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잉카 미이라 만들기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Recipes Project 블로그의 How to Make an Inca Mummy를 번역합니다.
-------------------------------------------------------------------------------------------------------------------------------

잉카 미이라 만들기

크리스토퍼 히니


잉카 문명이 있기 전부터 안데스 지역에서는 미이라를 만들어왔다. 여기서 미이라란 인공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보존된 상태의 죽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16세기 유럽의 식자층은 미이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대체로 멈미(mummy) 또는 모미아(momía)는 고대 이집트 사람의 건조된 사체를 갈아만든 약재를 지칭했기 때문이었다. 잉카인을 이집트인과 동일한 반열에 놓는다는 것은 당대 인정받는 한도 보다 한참 멀리까지 의료 기술과 문명의 범주를 확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앙드레 테베라는 프랑스 박물학자는 Les vrais pourtraits et vies des homes illustres grecz, latins et payens (1584)라는 책을 통해 끌로드 귀샤르가 기록한 장례 풍습 중에서 안데스 지방에 "미이라"가 난다고 한 것을 반박했다.

리옹의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인들에게 물어보기를 미이라 중에 이곳[페루]에서 나오는 것도 있냐고 문의를 한다면 (그게 아니고서야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가 알았더라면, 그런 거짓말을 책으로 내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미이라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들을 것이며 [귀샤르 본인의 고향] 라니외에서 볼 수 없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다.

테베가 보기에, 미이라는 이집트에서만 나오는 것이었다.

▲우이아나 카팍 잉카의 시신. 키토에서 쿠스코로 운반되는 중이다. 펠리페 구아만 포마, 새로운 왕권과 좋은 통치 (Nueva corónica y buen gobierno, 1615). 출처: Det Kongeliege Bibliotek

다시 말해, "고대 페루인"이 어떻게 미이라를 만들었는지에 관한 종교적인 동시에 의학적인 향토 레시피를 살펴보기 전에, 유럽인이 어떻게 미이라를 페루의 것으로 만들었는지를 이해해야한다. 후자의 레시피는 수세기에 걸쳐 제조되었는데, 두 가지 주재료가 있다. 16세기 스페인의 역사기록가와 자연사학자가 잉카 장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방부처리된 황제의 시신(엠발사마도스embalsamados)을 만들었는지 연구한 것이 하나고, 대서양 양안에서 그 비법을 노래한 잉카 혼혈인 역사기록가, 영국 번역가, 프랑스 백과전서파 학자들이 엠발사마도스를 미이라로 만들었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1]

잉카를 포함한 여러 안데스 사람들이 죽은 귀족을 방부처리해서 이야파(illapa) 또는 말뀌(mallqui) 즉 신성한 살아숨쉬는 선조로 만들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있다. 안데스 지방에 다다른 최초의 스페인 사람들도 여기에 호기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1533년, 최초로 쿠스코에 간 2명의 스페인 사람은 잉카 제국 최후로 논란 여지가 없는 황제, 우아이나 카팍과 (그의 본처, 코야 쿠시리마이로 추정되는) 또다른 시신을 보았다. 이를 본 스페인인들은 "시신을 방부처리한 방식으로 된 두 인디언"이라고 묘사하였다. 1550년대 후반에 이르자, 역사기록가 후안 데 베탄조스는 (아마도 자신의 아내, 앙헬리나 쿠시루마이 오크요로부터) 우아이나 카팍의 신하들이 "그를 해부해, 살을 제거하고, 치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원래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의 약혼녀였다. 여기서 치장에 해당하는 단어, 아데레잔돌레(aderezándole)는 것은 어떤 물질을 사용했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그리하여 어떤 손상도 끼치지 않고, 뼈 하나도 부러뜨리지 않은 채; 그의 몸을 햇볓과 바람에 버무리고 치장한 뒤, 다 마르고 버무려진 뒤, 값비싼 옷을 입히고 가마 위에 앉혔다.' [2]  

