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로마밥 이야기 (1) Recipes Project: 사후약방문


데 레 코퀴나리아 - 10점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 지음, 박믿음 옮김/우물이있는집

아피키우스의 데 레 코퀴나리아를 번역하신 박믿음 님께서 곧 카토의 데 아그리 쿨투라도 번역해서 내신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한 기념 포스팅입니다. Recipes Project 블로그의 Roman Remedy Books?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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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레시피
헬렌 킹

음식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대 로마의 아피키우스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아피키우스의 요리책은 2006년에 라틴어 원문과 함께 영역본으로 재판되었다. 64개 레시피의 전문을 여기(링크)서 pdf로 볼 수 있다.

일레인 렁(Elaine Leong)의 최근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요리법 책(recipe books)과는 또다른 양식의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치료법 책(remedy books)이다. 물론 이 블로그의 독자라면 알겠지만, 요리법(레시피)과 치료법(레메디) 사이의 구분선은 모호하다... 그리고 나서 앨런 위티의 "레시피 모음집이란 무엇인가"라는 게시글을 읽고 이 주제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고대 세계의 모음집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이야기해보겠다.[1]

로마 고유의 의술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비밀에 싸여있다. 로마 의술은 그리스 의술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난 듯 하다. 기원전 2세기에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했는데도, 이 정복 사업에서는 근대의 식민통치 역사와는 반대로 정복당한 사람들의 의술이 몸을 지배하는데 승리하였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노래했듯이,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포로가 된 그리스가 야만스러운 정복자를 사로잡았다(Gracaecia capta ferum victorem cepit)"는 셈이다.[2]

그렇다면 그리스 의술로 대체되기 이전 로마 의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기원전 160년 경에 대大 카토(감찰관 카토, 234-149 BC)가 농부와 살림꾼을 위해[3] 데 아그리 쿨투라(농사에 대하여, 직역하자면 "밭 일구기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이 문헌은 현전하는데, 푸딩, 죽, 설사약 등을 만드는 각종 레시피가 실려있다. 그런데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카토 일대기"에서 현전하지는 않는 카토의 저서도 언급한다. 이는 레시피 모음집이었는데, "[카토가] 스스로 요리법 비망록을 써서 가족 중에 누구라도 아픈 사람이 있으면 식이요법이나 치료하는데 썼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전한다. 그렇다면 데 아그리 쿨투라에 나와있는 것 말고 이 비망록에는 무엇이 쓰여있었으며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어쩌면, 근세의 치료법 모음집처럼 치료법으로 이뤄진 '커먼플레이스 북(Commonplace book)'이었을지도 모른다. 카토는 자신이 읽은 책 내용, 친구와 가족의 조언 등에 기반해 이와 같은 모음집을 썼을 것이다. 또한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카토는 "결코 환자가 단식을 하게 하지 않았고, 약초와 오리, 비둘기, 토끼 고기를 조금씩 먹게 했다." (카토 일대기 23) 듣기 좋은 이야기다!

카토의 요리법/치료법 모음집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두번째 사료가 있다. 로마의 작가 플리니우스는 카토의 책을 "콤멘타리우스(commentarius)"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논문, 기록장, 필기(筆記) 등을 의미하는데, 집안의 가장(家長)이 소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토는 이 책을 써서 '아들, 하인, 가족'을 치료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카토가 "스스로" 집성했다고 전하는 반면, 플리니우스는 카토가 그런 책을 "소유했다"고 할 뿐이다. 카토는 맹렬히 반(反)그리스적인 성향을 보였고 그리스 의사들의 위험을 경고했으나, 정작 본인도 그리스어로 된 기술 용어를 잔뜩 들먹이며 그리스 의학서적을 읽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카토의 비망록에 실린 치료법은 그리스어 원전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그리고 다른 로마 가정도 카토의 모음집 같은 책을 소유하거나 집성했던걸까? 그 자료는 어떤 식으로 정리했을까?

적어도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심증이 가는 단서가 있다. 플리니우스가 카토의 모음집을 언급한 이유는 플리니우스 본인이 저술한 "자연사(Naturalis Historia)"에 실은 레시피들이 카토의 책에서 나왔다고 밝히기 때문이다. "자연사"는 몹시나 복잡한 방식으로 구성된 지식의 보고다. 가나다 순으로 나열된 오늘날의 백과사전과는 전혀 다르다. 플리니우스의 말에서 추정해보자면, 그는 카토의 비망록을 해체해서 자기가 보기에 각 레시피가 들어가기 가장 적합한 자리에 재배치하였다. 그렇다는 것은 카토가 일정한 구조로 비망록을 정리해놓았다는 것일까? 카토의 책은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썼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니 레시피를 입수한 순서대로 적어놓았을 것이다. 아니면 한 번 정리한 사본을 따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일레인 렁이 앞서 탐구한 질문을 이어받아보자면, 카토는 목차를 작성했던걸까? 고대 세계는 질문만 한가득이고 해답은 적다.


헬렌 킹은 오픈 대학교(Open University)의 고전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킹의 관심사는 고대에서 근세까지를 아우르며, 여성 의학과 산부인과 의학을 집중적으로 살핀다.

플리니우스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Aude Doody, "Pliny's Natural History',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70 (2009): http://jhi.pennpress.org/PennPress/journals/jhisampleArt1.pdf
(역주: 2019년 4월 21일 현재 위 링크는 작동하지 않는다. https://www.jstor.org/stable/40208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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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두 근세의 레시피 모음집에 대한 글이다. 저자는 근세 텍스트에 대한 생각을 고대 텍스트에도 접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2] 자살☆전설 아리스토텔레스“quoniam Aristoteles Euripum minime cepit, Aristotelem Euripus habeat” 참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밀물을 잡으려 했는데 반대로 이 밀물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잡았다’ (亞利斯多欲得此潮此潮反得亞利斯多)

[3] 원문의 farmer and head of household를 뭐라고 번역할지 고민했다. "농부" 보다는 "농장주"가 맞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카토와 동시대에 활동한 니칸드로스에 대해 번역한 게시물의 내용을 참조하고, 그렇다면 "실제" 독자가 누구였는지는 그렇게 중요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칸드로스는 농촌을 배경으로, 시골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이 전형적인 장르의 시를 쓴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자연을 다루는 교훈시의 문체는 마치 바깥에서 일하는 농부를 돕기 위한 것처럼 쓰였다. 비록 실제 작가와 독자가 아무리 도시적인 삶을 살더라도 말이다." (니칸드로스의 독사 퇴치제 2부: 농촌 공포와 민간요법 中)

또한 "head of household"는 여기서는 "살림꾼"이라고 번역했지만, 뒤에서는 맥락에 따라 "가장"이라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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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9/04/21 23:47 # 답글

    오오.. 이를 테면 로마밥! 이로군요. 추천하신 책이 엄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남중생 2019/04/22 00:52 #

    넵, 저도 이 참에 “로마밥”을 주제로 번역을 좀 해보려합니다. 데 레 코퀴나리아도 읽어보셔요!
  • 아스떼 2019/04/22 16:37 # 답글

    책이 정말 재밌어보여서 장바구니에 바로 담아놓았습니다. 로마 생활사도 재밌지만 그 중에 요리 관련 내용은 더 재밌을것 같아서 기대가 큽니다~!
  • 남중생 2019/04/22 17:22 #

    넵! 책 소개가 호응이 좋으니 저도 덩달아 기쁘네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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