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섹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역사 속 인물을 존중하는 글쓰기 번역 시리-즈

노스햄프턴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강의하는 레이첼 모스(Rachel Moss) 교수님의 2018년 글을 번역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에 쟝 푸케의 제단화를 박물관에서 보고 온 참이라, 마침 이 글을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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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하지 않아도 괜찮아 - 역사 속 인물을 존중하는 글쓰기

레이첼 모스
2018년 5월 11일

▲ 천사들로 둘러싸인 성모자 - 멜룬 목판 제단화(Melun Diptych)의 오른쪽 날개, 쟝 푸케, 1450년 경.

지난 며칠 간 5만 3천 명의 사람들이 아그네스 소렐(Agnes Sorel)에 대한 트윗 타래를 리트윗했다. 프랑스 샤를 7세의 애첩 말이다. 이건 정말 멋진 일이다. 중세 여성에 대한 타래가 이토록 인기라니! 다만 그 타래는 좋게 봐주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이었다. 제니퍼 라이트(Jennifer Wright)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건 아그네스 소렐입니다. 1440년대에 소렐은 자신있는 가슴 한 쪽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옷을 주문했어요." 여기에 부연하기 위해 선정된 사진들은 쟝 푸케(Jean Fouquet)의 아주 유명한 그림과 푸케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16세기 그림이었다. 푸케가 그린 초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가슴 노출 때문은 아니고, 왕의 애인을 성모 마리아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르고 락탄(Virgo Lactans, 젖을 먹이는 동정녀) 도상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또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하는데 자주 쓰인 도상학적 요소다. 

샤를 7세와 아이 넷을 낳고 파격적인 의상과 행동으로 이름을 날린 아그네스 소렐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그리겠다는 것은 무척이나 대담한 결정이다. 물론 소렐이 이미 가슴을 드내는 옷차림을 즐겨입었기 때문에 화가가 이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이러한 주장은 아그네스 소렐을 다루는 위키피디아 항목에도 나와있고, 그녀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을 때 뜨는 거의 모든 검색결과에서 다루고 있다. 필자는 소렐이 공공연하게 가슴노출을 하고 다녔다고 읽힐 수도 있는 1차사료를 아주 드물게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들 사료는 15세기에 신체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다루는 쉴라 델라니(Sheila Delany)의 학술서 Impolitic Bodies에 인용되어있다. 델라니는 소렐이 양쪽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는 주장(한 쪽 만이 아니다!)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이것은 소렐이 음란한 패션을 제작하고 발명했다는 조르주 샤스텔랭(Georges Chastellain)의 평가와 쟝 쥐브날 데 우르생(Jean Jouvenal des Ursins)이 (옷의 벌어진 틈새로 가슴과 젖꼭지가 보이는 의복을 포함해) 궁정 여인들의 잘못된 옷차림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궁정 여인들은 슴부심이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두 인용문 모두 꽉 조인 보디스 밖으로 한쪽 가슴만 무심히 내놓은 모습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정말로 파격적인 사실은 패션 리더인 젊은 여성이 왕과 공공연한 내연관계에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신성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안 섹시한 여성인 천고의 동정녀 마리아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 덕분에 우리는 소렐이 궁정에서 지닌 지위에 대해서, 정치적 선언으로서의 예술에 대해서, 15세기 프랑스 궁정의 성문화에 대해서 온갖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하지만 가슴이나 중세 패션에 대해서는 거의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이건 푸케의 작품과 함께 올린 16세기 팬아트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라이트는 아마 소렐이 섹시하고 대담한 패션 트렌드를 선보이는 당대 그림이 (뿐만 아니라 역사 기록이) 여럿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두 그림을 배치했겠지만 말이다.