후대의 스페인인들은 이 과정이 방부처리(embalming)라고 주장하였고, 이렇게 특정지음으로써 잉카 의술의 전문성을 인정하였다. 또한 이렇게 하여 오늘날에도 페루 발삼(balsam of Peru)이라 불리는 신대륙 발삼을 선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1559년 스페인인들은 이야파를 압수하고,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것은 리마에 위치한 유럽 치료의학과 식물학 지식의 중심지, 산 안드레스 병원에 전시하였다. 그곳에서 예수회 박물학자 호세 데 아코스타가 이들을 연구하였고, 일종의 수지(樹脂)나 역청을 사용한 덕분에 "놀라운" 수준의 보존이 가능했다고 결론지었다. (1590) 여기서 아코스타는 이집트의 사자(死者)와 연관지어 쓰이는 베툰(betún)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썼다.

11번째 달. 아야 마르까이 키야(Aya Marq'ay Killa), 사자를 옮기는 날. 펠리페 구아만 포마, 새로운 왕권과 좋은 통치 (Nueva corónica y buen gobierno, 1615). 출처: Det Kongeliege Bibliotek

그러나 잉카의 방부처리 된 황제(엠발사마도스)가 미이라가 된 것은 그의 혼혈 후손들이 기울인 노력과 영국, 프랑스인들이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1609년, "엘 잉카(El Inca)"라는 별명의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는 자신의 큰할아버지, 우이아나 카팍의 손가락을 만져본 기억을 적었다. 그 손가락은 "마치 목각 인형처럼 딱딱하고 뻣뻣했다." 가르실라소는 아코스타의 주장을 반영하여 베툰과 건조한 안데스 환경이라는 조합을 잉카인들이 활용하여 "시신을 온전히 보존해 마치 숨이 붙어있고 건강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단지 말만 못할 뿐이라고 속담에서는 일컫는다."고 언급하였다. 1688년, 가르실라소의 말을 영어로 옮긴 번역가는 엠발사마도스를 한결 더 높이 치켜세우며, "이들 시신은 미이라 보다도 온전하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미이라란 이집트 미이라를 말한 것이었다. 1749년, 프랑스의 박물학자 장-마리 도방통은 아예 잉카 문명의 시신을 이집트 미이라와 함께 미이라 항목에 기재했다. 

그러나 도방통이 살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사안은 신념의 문제였다. 잉카 문명의 이야파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던 것이다. 아마도 리마의 습한 기후로 인해 부패하여 병원 어딘가에 묻혔으리라. 그들의 뼈가 언젠가 발견되리라는 희망은 남아있지만, 새로운 고고학 연구를 통해 시신의 보존법이 발견되기 전까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잉카 미이라 제조법은 향토적인 만큼이나 식민주의적이고 대서양을 통한 교류에서 유래한 것이다. 

=================================================================================================================================

[1] 이 글은 필자의 학위논문, "The Pre-Columbian Exchange: The Circulation of the Ancient Peruvian Dead in the Americas and the Atlantic World" (박사학위 논문, 오스틴 텍사스 대학교, 2016), 제 4장.

[2] 후안 데 베탄조스, Suma y Narración de los Incas, María del Carmen Martín Rubio 편저 (Lima: Universidad Nacional Mayor de San Marcos, 2010 [Cuzco:1557]), 235 [1557:Pt. I, Ch. 48].



핑백

  • 남중생 : RECIPES PROJECT 원문 게재 순서 2019-05-18 07:06:48 #

    ... 7일 - "갈고리주둥이 풀"의 비밀2016년 7월 21일 - 식민지 멕시코의 매독 치료제2016년 7월 28일 - 잉카 미이라 만들기</a><a href="http://inuitshut.egloos.com/1942531"> 2017년 1월 31일 - 로마밥 이야기 (3) 2017년 5월 9일 - 은수저의 사치에서 대중의 기호식품 ... more

  • 남중생 : [육물신지] 선생님, 그건 미이라가 아닙니다! 2019-05-22 03:59:20 #

    ... 것을 의미했다. 물론 그리스 조각상이 그 논의의 범주에 포함된 적은 없지만, 일본에서 이런 (오해를 통한) 의미의 확장이 벌어졌다는 것은 여전히 흥미롭다. (잉카 미이라 만들기 참조.)================================================================================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