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왜 "그때" 악어가 나타났나? [특집]양자 악어 이야기



왜 "그 때" 악어가 나타났나?


켈리 교수님은 "악어와 전근대 베트남사의 침몰" 포스팅에서 벤 키어넌 교수님의 저서, 베트남 통사(Việt Nam: A History from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 2017)의 내용을 비판합니다. 키어넌은 1282년 완전(阮詮, 응우옌 투옌)이 악어를 쫓아내기 위해 쓴 문장이 최초의 쯔놈 문학이라고 주장하는데, 사료를 읽어보면 그렇게 주장할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는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인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때[1282] 악어가 있어 로강(瀘江)에 이르렀다. 임금()께서 명을 내리시길 형부상서 완전(阮詮)에게 글을 지어 강에 던지게 하니 악어가 절로 물러갔다."
(時 有鱷魚至瀘江 帝命 刑部尙書 阮詮 爲文投之江中 鱷魚自去)

"임금께서는 이 일을 한유(의 사례)와 비슷하다고 여기시고 성()을 하사하시어 (완전의 이름은) 한전()이 되었다."
(帝 以基事 類韓愈 賜姓 韓詮)

"(완전은) 또한 국어로 부(賦)와 시()를 짓는데 능했는데, 우리나라 부와 시에 국어를 많이 쓰게 된 것은 참으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又能國語賦詩 我國賦詩 多用國語 實自此始)

이 구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첫번째 점은 악어에게 글을 바쳤다는 것과 응우옌 투옌이 베트남 구어(口語)로 시를 지었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악어에게 쓴 글이 베트남 구어로 작성되었다고 밝히고 있지 않다.

네, "악어에게 쓴 글이 국어로 된 글이었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굳이 완전이 국어로 글을 짓는데 능했으며 그로부터 국어 문학이 유행했다는 TMI를 늘어놓는걸까요? 오히려 악어 글도 국어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의 범위 아닐지...


그래도 엄밀하게 대월사기전서 기사만 글자그대로 보고 이해하자면, 악어 글 = 쯔놈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어쩌면 20세기 중엽에 즈엉 꽝 함이 말했듯이 원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지도요...

"악어를 내쫓기 위해 던진 문서에 대해서, 역사서는 이 문서가 어떤 양식으로 쓰였으며 한문(漢文)으로 쓰였는지 월문(越文)으로 쓰였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서가 놈(nôm, 喃)으로 쓴 제문(祭文)이었다는 통상적인 의견 같은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원문을 찾아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나, 현재로서는 그 어느 곳의 그 어떤 책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제가 관심있는 부분은 쯔놈 문학이 언제 어디서 시작하였는지 하는 부분은 아닙니다.^^ 저는 사실 왜 "그 때" 악어가 로강(瀘江)에 나타났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때 악어가 있어 로강(瀘江)에 이르렀다. 임금께서 명을 내리시길 형부상서 완전(阮詮)에게 글을 지어 강에 던지게 하니 악어가 절로 물러갔다."
(時有鱷魚、至瀘江。帝命、刑部尙書阮詮、爲文、投之江中、鱷魚自去。)

이 "때"라는 것은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걸까요?

사실 대월사기전서에는 추가적인 맥락이 나와있습니다.


"가을 8월, 량강(諒江)을 지키는 신하, 량울(梁蔚)이 통역하여(?) 보고하였다. 원(元)나라의 우승상 소게테이(唆都)가 병사 50만을 거느리고 나타나 소리내어 말하길, 길을 빌려 참파를 정복하겠다(假道征占城)고 하였다. 실은 (우리를) 침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악어가 있어 로강(瀘江)에 이르렀다. 임금께서 명을 내리시길 형부상서 완전(阮詮)에게 글을 지어 강에 던지게 하니 악어가 절로 물러갔다."

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맥락이 이해가 되지요.

쩐 왕조는 원나라의 침략을 받을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이었고, 마침 나타난 이질적인 동물들은 "외세 침략"을 형상화하기에 좋은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써서 악어를 퇴치함으로써 몽골의 침략 또한 (문명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높이고 싶었겠죠.

켈리 교수님도 말씀하셨듯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문예적인 (그리고 중화적인) 접근 방법을 통한 문제 해결"인 것입니다.

또는, 15세기에 대월사기전서를 편찬한 오사련(吳士連)이 보기에 이 두가지 사건은 충분히 역사적 중요성/연관성이 있었습니다. 악어를 물리친 행위는 원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것과 나란히 놓고 볼 수 있는 사건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19세기가 되자 이러한 시각은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흠정월사통감강목(欽定越史通鑑綱目)을 보면, 같은 악어 사건을 다룬 기사에 당시의 황제 사덕제(嗣德帝)가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아놓았지요.


황제께서 비평하시길,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호기심으로 망령히 첨부하였다."


식민지 버마의 동물史를 연구하시는 조나단 사하 교수님은 블로그 포스팅에서 "야생에서 생활해야 하는 생명체가 '길들여진' 공간에 침입"하면 "이런 경우에 종종 동물이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세 베트남의 악어가 바로 이런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악어가 길들여진 공간에 침입했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하 교수님은 동물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인간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함께 언급될 수 있을 때 역사 기록에 남기도 한다고 합니다.

"들소는, 승려와 마찬가지로, 침입자였다. 그의 행동은 동족의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역사 속에서 집짐승이 아닌 동물을 개별 개체로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데, 이처럼 때때로 시야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일본으로부터 정명가도()를 요구받기 전에 이상한 동물이 안 나타나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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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몽골의 베트남 침공에 대해서는 몽고학 개론 1강2강을 보자.




덧글

  • 게으른 바다표범 2019/08/04 12:48 # 답글

    안녕하세요. 남중생님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온 이글루스 유저입니다.

    글을 읽을 때 마다 제가 몰랐던 것들을 알게돼서 흥미롭네요! 특히 뱀이나 악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소개해 주시는게 매우

    재미있습니다.
  • 남중생 2019/08/04 13:11 #

    저도 동물이 나오는 역사를 매우 좋아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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