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왕좌의 게임 評] 악녀와 바퀴 부수기 번역 시리-즈

여성 과학인을 다루는 온라인 매체 Lady Science에서 Bad Women and the Breaking of the Wheel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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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와 바퀴 부수기

경고: 이 글은 왕좌의 게임 시즌8의 05, 06화에 대한 대대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왕좌의 게임이 끝났다. 필자는 조금 몽롱한 기분이다. 마치 오후에 낮잠을 잤는데 일어나보니 해가 이미 저물고 있는 그런 기분 말이다. 안방극장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는 우리에게는 생각할 거리가 많이 남아있다. 다시 말해, 모든 남자는 쓰레기지만, 우리 세상에서 악의 근원이 남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어느 시대에서나 여성은 자신에게 허락된 힘을 억압적이고 심지어 폭압적인 목적을 위해 휘둘러왔다. 당신이 마지막 시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시리즈 전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왕좌의 게임은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문화적 순간이었고, 드라마 전반에 걸쳐서 젠더와 권력 간의 관계에 대한 찬찬한 탐구가 진행되었기 때문인 것도 큰 이유다. 

산사 스타크는 상속과 혼인이라는 성차별적인 위계질서로부터 자신의 권력을 되찾았다. 그러면서 전통적 여성성이라는 장신구를 자기 의사대로 빚어나갔다. 아리아는 위계질서라는 개념을 통째로 버렸다. 기존의 위계질서를 배양한 문화도 통째로 저버린 뒤, 귀족 아가씨의 신분을 암살 전문가라는 직업과 맞바꿈했다. 그리고 대너리스는 지상 최고의 권좌에 오르고자 했고 거기에 다다르기까지 여덟 시즌과 두 대륙에 걸친 여정이 걸렸으나, 폭군이 되지 않으리라고 모든 이들에게 약조한 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시즌 5화에서 대너리스가 폭군의 길로 들어선 것을 계기로 성별, 힘, 유전적 숙명에 대한 여러 관점들이 쏟아져나왔다.  

우리는 바퀴를 부수겠다는 대너리스의 약속이 진실되고 순수하기를 원했고, 식민주의 세력이 착취와 독재를 눈가림하기 위해 입에 올리던 거짓이 아니기를 원했다.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은 여성이 "자발적으로" 강간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대너리스의 완벽한 통치라는 환상, 그녀의 거스를 수 없는 힘이, 그녀가 진정한 해방자가 되리라는 희망에 물든 우리를 현혹시켰다. 그리고 이번 5화는 거기에 속은 우리를 두 번 벌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대너리스의 핏줄로 인해 그녀의 주체성이 박탈당하는 것을 확인해야 했을 뿐 아니라, 대너리스가 때맞춰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인물들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도 지나칠 정도로 똑똑히 목격해야 했다.

5화에서 벌어진 폭력과 파괴는 우리에게 형벌인 동시에 경계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여 우월한 공군력을 보유한 모 강대국이 헛된 혁명을 약속하는데 현혹될까 주의를 주듯이 말이다. 그러나 최종화는 대너리스의 힘, 그리고 힘의 결말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크게 한 걸음 물러난다. 대너리스가 존의 손에 죽음을 맞는 장면은 그녀가 웨스터로스에 끼친 온갖 파멸과 공포를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다. 마지막에 가면 해는 다시 밝게 빛나고 킹스랜딩은 마치 온전히 살아남은 것처럼 비춰진다. 나머지 권력자들은 대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웃어넘긴 뒤, 하는 수 없이 브랜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다. 모두들 얼굴을 닦고 새옷을 걸치고는 바퀴가 부서졌음이 선포된다.

