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로마밥 이야기 (3) - 맛없는 영국요리를 지켜내자!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Recipes Project의 Cookery, Ancient and Modern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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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요리, 현대 요리

헨리 파워


이 글은 18세기 초에 출판된 "레시피 같은 책" 2종에 대한 것이다. "레시피 같은 책"이라고 하는 이유는 두 권 모두 요리 관련 개념으로 가득하지만 어느 한 권도 부엌에서 쓰인 적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보면 18세기 초의 문화 경쟁구도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도판: 마틴 리스터가 출간한 아피키우스 (제2판. 1709) 속표지 그림. 18세기 부엌과 로마 시대 부엌을 뒤섞어놓은 듯한 풍경이다. 책(codex)으로 된 레시피가 펼쳐진 채 놓인 것이 가장 명백한 18세기적 요소다. 캘리포니아 주, 산마리노의 헌팅턴 도서관 제공. 

1705년, 마틴 리스터는 로마 시대 요리사 아피키우스의 레시피를 출간했다. 이 책을 읽은 독자 중에는 아이작 뉴턴, 한스 슬론, 크리스토퍼 뤤, 캔터버리 대주교 등이 있었다. 훌륭한 위인들의 책꽂이에 자리할 운명을 타고난 책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앤 여왕의 수석 의원"이라고 밝혀놓았듯이, 리스터의 본업은 의사였다. 반면에 아피키우스는 폭식과 탐욕의 대명사였다. 리스터는 라틴어로 긴 서문을 써서 아피키우스가 폭식가라는 오명을 씻어내려고 하였다. 또한 아피키우스의 레시피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수 세대에 걸쳐, 도덕주의에 입각한 역사학자들은 로마가 몰락하게 된 데에는 지나친 식도락 풍습이 기여한 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리스터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야만인들이 로마를 침략하는 바람에 로마인들이 몸에 좋고 건강한 양념과 소스를 발달시켜오던 것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리스터는 당대에 "모던(Modern)"하다고 불리는 축에 속했다. 모던하다는 것은 인류의 지식이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진보해왔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또한 리스터는 현대(modern)의 학문 방법론을 고대 문헌에 적용하는 것을 옹호했으며, 학교와 대학에서 기존에 가르치던 편협한 고전 경전을 넘어 광범위한 문헌과 주제를 연구해야한다고 보았다. 리스터가 출간한 아피키우스는 이런 원칙에 철저히 기반해있다. 리스터의 아피키우스는 당대의 최첨단 연구 방법론을 총동원해 가장 외면되고 이름없는 축에 속하던 고전 문헌을 선보인 책이다. 또한 아피키우스의 지식에 추가 지식을 더하기도 했다. 리스터의 과학적 지식을 아피키우스의 레시피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당대의 독자 중에는 위와 같은 노력을 소모적이라며 비웃는 이도 있었다. 고작 멸치 소스와 겨울잠쥐 요리에 대한 책을 연구하는데 지나치게 지적 자원을 낭비한다는 것이었다. 옥스포드 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교수였던 윌리엄 킹은 확실히 '옛날 사람(Ancient)'에 속했다. 킹은 요즘 사람(Modern)들이 경전의 내용을 무시하고 저평가한다는 사실을 한탄하곤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를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리스터의 아피키우스는 요즘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편향돼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래서 킹은 이 책을 완전히 풍자하기로 마음 먹었다.

1708년, 킹은 "요리의 기술(Art of Cookery)"이라는 책 한 권 길이의 시를 출판했다. 짧은 제목만 봐서는 흔한 요리책 같지만, 길게 달린 부제를 보면 이 책에는 문학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라티우스의 '시론(詩論, Art of Poetry)'을 모방한 것으로, 리스터 박사에게 쓴 편지 및 기타 내용이 있으며, 리스터 박사가 출간한 고대인의 수프와 소스에 관한 아피키우스 코엘리우스의 저작의 제목에서 착안함." 킹 교수의 "요리의 기술"은 18세기 풍자문학 중에서도 가장 괴작으로 손꼽히는데, (고전 문학 비평의 정전인) 호라티우스의 "시론"을 재구성하여 시에 대한 의견이 나오는 구절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요리에 대한 의견이 대신 등장하는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시는 매혹적인('달콤한') 동시에 아름다워야한다는 호라티우스의 주장은 패스츄리에 적용된다. 

바닥에 달달함이 깔려있지 않는 한,
파이의 잔주름을 뉘 신경쓰리오?
Unless some Sweetness at the Bottom lye,
Who cares for all the crinkling of the Pye? (p. 71)

이 시에서 킹이 풍자하고자 한 바는 리스터 같은 사람들이 기존에는 사소하다고 여겨져왔던 문헌을 중요시한다는 것이었다. 호라티우스가 시론을 쓴 것은 후대 작가들이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대서사시를 모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러한 신성한 가르침이 이젠 고작 요리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문에 리스터에게 쓴 편지 중에는 킹이 학교에서 요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한탄하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의 신사들은 웨스트민스터, 이튼, 윈체스터 등 명문 학교에 아들을 보내는데, 휴일이 되어 양고기에는 소금만 치고, 로스트 비프에는 식초만으로 먹는다면 학문의 진보에 그 어떤 희망을 걸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영혼에 무슨 깊이가 있겠습니까? ... 그리고 소스로 말할 것 같으면, 깊은 무지에 빠져있을 뿐입니다. (pp. 3-4)

킹은 또다른 풍자 대상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요리의 기술"은 18세기로 넘어가면서 영국인의 식단이 크게 확대되어가는 풍경을 특유의 괴이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킹은 종종 영국 식탁에서 볼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지적한다. 예컨대 호라티우스가 시에서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내놓은 조언에 대응하는 아래 구절이 그러하다.

옛 상차림을 바꿀 땐 신중을 기하게나
그런 변화는 드문 것이 좋으니
영국의 교역으로 신선한 별미가 알려졌고,
이제 계속해서 쓰여 익숙해졌건만은;
옛 귀인 중에 누가 주방장더러
망고, 포타르고 소스, 송이버섯, 캐비어를 주문했겠나?
Be cautious how you change old Bills of Fare,
Such alterations should at least be Rare
Fresh Dainties are by Britain's Traffick known,
And now by constant Use familiar grown;
What Lord of old wou'd bid his Cook prepare,
Mangoes, Potargo, Champignons, Cavare? (p. 61)

학계의 관심이 아피키우스와 같은 인지도 낮은 저자에게로 쏠리는 현상이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 등 경전을 저술한 저자들의 지위를 위협했듯이, 버섯과 망고와 같은 색다른 미식에 환호하는 대중은 로스트 비프와 양고기로 대표되는 평이한 전통 영국 요리를 위협했다. 그러한 불안감은 18세기 영국에서 자주 볼 수 있었는데, 킹의 사례에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목격한 식단 변화라는 현상을 새로움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근대적(Modernizing) 경향과 연관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킹에게는 리스터의 아피키우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고대인의 수프와 소스"야말로 모던함의 궁극적 상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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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대청은 중세시기에 몇몇 영국 수도원이 재배하던 중요한 작물이었고 16,17세기에는 영국의 핵심작물이었다.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외래 상품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자랑스러운 "토종" 대안 상품의 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Vitrum을 대청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뇌피셜과 갈리아 전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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