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야오 족과 비엣 족 [영남척괴열전]


정면 선생님의 저서, "남조국의 세계와 사람들"을 구입했습니다.

남조국의 세계와 사람들 - 10점
정면 지음/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오늘날 구이저우성의 고원 산지로부터 윈난과 광시를 거쳐 동남아 대륙부의 산간 지대까지 널리 분포하는 야오(猺) 족에 관한 연구는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 준다. 그 연구에 따르면, 야오 족의 경우 광대한 지역에 분산하여 거주할 뿐만 아니라 의상과 풍속 등에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또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의 지족을 형성하였으면서도 '야오'라는 이름과 저 유명한 '반고전설(傳說)'을 종조(種祖) 설화로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56) 그리고 그 연구에서 조사한 태국 서북부 산지에 거주하는 야오 족들의 경우, 자신들과 동종의 야오 족이 베트남 통킹(東京) 지역까지 거주하고 있음을 잘 안다고 한다. 또 이들 연구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들만이 아는 '산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인적이 닿지 않는 험절한 산중에도 이들만이 아는 길들이 종횡으로 이어지며, 이들은 이 길을 이용하여 친척 등을 일상적으로 방문하기도 하는데 그 범위가 700~800 킬로미터에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57) 이렇듯 길은 이어진다." (남조국의 세계와 사람들, 38쪽.)

56) 白鳥芳郎(1985), 『華南文化史硏究』, 東京: 六興出版., 492-523.
57) 白鳥芳郎(1985), 493.


안타깝게도 정면 선생님의 책에서 "야오 족"에 대한 이야기는 이게 전부입니다.
여기에 조금이나마 보충하기 위해, 산길을 잘 아는 야오 족을 이야기하는 Liam Kelley 교수님 블로그의 The Yao and the Việt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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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 족과 비엣 족

야오 족과 비엣 족을 비교하는 것을 본 적은 없으나, 누군가 꼭 해야만 하는 작업이다.

야오 족(베트남어로는 자오Dao 족)은 중국 후난에서 베트남 서북부에 걸쳐 산간 지역에 산 인구집단이다. 비엣 족과 마찬가지로, 야오 족도 자신들의 역사를 중국인들이 일찍이 기록한 사료를 바탕으로 창조해냈다. 야오 족은 이 정보를 평황권첩(評皇券牒, 평 황제가 내린 문서) 또는 과산방(過山榜, 산을 넘기 위한 문서)이라고 불리는 문헌에 기록했다.


이들 문헌에 담긴 정보에 따르면 야오 족은 반호(槃瓠)라는 개-사람의 후손이다. 이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야오 족이 아니다. 중국 사람들이다. 범엽이 쓴 후한서(後漢書)를 보면 반호 설화의 한 가지 버전이 실려있다. 후한서에서 범엽은 모든 "남만(南蠻)" 사람들이 반호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에서 반호라는 개는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를 도와 적장을 죽이는 공을 세운다. 이에 제곡은 자신의 딸을 반호에게 상으로 준다. 제곡은 훗날 이를 후회하고 딸을 돌려받고자 하는데, 마법으로 생겨난 악천후로 인해 좌절된다.

반호의 아내는 6남 6녀를 낳는다. 아들딸들은 서로 결혼해 아이를 가져 인구가 증가한다. 이 사람들은 산에 살면서 스스로 통치하게 된다.


그런 다음, 후한서에는 이들의 사회구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읍()에는 군장(君長)이 있었고, 모두 인수(印綬)를 받았다. 관(冠)으로는 수달 가죽을 썼다. 우두머리(渠師)는 정부(精夫)라고 불렀고, 서로 부르기를 앙도(徒)라고 하였다."

5세기 범엽이 "남만(南蠻)"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가, 1000년 뒤 야오 족이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쓰이고 있던 것이다. 유일한 차이점은 황제의 이름을 제곡(帝嚳)에서 자신들이 지어낸 평황(評皇)으로 바꿨을 뿐이다.

영남척괴(嶺南摭怪)를 읽은 사람이라면, 명백한 유사점이 몇몇 보일 것이다. 야오 족 이야기에서는 중국 황제가 개-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낸다. 한편, 영남척괴의 홍방씨전(鴻厖氏傳)에서는 중국 황제의 아내를 용군(龍君)이 납치한다. [1]


두 경우 모두 황제는 빼앗긴 여성을 되찾으러 가던 중, 초자연적인 힘으로 인해 저지당한다. 새 시집을 간 이 여인들은 아이를 많이 낳고, 그 아이들은 두 집단으로 고르게 나뉜다.

마지막으로, 두 이야기 모두 관료를 지칭하는데 "토속적인" 용어를 썼다. 영남척괴에서는 다음과 같다. "[웅왕은 이들 부(部)를] 동생들에게 나눠 주어 다스리게 했다. 그 다음 위계(位階)로 장상(將相)을 두었는데, 상(相)은 락후(侯)라 하고 장은 락장(將)이라고 했다."[2]

영남척괴의 이야기가 반호와 그 후손의 이야기[3]와 닮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후한서에 등장하는 반호 설화의 영문 번역을 보고 싶다면 이 글의 5-6쪽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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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슨 이유에서인지 켈리 교수님은 계속 구희(嫗姬)를 제래(帝來)의 딸이 아니라 아내라고 한다.

[2]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 22쪽.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 - 10점
무경 지음, 박희병 옮김/돌베개

여기 등장하는 "토속적인" 관직 명칭에 대해서는 타이 단어와 신대 문자 포스팅 참조.

[3]
"반고신화는 반호신화와 혼동되기도 하는데, 하증우()는 『중국고대사』에서 반고와 반호()의 음이 비슷한데, 반고는 남만()에서 천지개벽의 시조로 받들어지다 화하족이 자신의 조상으로 착각하여 끌어들였다고 했다. 이는 중원의 반고신화가 남방민족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다.

한편 『후한서()』 「남만전」에 따르면 고신씨 제곡 밑에 있던 축구(, 짐승)의 이름이 반호였는데, 동신씨()의 적을 물어버린 공을 인정받아 고신씨의 딸을 아내로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깊은 산에 들어가 6남 6녀를 낳았고 그들을 남방의 무릉만()에 번식시켰다고 되어 있다. 반호신화에 대한 『후한서』 기록은 이 정도이고 반고의 전유물인 천지개벽 고사는 기록이 없다.

이렇게 볼 때 반호는 원래 중원의 반고신화와는 관계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중원의 신화와 고사를 전문적으로 기록한 『산해경()』에 신체 각 부분을 대지 등 여러 요소로 변화시킨 신화가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반고 [盤古, pán gǔ] (중국인물사전)


음... 그러니까 시라토리 요시로 선생님은 중국 태초설화로 "반고()"라는 이름의 거인이 등장하는 "반고 설화"와 야오 족의 반호(槃瓠) 설화를 혼동한 듯 합니다. 그리고 정면 선생님도 이 부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신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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