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일본이 들은 아편전쟁의 소식 (1) - 영국의 전공을 부풀린 풍설서? 아란타 풍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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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교수님의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2014)를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원전을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박훈 교수님은 아편전쟁 소식을 접한 일본 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더구나 청과 전쟁을 벌인 영국이 다음에는 일본을 침략할 거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전쟁 당사자인 청이나 조선이 아편전쟁으로 그다지 큰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던 데 비해 일본 아편전쟁에 대한 갖가지 뉴스와 소문으로 끓어올랐다. 아편전쟁 뉴스를 전한 네덜란드의 풍설서는 광둥(廣東)에서 발행되는 영자 신문을 정보원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승리를 더욱 과장했다. [22] 일본인들의 눈에는 아편전쟁의 패배는 청의 위기였으며 동시에 일본의 위기였다. 일본에는 '페리 내항의 충격' 이전에 아편전쟁의 충격이 있었던 것이다.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87쪽.)

[22] 前田勉, 『近世日本の儒学と兵学』(ぺりかん社、1996), 427쪽. 조선 정부도 사절단을 통해 열심히 아편전쟁에 한 정보를 수집했으나, 주로 베이징 당국이 전하는 정보에 의존했기 때문에 아편전쟁의 결과가 큰 문제가 아니라는 해석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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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풍설서에 대한 이야기로군요! 주석에서 말하고 있는 마에다 츠토무(前田勉,) 선생님의 "근세 일본의 유학과 병학(近世日本の儒学と兵学)"에서 해당 페이지를 보도록 하죠.



텐포 11년 7월, 화란풍설서는 일본에 아편전쟁 관련 1보를 전달했다. 그것은, 뉴스 소스가 광동 발행의 영자신문 등이었기 때문에, 영국 입장에 서서 전쟁의 발단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당국(唐國)이 에게레스 인에게 무리비도(無理非道)한 일들이 있었으므로, 그리하여 에게레스 국에서 당국으로 출병하여, 에게레스 국은 물론 카-후 데 호-후(아메리카주에 있다) 및 인도 에게레스 국의 영지(領地)에서도, 오로지 병사를 모아, 당국에 원수를 갚기 위한 계획입니다.

唐国に而エゲレス人に無理非道之事共有之候所よりエゲレス国より唐国に師を出し、エゲレス国は勿論カーフーデホーフ(アメリカ州の内)及ひ印度エゲレス国之領地に而も、専兵を揃へ唐国に仇を報んが為め之仕組に御座候。


풍설서는 영국의 출병 이유를 청나라의 "무리비도(無理非道)"에 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도우안(侗庵)은, 청나라의 거듭된 아편 금수령(禁輸令)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아편을 밀수하던 사실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텐포 경자(11년) 7월. 화란풍설서에 이르길, 당국()이 영기려(英機黎)를 대하는데 비리무도(非理無道)했다고 언급하는 것이 많았다. 고로 영기려는 장수를 출사시켜 당()을 치겠다 하였다. ... ... 소위 비리무도(非理無道)라 함은, 즉 청()이 아편을 금하는 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청나라는] 매번 회유하였으나, 뉘우치지 않으니, 수백만금을 내어, 이것을 사들인 뒤에 태웠다. 여유롭기가 대국의 기상이다. (이하 생략)
天保庚子(十一, 前田注)七月、和蘭風書に曰、唐、英機黎に待して非理無道のし。 故に英機黎は將に師を出し唐を攻めんとすと。... 所謂非理無道は、即ちの鴉片を禁ずるの令を指すなり。然れども[は]たび諭して悛めず、百万金をち、之れを買ひて後に焚く。綽乎として大の風有り。
(마에다 츠토무, 427쪽)

▲"대국의 기상이다."


같은 페이지에서 마에다 선생님은 코가 도우안(古賀侗庵)의 책, "아편양변기"에 대해 이렇게도 말합니다.

그것은 화란풍설서, 당풍설서(唐風)의 최신정보를 기반으로, 아편의 전파 시작, 청나라의 아편 대책, 아편 전쟁의 발단, 그리고 텐포 11년 12월까지의 경과를 서술하고 있다. 막말 일본에 있어 가장 최신의 아편전쟁 보고서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이 "아편양변기(鴉片醸変)"가 주목받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 아편전쟁관이 막말 일본의 아편전쟁관을 방향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에다 츠토무, 427쪽)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 일본에 아편전쟁 소식을 전한 것은 화란풍설서 만이 아니었다. 당풍설서도 있었다. 

2) 화란 풍설서가 영국의 승리를 과장했다는 언급이 마에다의 책에는 없다. 
영국의 출병 이유(전쟁 발발 원인)를 영국의 입장에서 서술했을 뿐이다.

3) 일본인들은 화란풍설서에만 의존하지 않았고, 그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도우안의 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4) 마에다는 도우안이 화란풍설서의 (영국 위주) 시각을 거부했으며, 도우안의 시각이 막말 일본의 아편전쟁관을 방향지었다고 주장한다. 

5) 그러므로 마에다의 책을 인용해, (영국의 승리를 과장한) 화란풍설서를 읽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크게 충격받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서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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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조만간 네덜란드 풍설서와 아편전쟁에 대한 번역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P.S. 2.  
"복수의 해외 정보원을 확보하여 서로 참조하고, 어느 한 쪽이라도 정보 제공 의무를 게을리 한다면 질책하여, 더욱 신속하게 상세한 정보제공을 하도록 재촉한다는 것이 막부의 방침이었다. "
(똑바로 서라, 카피탄! 포스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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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9/06/27 16:42 # 답글

    그 충격이라는게 어차피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른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전쟁난 뉴스를 볼때마다 느끼는 감정 처럼요. 다만 작중 당국 = 청나라는 당시 일본 지식인들이 세계 최강대국 정도로 알고 있었을 테니, 나름 충격이 크기는 했을 거 같네요.
  • 남중생 2019/06/27 17:16 #

    넵, 충격은 컸습니다.ㅎㅎ 제가 말하려는 건 풍설서에 대한 언급이 틀렸다는 것 뿐입니다.

    안 그래도 “충격이 없었다”는 식으로 읽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제 글을 어떻게 고치면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을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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