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선생님, 그것은 듀공이 아닙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유리구슬


선생님 그건 듀공이 아닙니다!

모 대만 블로그에서 대만의 "엇갈린 시작"이라는 글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대만(특히 타이난 인근 바다)은 옛날부터 듀공의 서식지였는데, 이후 환경이 파괴되어 듀공은 사라지고 그 기억은 잊혀졌다는 내용이었죠. 글쓴이는 대만에 듀공이 자주 나타났다는 근거로 카타오카 이와오(片岡巌)의 "대만풍속지(台湾風俗誌)" 기록을 듭니다.

카타오카 이와오(片岡巌)의 "대만풍속지"(대만인의 괴담기화)에 실린 바에 따르면: "강희 48년 여름. 녹이문(鹿耳門)에서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다. 그 형상은 말을 닮았다. 등에는 털이 나있고, 신장은 3,4장이었다... 강희 51년, 안평(安平)에 소 만한 크기의 괴물이 나타났다. 몸 길이는 5,6척, 몸에는 털이 났고, 두 귀는 대나무 쪼가리 같았다. 송곳니가 날카로웠다. 가죽은 물소 같았고, 광택이 나는게 수달과 비슷했다... 건륭 9년 겨울 12월, 담수 백사돈(탐수이 현 바이샤툰 보淡水縣 白沙墩堡)에 낙뢰가 있었다. 커다란 물고기 22마리가 죽어서 모래사장에 밀려왔다. 그 형상이 머리는 돼지 같고, 물고기 몸통에 새우 꼬리였다. 몸길이는 한 장 남짓이었다. 눈은 관자놀이 밑에 있었다. 입을 열면 4척, 배 둘레는 2장, 꼬리 길이는 7척, 색깔은 검고, 울음소리는 소와 같았다..."

그런데 저는 이걸 번역할 때부터 저건 듀공을 묘사한 기록이 아닌거 같은데...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원서를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제일 좋겠죠.

이 "대만풍속지"가 출판된 년도는 1921년, 그러니까 조선도 대만도 일본의 식민지였던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면 대만풍속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디지털로요! (뭔가 이상한 결론이지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원문을 찬찬히 읽어봅시다.


대만풍속지 제7집

제1장 대만인의 괴담기화(怪談奇話)

제 1절 괴이(怪異)

강희 19년 5월 팽호(澎湖)에 동물(物)이 있었다. 그 형상은 악어(鰐魚)와 같았다. 육지에 올라서 죽었다. 그 달에 큰물(大水)이 일어 전원을 침수(沖陷)시켰다. 같은 해 6월 수사제독(水師提督) 시랑(施琅)이 군을 이끌고 팽호(澎湖)를 탈환하였다. 같은 달 26일 밤, 큰 별이 바다에 떨어졌다. 그 소리가 천둥 같았다. 8월 녹이문(鹿耳門)에 물이 불어 육지를 침범하여 피해가 몹시 컸다. 동시에 정성공(鄭成功)의 후예 정극상(鄭克爽)이 죽었다. 겨울 11월에 눈과 얼음이 굳기를 1촌 남짓 되었다고 한다. 

강희 48년 여름, 녹이문(鹿耳門)에서 큰 물고기(大魚)를 포획하였다. 형상은 말을 닮았고, 등에 갈기(鬃)가 있었다. 몸길이(長)는 3, 4장. 그 꼬리는 사자(獅)와 같았다. 배 밑에 네 개의 갈기(鬐)가 있어, 마치 네 다리(足)와 같았다고 한다. 

강희 51년 안평(安平)에 동물(物)이 있었다. 크기는 소와 같고, 키(高)는 5, 6척 돼지 같다. 긴 수염(鬚)이 있고 양쪽 귀는 대나무 깎은 것(竹批) 같았다. 이빨(齒牙)은 단단하고 날카롭고, 가죽은 물소(水牛)의 털과 같이 되어 광택 있기가 수달(獺)과 닮았다. 네 다리는 거북이(龜) 같았고 꼬리가 있었다. 토인(土人)이 다투어 그것을 포박하고 몽둥이로 때리니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사람 모두 놀라지 않은 자가 없었고, 또한 그 이름을 아는 자가 없었다.

