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 님께서 최근 신동아 지에 올리신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어"에 대한 글인데, 제가 모르던 내용도 많이 있어서 참 유익했습니다. 다만 안정복의 동사강목 관련 내용은 제가 이 블로그에서 이야기했던 부분 때문에 혼동을 드린 것이 아닌가 싶어, 이렇게 정정 포스팅을 올립니다.
또한 이태엽 님께서도 비슷한 부분에서 혼동을 겪고 계시니, 이번 포스팅을 통해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 말끔히 해결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추측을 내놓은 사람도 있다. 조선 후기 역사학자인 안정복은 저서 ‘동사강목’에서 울릉도의 ‘가지어(嘉支魚)’가 사람과 물고기의 중간 단계 괴물로 착각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가지어는 바다사자의 한 종류로, 울릉도·독도 근해에 살며 지금은 ‘강치’라고 부른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이 어종을 “몸은 물고기 같은데 네 발이 달렸고 바위 밑에 굴을 파고 산다”고 소개했다. 또 “어린애 같은 소리를 내며 그 기름은 등잔기름으로 쓸 만하다”고 밝혔다. 강치의 독특한 울음소리와 지방이 많은 몸을 제법 사실적으로 설명한 셈이다.
(곽재식 님의 5월 8일자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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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건 강치가 아닙니다.
- 부제: 왜 사료를 신중히 읽어야 할까?

▲ 19세기 일본 기록의 강치.
일주서(逸周書, 또는 급총주서)라는 사료의 왕회해(王會解) 편에는 주나라 때의 큰 회합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주지회(成周之會)라고 불리는 회합이지요. 여기에는 숙신, 예인, 양이, 양주, 발인, 청구... 등등의 인구집단이 참석한 것으로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예인"과 관련되어 언급되는 "전아"라는 동물이 지금은 절멸된 강치, 즉 일본바다사자라는 주장을 꾸준히 접하게 되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아는 강치가 아니라고 봅니다.
한편, 일주서가 실제로 주나라 때 성립된 문서가 아니라, 이후에 작성된 "위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그 부분은 이 글에서 다룰 사안은 아니니, 오현수 선생님의 2013년 논문, "『逸周書」 「王會解」篇의 성서 시기 연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 논문에서 왕회해 편을 어떻게 "번역"해놓았는지만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양재영 선생님의 2004년 논문, "고대 숙신에 관한 연구"도 참조해보겠습니다.

다음은 한국고전종합DB에 올라와있는 "해동역사"입니다. 조선의 다양한 물산을 소개하면서, 일주서의 왕회해 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번역에도 오역이 있기 때문에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우선 보도록 하죠.

그러니까 예인=전아 라는게 아닙니다. 예인이 전아를 바친 것이지요. 앞에서부터 모든 신하가 마찬가지로 조공물을 바치고 있습니다. 동물이 아닌 것도요.
왜 "안정복은 예인(=전아)을 강치라고 보았다"라는 해석이 나왔을지는 알기 쉽습니다. 안정복이 쓴 동사강목의 예고(濊考) 기사를 "잘못" 번역해놓은 한국고전종합DB를 그대로 참조했기 때문일겁니다.
"일주서"라는 텍스트가 무엇인지, 예를 포함한 다른 인구집단은 어떻게 묘사해놓았는지, 그 기록의 맥락은 무엇인지... 등등을 찾아보고자 했더라면 오역을 그대로 옮기는 일은 안 일어났겠죠.

그러니까 예인은 전아라는 동물을 바쳤습니다. "숙신은 뫄뫄를 바치고, 예인은 전아를, 양이는 재자를..." 이런 식으로 중복되는 동사를 생략한겁니다. 그렇다면 안정복은 왜 "전아라는 동물"을 강치라고 추측했을까요?
안정복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달아놓은 주석을 보면서 생각해보죠.
【안】 지금 울릉도(蔚陵島)에 가지어(嘉支魚 인어(人魚)를 말한다)가 있는데 바위 밑에 굴을 파고 살며 비늘이 없고 꼬리가 있으며 어신(魚身)에 네발이 달렸는데 뒷발이 매우 짧다. 육지에서는 잘 달리지 못하나 물에서는 나는 듯이 다니며 소리는 어린애와 같은데, 그 기름은 등유(燈油)로 쓸 만하다 하니, 전아라는 것은 아마 그런 유인가?
그러니까... "소리는 어린애와 같은데, 그 기름은 등유로 쓸 만하다 하니"라는 것을 모두 근거로 든 것을 볼 때, 안정복은 예인이 바친 "전아" 기사와 양이가 바친 "재자" 기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로 혼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소리를 내는 건 전아고, 배에서 기름을 채취할 수 있는 건 재자인데 말이죠.

제가 앞에서 이 번역도 틀린 점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콩잎으로 뜸을 뜨면" 하는 부분입니다. 딱 봐도 뭔가 이상하죠...
원문에는 良夷在子,在子幣身人首,脂其腹,炙之藿則鳴曰在子。라고 되어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겠습니다.
"양이는 재자(를 바쳤다.) 재자는 자라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다. 그 배의 기름을 짜서, 미역(藿)에 굽는다. 곧 울음소리가 재자인 것이다."
곽(藿)이라는 글자는 콩잎이라는 뜻도 있고 미역이라는 뜻도 있는데, 물개과의 동물을 바쳤으니 미역이 더 그럴싸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炙之藿則鳴曰在子"를 한 호흡으로 번역하려다 보니 콩잎/미역으로 그슬르니까 "재자"라는 소리를 내고 고통에 울부짖더라... 라고 번역한 것인데, 저는 즉(則) 부터 새로운 문장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물 학대는 싫어요.
결론을 다시 정리하자면, 양이(良夷)가 바친 재자(在子)는 강치나 그와 유사한 해양포유류가 맞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와 판이하게 다르게 묘사되어있는 전아(前兒)는 해양포유류가 아니겠죠.
어린아이 같고, 일어서서 움직이는 전아의 정체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원숭이의 일종이라고 추측하겠습니다. 확실한건 강치는 서서 걸어다니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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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안정복이 강치에 대한 설명을 주석에 써놓은 것도 본인이 스스로 강치를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성호사설 천지문 울릉도 기사 에 나와있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지요.
왜인들이 어부 안용복(安龍福)이 월경(越境)한 일로써 와서 쟁론할 때 《지봉유설》과 예조(禮曹)의 회답 가운데 ‘귀계(貴界)’니, ‘죽도(竹島)’니 하는 말이 있는 것으로 증거를 삼았다.
조정에서 이에 무신 장한상(張漢相)을 울릉도로 보내어 살피게 했는데, 그의 복명에, “남북은 70리요, 동서는 60리이며, 나무는 동백ㆍ자단(紫檀)ㆍ측백ㆍ황벽(黃蘖)ㆍ괴목(槐木)ㆍ유자ㆍ뽕나무ㆍ느릅나무 등이 있고, 복숭아ㆍ오얏ㆍ소나무ㆍ상수리나무 등은 없었습니다. 새는 까마귀ㆍ까치가 있고 짐승은 고양이와 쥐가 있으며, 물고기는 가지어(嘉支魚)가 있는데, 바위틈에 서식하며 비늘은 없고 꼬리가 있습니다. 몸은 물고기와 같고 다리가 넷이 있는데, 뒷다리는 아주 짧으며, 육지에서는 빨리 달리지 못하나 물에서 나는 듯이 빠르고 소리는 어린 아이와 같으며 그 기름은 등불에 사용합니다.”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누차 서신을 왕복하여 무마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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