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예티와 인의예지 - 더 읽을 거리 예티와 인의예지!

키스 냅(Keith Knapp) 교수님의 유교의 할고(割股)는 실크로드를 통해 수입되었나?와 칼라 내피 교수님의 "예티와 인의예지" 후반부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제가 이번에 번역하면서 재미있게 읽은 관련 논문 2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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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잔혹한 영광: 근세 아시아에서 본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유해" - 리암 매튜 브로키 (2015)
The Cruelest Honor: The Relics of Francis Xavier in Early Modern Asia, by Liam Matthew Brokey.

초록: 본고는 프란시스 자비에르가 1553년 서거한 이래 완전히 보존된 그의 몸을 물질사(material history)의 시각으로 살펴본다. 중국 해안에서 말레이 반도와 마침내 마지막 안식처 고아까지 시신이 번역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여러 차례 벌어진 시신의 검사에 관한 사료를 논하며, 시신이 인도 서부의 열대성 기후에도 기적적으로 보존된 결과 생겨난 숭배의 전통도 논한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에 방문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근세 아시아의 가톨릭 신자들이 이 시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조명한다.

요약: 1614년, 로마 교회에서는 인도 고아의 예수회에게 (아직 시성되지 않은) 프란시스코 자비에르의 시신의 일부를 요구한다. 예수회원들은 자비에르의 오른팔을 떼어내 로마로 보낸다.

재미있는 부분 1: 한 세기 뒤, 예수회의 대 연설가 안토니오 비에이라는 이 해체 행위를 두고 "세계가 목격한 가장 잔혹한 영광, 혹은 가장 영광스러운 잔혹사"라고 불렀다. (pg. 20)

재미있는 부분 2: 이제 자비에르 성인의 신성함이 글자 그대로 세계를 끌어안는 셈이다. 한쪽 팔은 "동방의 고아, 아시아 교회의 수도에 있고, 다른 한쪽은 서방의 로마, 교회의 수도이자 세계의 수도에 있는 것이다." (pg. 20)

재미있는 부분 3: "이러한 일들을 루터의 삶과 죽음에 비교해보자. 루터는 수도원을 버리고, 독신을 서원했음에도 결혼하고, 교황님께 전쟁을 벌였다. 프란시스코 자비에르는 종교인의 삶에 입단하여, 독신 서원을 가장 성실히 지켜내고, 교황님께 특별히 충성할 것을 서원하여, 성하의 명을 받아 파견되어, 지구에서 가장 먼 땅으로 간다. 이 둘은 서로 반대의 길을 걸었고, 너무나 다른 길이라서 둘 중 하나는 옳은 길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심장과 콩팥을 살피시는 하느님만큼 좋은 재판관이 있을까? 그리고 기적을 일으켜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 영구적으로 몸을 보존한다는 하나의 선물 만큼이나 그분 의견을 확실히 표명하시는 방법이 또 있을까? 하느님께서 루터는 파리 한 마리조차 부활시키지 못하게 만들어, 그의 몸은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자마자 재빨리 부패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한겨울의 엄동설한에 이런 일이 발생하고, 또 얼마나 부패했는지 그 불행한 시신이 눕혀진 납 상자에서 악취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33-34)

아쉬운 부분: "근세 아시아의 가톨릭 신자"라면서 아시아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0에 가깝다. 



2. 이것은 내 몸이다: 뉴잉글랜드와 뉴프랑스 식민지에서 벌어진 성찬식과 식인 행위 - 칼라 세바스코 (2016)
This is My Body: Communion and Cannibalism in Colonial New England and New France, by Carla Cevasco.


논문의 첫 두 페이지:

1720년, 디어필드, 매사추세츠. 신도들이 마을 회관에서 은잔을 돌리며 포도주를 마신다. 
1730년, 퀘벡. 신부가 성체 조각을 금으로 안을 도금안 은제 성합(聖盒) 위에 들고있다가 무릎을 꿇은 신도들의 혀에 올려놓는다.
1636년, 위롱 부족의 땅. 웬닷(위롱) 부족민으로 이뤄진 집단이 이로쿠아 포로를 고문한 뒤, 피를 마시고, 심장을 먹고, 나머지 부위는 냄비에 넣고 익혀서 부족원들과 나눠먹는다.
17세기, 타부신탁 강. 미크맥 부족민 한 집단이 부족 일원의 시신을 구리 냄비 3개를 뒤집어놓은 아래에 묻는다.

위 3가지 식사와 하나의 조리기구를 이용한 매장의식은 모두 성찬식이었다. 실제 혹은 가상의 인육을 주술적 과정을 통해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고 외부인을 배제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들 행사는 각각 귀금속으로 만든 그릇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릇은 실제 혹은 가상의 신체 부위를 담기 위한 것이었다. 개신교도와 가톨릭 교도에게는 그릇 속에서 사람의 몸이 비유적인 변화를 거쳐 식인행위를 우려하는 이들도 그 피와 살을 섭취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게 하였다. 각각의 성찬식에서 이들 그릇이 쓰이는 용도가 대단히 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청교도, 프랑스 가톨릭 교도, 미크맥과 웬닷 등 원주민 집단들은 성찬식에 대한 개념의 차이에 집착했다. 이러한 불일치는 큰 시사성을 가졌는데, 잔혹한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에 서로 간의 접경지에서 이와 같은 피의 의식들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고는 성찬 용기의 물질 문화를 살펴보고, 식인 의식과 성찬 의식을 논함으로써 뉴잉글랜드와 뉴프랑스 식민지에서 전쟁에 가담한 사람들이 공유했으면서도 인식하기를 거부한 문화적 유사성을 분석한다. 결국, 영국인, 프랑스인, 미크맥인, 웬닷인은 각자 쓰는 성찬 용기 사이의 대단한 유사성을 거부하였는데, 바로 이들 용기와 그 용도가 너무나도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식인종이었음"에도 "식인종이 되는 것"을 우려했다. 성찬 용기의 물질적 현실이 평행을 그렸다고 해서, 성찬을 공유한다는 평행적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찬식이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듯이, "공통의 냄비"는 또한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선을 그었다.   

(pp. 556-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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