, 범례(凡例)라는 머릿말 다음으로 중국판의 서문이 또 붙는다. 그 뒤로는 상고시대부터 명나라(1368-1644) 말기까지의 천문학자들을 나한 목록이 있다. 중국인 천문학자 뿐 아니라, 유럽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마테오 리치 利瑪竇이마두, 요한 아담 샬 폰 벨 湯若望탕약망, 자꼬모 로 羅雅谷나아곡 등)도 10명이나 언급한다. 이들은 중국에서 활동하며 궁정과 다양한 교류를 했다. 예수회사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서 중국 천문학이 서양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유예(遊藝)가 인정했음을 볼 수 있다. 도입부의 끄트머리에는 참고문헌의 목록과 목차가 있다. 

▲ 참고문헌 목록

도표 부분에는 여러 지도와 천문학 도구의 그림이 실려있다. 반 페이지 크기의 삽화가 9개 있으며 각각 아래에는 설명이 쓰여있다. 대부분 태양과 달과 지구의 관계, 일식과 월식, 지구 상의 시간대, 당대의 천문학 기구 등을 묘사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양쪽 페이지를 가득 차지하는 10개의 삽화가 들어간다. 주로 천체 지도이며 세계 지도와 중국 지도도 있다.

▲ 세계 지도

중국 우주론과 세계관에 서양이 미친 영향을 다수의 삽화에서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17세기 유럽에서는 지동설이 이미 논의되고 있었으나, 예수회는 천동설을 강하게 지지하였고 천동설에 기반한 지식 체계를 중국에 전달하였다. 천경혹문의 여러 도표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놓여있다. 서양 학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또다른 사례는 지구가 둥글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17세기 중후반의 중국에서 둥근 지구의 개념은 그저 초보적이었고, 주류는 여전히 평평한 지구 이론을 믿었다. (Chen and Chen, 2000). 그러나 천경혹문은 구형(球形) 지구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지구, 태양, 달의 궤도. 지구가 중심에 놓여있다.

▲ 지구 상의 여러 시간대. 역시 구형 지구의 개념을 확고히 하고 있다.

권2와 권3은 주제별로 구성되어 문답 형식으로 쓰였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데, 권2에서는 대체로 천문 현상에 대한 것이고, 권 3에서는 지질학적 현상에 대한 것이다. 천경혹문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모두 예수회사가 중국에 소개한 서양 천문학에 기반한 것만은 아니다. 중국 전통의 종교적, 철학적 믿음이 담겨 있는 항목들도 많다. 이를테면, 권3 말미에서는 별과 사람의 환생을 설명한다.


책장을 넘어서

천경혹문에서 다루고 있는 정보량이 풍부하다는 것은 앞서 확인하였다. 그런데 동아시아 책의 역사 또는 일본 천문학의 역사라는 맥락에 놓는다면 천경혹문이라는 3권짜리 얇은 책자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진다. 


중국의 일본에서 책의 역사 - 1630 ~ 1730년 경

중국판 원전의 저자인 유예는 명나라(1368-1644) 말기와 청나라(1644-1912) 초기의 시대를 살았다. 이 시대에는 급격한 왕조 교체가 일어났을 뿐 아니라, 시장 규모, 도서 유형의 다양성, 유통망의 범위 등으로 볼 때 전례없는 상업 출판의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상업 출판사들은 적어도 12세기부터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나 16세기가 되어서야 글쓰기와 책 제작이 상품화됨으로써 광범위한 사회 계층에게 인쇄물이 전파될 수 있었다. (Brokaw and Chow, 23-24) 이에 따라, 책의 가격이 충분히 내려가서 저소득층 독자들도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Chow, 55-56)

우리가 이번에 입수한 천경혹문 판본은 에도 시대 중엽인 1730년에 출판되었다. 일본에서 책의 상품화는 1600년 경부터 시작하였다. 중국에서보다 몇 세기 늦은 것인데,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빠르게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1730년 일본에서는 목판 조각, 인쇄, 책의 유통 등을 포함해 도서 생산의 여러 부분이 상업화에 종속되어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Kornicki, 169)

도서 교역과 금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중국 서적이 19세기 말까지 일본으로 수입되었다. 비록 일본 전체의 출판 시장 규묘에 비교해서 이들 수입 서적의 수량은 미미했지만, "일본의 도서 문화와 지적 호기심을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Kornicki, 277쪽과 299쪽). 