제작진은 이런 식으로 시리즈를 마무리 지음으로써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이유로는 대너리스의 캐릭터가 그들이 다루기에 너무 벅차게 되어버린 것도 있다. 작가들 중에 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으리라. 대너리스가 결국 변절했다는 것이 그토록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유 중에는 대체로 남성들에 의해 제작되고 관리되는 우리 대중매체가 여성 캐릭터에게 충분한 자리나 주체성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야기에 여성이 등장할 때 성역할의 "표상(representation)" 역으로 나오기를 기대하게끔 길들여졌고, 우리는 여자가 위험하다던가 그런 식으로 진지하게 여기는 것에 익숙치 못하다. 후자는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어떻게 전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문제인 만큼, 어떻게 픽션을 쓰는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왕좌의 게임에서 주역을 맡은 모든 여성 캐릭터는 백인이고, 서구 매체에서 악당성이 인종으로 구분되는 경향으로 인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우리는 백인 여성을 독재자, 폭군, 식민주의자, 전범으로 생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 이유로는 같은 캐릭터더라도 백인 여성이면 보다 부드럽고, 보다 도덕적인 인물상으로 흔히 표현되기 때문이고, 또 우리가 아직도 여성을 완전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령 우리가 역사 상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발굴해내더라도, 그녀들 일생의 전체는 무시하곤 한다. 이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글을 쓸 때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예컨대, 마리아 시빌라 메리안[1]은 17세기 독일의 박물학자이자 화가였다. 그녀는 동행하는 남자도 없이, 스스로 번 돈을 써서 수리남을 여행했다. 메리안은 뛰어난 자연사 도서와 삽화를 제작했고 그로 인해 여성 과학인의 전당에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메리안은 노예를 부려 표본을 채집했고, 남미 대륙의 식물과 곤충을 연구하면서 노예 여성의 지식을 도용했다. 여행을 마친 뒤 메리안은 표본과 그림과 함께 원주민 여성 노예도 유럽으로 데려왔다. 우리는 메리안의 대담함과 의지, 용기와 지성을 칭송하는데에는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메리안이 취한 행동의 혁명적 잠재력(과학에 참여하고, 홀로 여행하고, 돈을 벌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으로부터 여성을 매어놓은 바퀴를 부수는 능력)을 이야기할 때는 그녀가 자신의 목표를 밀고 나가기 위해 노예 제도에 동참했음을 잊을 수 없고 토착민을 착취했음을 잊을 수 없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대너리스의 기획은 처음부터 의심을 받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안다. 더 나은 세상이라는 식의 약속은 특정한 상황에 처한 특정 인물들에게만 적용되고, 특정한 가치관에 따라서만 작용한다는 것을. 더 나은 피임약을 개발하겠다는 목표에 헌신한 마가렛 생거는 줄곧 20세기 여성해방의 영웅으로 받들어져 왔지만, 그녀는 인종의 보건을 위해 산아제한이 필요하다고 믿은 우생학자였다. 더욱이 생거는 부유한 중산층 여성들이 앞장선 주류 진보주의 운동의 일원으로, 사회 진보라는 미명 하에 폭압적이고 가부장적인 개혁 정책을 여럿 옹호하였다. 같은 운동에 동참한 인물로는 화학자 겸 공공보건 활동가, 엘렌 스왈로우 리차드가 있다. 그녀는 공용 주방을 운영해 빈곤층을 돕고자 하였고, 이민자가 식문화 개선의 혜택을 누리려면 "토속 종교"와 식문화를 버려야 한다고도 믿었다. 그러니 과거에도 바퀴를 부수겠노라는 약속은 단 한 번도 순수한 혁명을 서약했던 적이 없으며, 여성에게도 남성만큼이나 힘을 남용한 죄를 물을 수 있다. 

시즌 3에서 대너리스가 이끄는 군대는 노예상의 만(Slaver's Bay)을 휩쓸고 다니면서 여러 도시를 해방한다. 노예를 풀어주고, 옛 주인들을 학살한다. 시즌 마지막에서 윤카이(Yunkai) 백성들은 해방자 대너리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갈색으로 넘실대는 군중이 그녀를 들어올린다. 위에서 촬영한 구도에서 보면 흰 피부와 백금색 머릿결의 대너리스가 유일하게 눈에 띄고, 갓 해방된 노예들은 식별 불가의 물결일 뿐이다. 이와 같은 장면이 구세주 대너리스의 진짜 본성을 드러내려고 한 것인지, 해방된 사람들의 사의를 연출해내기 위한 무심한 시도였는지는 사실 상관 없다. 스스로를 해방세력이라고 믿는 제국주의의 행보와 제국의 "선의"라는 신화 그 자체가 둘 다 독재와 식민의 역사 속에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리석었던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대너리스의 수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너리스의 서사 과정 전반에 걸쳐 흩뿌려진 복선을 읽어내지 못한 우리 탓인 것이다. 어쩌면 제작진이 대너리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여성이 권력을 휘두르고 특히 남자에게 휘둘리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나머지, 여성이 그런 식으로 표상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갈증이 여성을 온전한 인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을 넘어섰을 수도 있다. 여자도 남자만큼이나 쉽게 변절할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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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1] 암스테르담의 현무도, 혹은 "구불구불 월드"의 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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