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일본이 들은 아편전쟁의 소식 (3) - 영자 신문의 "진짜" 발행처 아란타 풍설서

마에다 츠토무 선생님과 박훈 교수님은 모두 "광둥에서 발행되는 영자 신문"이 아편전쟁 관련 네덜란드 풍설서의 정보 출처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는 아주 사소한 오류가 있습니다.
-------------------------------------------------------------------------------------------------------------------------------------------------------------------------------------------

동아시아의 영어 신문

다음으로, 1845년 별단풍설서의 정보 출처를 탐구해보자.

앞에서 보았듯이, 1840년 5월 동인도 총독이 내린 결정에는, "칸톤, 싱가포르 그 밖의 지방의 정기 간행물을 수집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별단풍설서를 작성하게 한다, 고 되어있다. 이걸 보면 적어도 1840년 당초 별단풍설서의 정보원은 광저우(칸톤)나 싱가포르에서 발행된 신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1840년대에 중국 연안을 중심으로 하는 (필리핀을 제외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간행된 구미(歐美)계 신문(주간, 주 2회 또는 월간)를 개관해보도록 하자. 한편, 당시 광저우와 싱가포르에서 간행되던 신문은 모두 영어 신문이다.

광저우 발행 영어 신문은, 청나라 정부로부터의 압박으로 광저우 이관(夷館)의 안전이 위협받은 탓에, 1839년에 마카오로 사무국을 옮겨 그곳에서 인쇄하고 있었다. 이들 신문은, 남경 조약이 체결되어 영국령 홍콩이 개방되자, 1843-44년에 홍콩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식민지 건설이 진행되는 홍콩에서는, 그 일환으로 1841년 5월에 정부 관보(官報) 제1호가 간행되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자력으로 관보를 출판한다는 방침을 1842년에 이미 전환하여, 그 해 갓 발간된 "프렌드 오브 차이나" 지에 관보의 간행을 위탁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은, 1844년 4월, "홍콩 레지스터"에 위탁되었다.

1845년 별단풍설서는, 중국 연안에서 영어 언론세계가 광저우(일시적으로 마카오에 피난하였으나)로부터 홍콩으로 이전한, 바로 그 단경기(端境期)의 신문을 전거로 한 것이었다. 

싱가포르에서는, 1835년 창간한 "싱가포르 프리 프레스"가, 유일한 영어신문이었다.    

실제 전거로 쓴 것은, "프렌드 오브 차이나", "칸톤 프레스", "홍콩 레지스터", "차이니즈 레포지토리", "싱가포르 프리 프레스"이다. 특정 신문에 의존하는 일 없이, 전체를 훑어본 다음에 작성하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싱가포르 프리 프레스"가 가장 많이 쓰였다. 이 신문은 중국에서 간행된 신문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 관계의 기록이 상대적으로 짧고 간결하여, 전모를 아는데 편리했기 때문이리라.

기사의 배열은, 반드시 기사가 신문에 게재된 순서를 따른 것은 아니다. 전체로 보면 오래된 사건부터 새로운 사건으로 집필이 진행되지만, 전부 다 날짜 순으로 된 것은 아니다. "일본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맥락을 더하는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사를 고른 방식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네덜란드어 문서를 작성한 정부 관료는 그저 총독의 결정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만을 생각한 듯 하다. 영어 신문 속에서 청-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기사를 기계적으로 발췌해 엮어붙였다는 인상을 받는다. 동시대에 연달아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들 중에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여 골라낸다는 것은, 정부 관료로서도 몹시 어려웠으리라. 결과적으로는 초점이 흐릿한 문서가 나왔다. 구미 여러 나라의 위협의 실태를 알고 싶었던 막부에게는, 홍콩 재판소의 배심 제도나 영국인 등록의 세부사항은 관심 없는 내용이었으리라. 이 해의 사건으로는, 오히려 청나라가 미국, 프랑스 양국과 벌인 외교 교섭이나 그 결과 생겨난 2개의 조약, 혹은 영국군에 점령된 채로 남아있던 주산열도(舟山列島, 상하이 앞바다에 있다)를 중국으로 반환하는 문제 쪽이 관심을 끌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타비아에 있던 작성자는 막부가 흥미로워할 지점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아편전쟁에 한정한 별단풍설서를 이 이상 이어나갈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이 해 별단풍설서가 시시했다는 것으로 명확해졌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출처: 松方冬子, オランダ風説書, (中公新書, 2010), pp. 158-160.
======================================================================================================================

결론:
그러니까 "광둥 신문"이라고 불린 것들은 사실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간행되고 있었고, 더욱이 네덜란드 측이 가장 많이 참조한 자료는 싱가포르에서 발행된 신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