천경혹문은 도서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뤄진 중일 지식 교류의 일단면을 보여준다. 도서 교역 덕분에 유예의 책이 일본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는 유여곡절이 많았다. 1630년에서 1720년 사이 일본 막부는 기독교 관련 서적의 유입을 막는 엄격한 금지령을 내렸다. 이 금지령은 유럽 선교사드이 한문으로 쓴 모든 책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내용이 담긴 모든 한문 서적에도 해당하였다. (Boot, 195). 유예가 쓴 천경혹문의 원전을 사실 2부로 되어있었는데, 제 1부 만이 일본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2부는 기독교에 대한 언급이 산재되어있었기 때문에 금지령에 걸렸다. (Mercer, 194). 그러니 당시 일본 독자들은 유예의 천경혹문 전체를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셈이다. 


천경혹문이 일본에 미친 영향

흥미롭게도 유예의 천경혹문과 일본어판 천경혹문은 출판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이어나간다. 중국에서 천경혹문은 전반적으로 인기가 없었다. 중국 천문학의 흐름에서 천경혹문은 주류를 차지한 서적이 결코 아니었고, 천문학 지식의 역사를 서술할 때도 일반적으로 인용하는 책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천경혹문은 대단히 영향력이 있었다. 

유예의 천경혹문 원전은 1672년에서 1679년 사이 어느 시점에 일본으로 유입되었다. 니시카와 죠켄(1648-1724)라는 일본의 중요한 천문학자가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첫 독자였을 것이다. 천경혹문은 일본 천문학 분야의 분기점을 나타냈다. 예컨대, 시부카와 하루미(1639-1715)는 천경혹문으로부터 얻은 유럽 천문학 지식을 죠우쿄우(貞享, 1684-1688) 연간의 역법 개량에 도입하였다. (Tan, 2014) 또한 천경혹문은 일본의 지식계 내에서 구형 지구 이론을 크게 부각시켰고 (Mercer, 194) 일본 천문학자들이 이전까지 몰랐던 남극성을 그리는데 도움을 주었다. (Miyajima, 585). 천경혹문 이전의 일본 천문학은 주로 점성술과 역법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천경혹문은 보다 일반적인 개론서였고, 보다 넓은 독자층이 읽기에 적합한 책이었다. 1730년 판 천경혹문을 보면, 니시카와 죠켄의 아들, 니시카와 세이큐우가 원전에 읽기 부호와 필기를 달아놓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천경혹문은 더욱 유명해졌고 (Watanabe, 1986, 40) 천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되었다. (Watanabe, 1941, 210).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읽힌 덕분에, 천경혹문은 일본 천문학의 발전을 미는 원동력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비록 한때는 불교 승려들에 의해 (천경혹문이 소개하는 우주론이 불교 우주론과 상반되었기 때문에) 이단 서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으나, 천경혹문은 일본의 사상사에 중대한 영향을 남기고 갔다. 그 뒤로도 천경혹문의 다른 판본이나 주석이 첫 출판 이후 100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출판되었다.


감사 말씀:
필자는 카즈코 앤더슨 선생님께서 일본 자료를 파악하는데 도움 주신 점과 돈 로슨 선생님께서 편집 과정에 도움을 주신 점에 감사드리고 싶다.

푸 량위 (미시간 대학교 도서관, 아시아 서고, 중국학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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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이 글의 원문을 보시면 페이지 하단에 추가 자료 링크, 참고 자료 목록이 있습니다.)


전근대 동아시아의 지구 이론에 대해서는, 
제프리 쾨틱 박사님 블로그의 불교 신자는 평면 지구론을 믿는 걸까?

시부카와 하루미(渋川春海)와 정형력(貞享暦)에 대해서는,

도서 교류에 대해서는 적륜재의 목숨을 들었다 놨따 하는 인삼 포스팅
"중국과 지속적으로 인적 지적 교류가 있엇던 조선과 달리 일본은 중세기에서 근세 초기까지 대륙의 동향과 여러가지 부분에서 단절이 있었습니다. 17세기에 접어들어 에도 바쿠후의 안정된 내정과 청의 해금폐지로 인한 일청교류의 시작으로 인해 비로소 그동안 끊어져있던 대륙의 새로운 사조들이 도입이 됩니다. 나가사키를 통한 도서의 수입이라든가, 주자학의 정립이라든가 하는 것들 외에도 의학분야에서도 현대 동의학에서 중요시하는 상한론이나 금궤요략 같은 고전의학서들이 재조명을 받고 그사이 이 고전의학서를 바탕으로 급성장한 명대 의학 및 조선의 의학서가 속속 일본에 도입이 됩니다. (도서수입에 대해서는 여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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