건륭 9년 겨울 12월, 탐수이(淡水) 바이샤툰(白沙墩)에 낙뢰가 있었다. 큰 물고기(巨魚) 22마리가 모래사장 위에서 죽었다. 그 형상은 머리는 돼지를 닮았고 물고기의 몸통에 새우 꼬리였다. 머리(頭)는 길이가 한 장 남짓. 눈은 관자놀이(頷) 밑에 있었고 입 벌린 크기(濶)는 4척, 배 둘레는 2장, 꼬리 길이는 7척이다. 색은 검고, 울음소리는 소와 같았다. 

건륭 17년 7월, 큰 바람(大風)이 물을 몰고 왔는데, 속담(俗)에는 이것을 기린구(麒麟颶)라고 부른다. 초목이 모두 고사하였고, 가옥과 묘사(廟祠)의 문주(門柱)가 남김없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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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글씨로 처리하고 밑줄을 그은 부분은 대만의 "엇갈린 시작" 포스팅에서 인용하지 않고 생략한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동물들이 다리가 달려있었다는 부분만 골라서 생략한게 아닌가 싶군요.

음... 그야 다리가 달렸으면 듀공이 아닐테니까요;;

그런데 생략된 묘사까지 종합해서 판단해보자면, 이 동물들은 듀공이 아니라 "북방물개"가 거의 확실합니다. (다만, 강희 48년에 목격된 동물은 “큰바다사자”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방물개는 털 색깔이 검고, 수컷은 갈기가 난다. 
북방물개와 거의 같은 서식지를 공유하는 큰바다사자 수컷도 갈기가 난다. 

우선 강희 48년에 잡힌 동물은 (말이나 사자 같은) 갈기가 있었고, 네 다리가 갈기처럼 흐물흐물하게 생겼습니다. 이건 북방물개 수컷일 수도 있고, 큰바다사자 수컷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둘다 갈기가 있거든요. 하지만 어느 쪽이든 베링 해협과 오호츠크해가 주 서식지인 녀석들이 대만까지 내려온 셈이 됩니다.

한편, 강희 51년의 동물은 뾰족한 귀가 달렸는데, 물개과 동물 중에는 바다사자와 물개 만이 바깥에 귀가 있습니다. 물범과 바다코끼리는 귓구멍만 있죠.

그렇다면 여기도 바다사자와 물개 둘 중 하나인데, 이 동물이 물소나 수달처럼 검은 색 동물에 비교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다사자는 검은 색이 아니거든요.


▲ 며칠 전, 동해 바닷가에서 구조된 북방물개. (플레이버튼 왼쪽으로 귀가 삐쭉.)

▲ 북방 바다사자. 귀는 있지만 털이 황금 갈색이다.

그리고 건륭 9년의 22마리 역시 검은 색이라는군요.ㅎㅎㅎ

그러니 위에서 언급된 동물들은 (녹이문에서 발견된 녀석은 바다사자일 가능성도 있지만) 북방물개로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바다사자와 다르게 물개는 검은색 털을 갖고있는 점에서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바다사자와 물개를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이 털색깔입니다.

그렇다면 1698년 오키나와 주변 섬을 찾아온 이 뇨옹~의 정체도 이제 쉽게 판단할 수 있겠군요! 몸통이 검은 소를 닮았다고 하니까 말이죠.

반면, 유구국과 대만을 찾아온 이 동물들이 일본바다사자(독도 인근 동해바다에 서식하던 강치)이거나 백령도의 점박이 물범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강치와 점박이 물범은 색깔도 검은색이 아닐 뿐더러, 강치와 물범은 갈기가 없고, 물범은 밖으로 튀어나온 귀가 없이 귓구멍만 있기 때문입니다.

▲ 백령도 인근에 서식하는 점박이 물범. 귀는 구멍 뿐이다.

강희 19년(1680), 1698년, 강희 51년(1712), 건륭 9년 (1744).
북방물개/큰바다사자가 대만과 오키나와 인근 섬까지 찾아온 해입니다.

아무래도 소빙기가 극심했던 17, 18세기의 차가운 해류를 따라 내려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개가 역사 기록에 남은 것이 단지 이상 기후현상 때문만은 아닐거라는 걸 눈치빠른 독자분들은 이미 파악하셨겠죠?^^

이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To be continued...

▲ 북방 물개의 서식지. 짙은 파란색은 번식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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