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야오 족과 비엣 족 - 2탄 [영남척괴열전]

앞선 글, 야오 족과 비엣 족에 이어 번역합니다. Liam Kelley 교수님 블로그의 The Yao versus the Việt입니다.
--------------------------------------------------------------------------------------------------------------------------------------------------------------------------------

야오 족과 비엣 족 2탄

그래서 야오 족은 중국 사료로부터 얻어낸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지해나갔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야오 족은 반호라는 이름의 개-사람의 후손이며, 해당 이야기는 평황권첩(評皇券牒, 평 황제가 내린 문서) 또는 과산방(過山榜, 산을 넘기 위한 문서)이라는 문헌에 기록되어있다.  


앞선 글에서 필자는 야오 족의 설화와 홍방씨전(鴻厖氏傳) 사이의 유사성을 언급했다. 두 가지 이야기는 현전하는 문헌 정보에 기반해 만들어졌다는 점과 비슷한 서사구조를 보인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두 이야기가 지난 몇 세기 간 역사적으로 "읽혀온" 방식은 매우 다르다.

평황권첩과 과산방은 긴 두루마리에 기록되었는데, 이들 두루마리에는 이야기 속 인물의 그림도 그려져있고 황제의 옥새라고 불리는 인장도 찍혀있다.

두루마기 속 인물 그림은 도교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도상과 몹시 유사하다. 야오 족이 다양한 도교 관습과 신앙을 받아들인 것을 감안할 때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라이 앨버츠는 야오 족과 도교에 대한 책(A History of Daoism and the Yao People of South China)에서 주장하길, 이러한 야오 족 문헌들이 종교의식에서 쓰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더 구체적으로, 앨버츠를 포함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여러 종교의식 때 이들 문헌을 내보여서 (글을 못 읽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인류학자 피터 칸더는 1970년대에 태국 북부의 야오 족 공동체에서 "반호의 후손" 이야기가 결혼식 때 "노래"로 불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칸더는 (반호에게 딸을 시집보낸) 평황을 기리는 복잡한 의례에 대한 정보도 기록했다. 이를테면 평황에게 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식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야오 족 문헌들은 "살아숨쉬고" 있었다. 이들 문헌은 야오 족이 어디에 있든 야오 족 공동체에게 핵심적인 의례에서 "실행"되었다. 


반면에 홍방씨전이 실린 문헌, 영남척괴열전은 전혀 이런 식으로 "읽힌"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 문헌의 창조된 배경과 내용은 그토록 유사하면서도 각각의 공동체에서 그토록 다르게 읽힌 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걸까? 반호 이야기는 야오 족 문화 속에서 장소와 무관하게 "살아숨쉰" 반면, 홍방씨전은 비엣 족 사회에서 그러한 역할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걸 보면서 우리는 두 사회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으며, 각 사회의 이른바 상고사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