트위터 타래 하나를 가지고 무척 긴 글을 썼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트위터 상의 섹시한 역사라는 하나의 장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게 어떤 것인지는 이미 익숙할 것이다. 누군가가 역사 속 멋진 여성의 사진을 올리고, 그들에 대한 폭풍트윗을 하면 해당 트윗을 수천 RT를 받고, 사람들은 거기에서 새로운 역사지식을 얻어간 셈이다. 이걸 비판하자니 인색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치 상아탑을 유지하는데 혈안이 된 학자나 할 법한 짓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학계 내외의 장벽을 허무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을 모두 알아주었으면 한다. 게다가 섹시한 것을 전혀 싫어하지 않는다! 위와 비슷한 타래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보다 큰 주제는 역사학자로서 필자가 역사 인물에게 어떤 의무를 갖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해답은 역사적 인물들이 인간으로서 타고난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2017년, 필자는 발레리나이자 아우슈비츠 희생자인 프란체스카 만(Franceska Mann)에 대한 인기 타래를 비판했다. 여기서는 젊고 아름다운 프란체스카의 사진과 함께, 그녀가 SS 친위대 장교 앞에서 옷을 벗어서 주의를 돌린 다음 총으로 쏘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완전 짱짱걸이다! 다만, 이 이야기의 세부 사항은 아마 사실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은 아마도 대담하고 섹시한 방법으로 행해진 자유를 내건 도박이 아니라,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한 용감한 여성의 이야기일 것이다. .


필자가 2017년에 말했듯이 "나는 멋진 여성이라고 하면 가리지 않고 좋아합니다. 하지만 우리 여자들을 멋지게 표현한다는 것이 우리를 기호로 축약하는 것이 아닐 때만 말이죠." 섹시한 역사 타래가 자주 보이는 문제점은 과거를 살아간 인간의 경험을 납작하게 눌러서 흥미로운 썰을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의 인물(주로 여성)에게 현대적인 동기와 욕망을 부여하는 경항이 있다. 역사 속 인물을 두고 사극 의상을 입은 현대의 여성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굳이 중요하진 않지만) 역사학자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과거를 살아간 사람들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하는 사안에 윤리적인 측면이 있다고 믿는다. 필자의 연구가 "문헌을 창작물로 바라보기"라는 포스트모던한 관점을 택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살아간 체험을 필자의 서사적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창작해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필자 스스로도 이러한 우를 범했으리라고 확신한다. 객관적인 글쓰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총 쏘는 발레리나에 대한 트위터 타래를 마구잡이로 뽑아내면서 홀로코스트의 비인간적 공포를 희석시키거나, 대중적인 책을 써서 인물을 사물로 축약(팀 데스몬데스의 2009년 저서, "아그네스 소렐: 역사를 뒤바꾼 가슴과 가랑이"가 일례라고 할 수 있다.)하는 대신, 이처럼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가 다루는 역사 속 인물을 축약하는 대신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주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우선 팩트체킹을 한 뒤, 이렇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 흥미롭고 다차원적인 인물을 그가 겪은 하나의 사건이나 면모로 축약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타래에 조금이라도 역사적 맥락을 더하면서 내가 다루고자 하는 서사를 흐트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에 서사가 흐트러진다면, 내 역사 서술이 어딘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타래 맨 마지막에 더 읽을거리를 제안하는 트윗을 붙이는건 어떨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Yes다.) 이제 아무리 긴 타래를 이어나가더라도 상관 없고, 트윗 당 280자 씩 채워서 써도 상관 없다. 사실, 역사적 맥락에 자그마한 공백이라도 남겨놓는다던가, 트윗의 출처로 삼고 있는 학자들이 쓴 글에 감사를 표하지 않는 것에는 아무런 변명의 여지도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오해로 점철된 과거에 우리 만의 가치관을 통째로 투영하는 대신에 우리가 영업하는 역사 속 여걸의 가치관, 상상력, 장점을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그 인물을 자리매기는 것이 그에게 더 큰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래서 필자는 절대로 50k 이상의 트위터 팔로워를 못 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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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ori 2019/07/12 05:49 # 답글

    와 이 그림을 직접 보셨군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책의 표지가 요거라 역시 좋아하긴 하지만, 그림이나 글이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때의 그 이유가 마음 불편한 것이라면 보고 읽는 저도 마음이 불편해지게 되더라구요;;
  • 남중생 2019/07/12 14:35 #

    모리 님의 글은 섹시함과 역사적 맥락 제공을 둘다 잘 하셔서 좋아요! 많이 보고 배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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