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양고기 보다 맛있다는 불선양(不羨羊)이란? - On Yeti and Being Just (完) 예티와 인의예지!

12부를 번역합니다. 
예티와 인의예지(On Yeti and Being Just)는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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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갱국(不美羹): 완곡 어법의 역사를 향하여

인육을 섭취한다는 문제는 특히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동물에 빗댐으로써 식인행위를 정당화했으면서도 식인 행위를 논한 글에서 완곡 어법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인육을 일컫는 단어는 각종 명대 문헌에 등장하고, 이들 문헌 중 대다수가 인용한 식인 이야기의 원출처는 12세기 계륵편(鷄肋編)이라는 책이다. 계륵편에는 식용 인육을 지칭하는 여러 단어가 실렸다. 인육에 대한 일반 명칭 뿐 아니라, 특정 인물군의 고기를 지칭하는 표현도 나와있었다. 예쁜 10대 아가씨의 고기는 불미갱(不美羹)이나 불선양(不羨羊, 맛이 양고기 보다 낫다는 뜻)이라고 불렸는데, 계륵편의 판본에 따라 다르게 표기되었다. [69] 어린아이의 고기는 "화골란"(和骨爛)이라고 했는데, 육질이 워낙 부드러워서 뼈를 함께 넣고 익혀야 고기가 녹아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노인의 고기는 넉넉히 불을 지펴야한다는 뜻으로 "요파화"(饒把火)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빼빼마른 노인의 질긴 고기가 떨어져나가려면 불 세기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70] 계륵편에는 인육을 통칭하는 양각양(兩脚羊)이라는 단어도 있었다. 도종의는 이들 용어를 모두 철경록(輟耕錄)에 실으면서 새로운 지식도 추가하였다. 군인들이 각종 인육을 통틀어 부르는 용어로는 상육(想肉)이라는게 있었다. [71]

이시진은 본초강목 인부(人部)에 철경록을 인용하면서 완곡한 표현의 정도를 더욱 완곡하게 바꿔놓았다. 철경록이 인용한 계륵편의 특정 인육을 지칭하는 용어를 모두 생략한 채, 이시진은 인육을 일컫는 단어로 "상육(想肉)"과 "양각양(兩脚羊)" 만을 들면서 두 단어 모두 악인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72] 이는 철경록의 본래 내용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것이었으며, 인육 섭취를 악행으로 규정짓고자 한 이시진의 의도 및 군인과 도적을 멸시하는 본초강목의 전반적 경향과 일맥상통했다. 이시진은 인육을 먹고 이름붙이는 행위를 주로 군인과 악한에게 갖다 붙였다. "이는 인성이 없는 도적들의 행위이니 주벌하기에도 부족하다.(此乃盜賊之無人性者, 不足誅矣.)" [73] 그러는 동시에, 이시진은 외국인이 식인 행위를 한다고 쓰지는 않았다. 

송대와 명대에 쓰인 문헌은 제국의 변방이나 외부에 사는 사람들과 식인 행위를 연관지었고, 종종 외국인이나 소수 민족이 인육을 섭취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곤 하였다. 예컨대 태평어람을 보면, 진랍(眞臘, 캄보디아) 땅에서 신들에게 매년 바치는 희생물에 인육이 쓰인다는 언급이 있었다. 호(胡) 오랑캐와 은둔자가 인육과 시체를 이용해 약을 만들었다. 겸국(兼國)의 군인은 사람의 머리를 잘라 살을 먹고 피를 마셨다. 청두의 한 도시에서는 가판대에서 인육을 팔았다. [74] 이시진처럼 식인 행위를 도둑과 군인의 소행으로 돌리고 외국인 즉 방민(方民)에 대한 서술에서는 제외한다는 것은 당시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송, 원, 명 시대에 인육 소비를 둘러싼 담론의 역사를 짚어보면, 근세 중국에서 인간성과 동물성의 경계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한 첫 시도를 결론지을 수 있다. 동시에, 이를 통해 본초강목의 지식 제작 과정에서 비유와 완곡 어법의 중요성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이시진과 달리 후대 권위자들은 사람을 동물에 빗댐으로써 식인 행위를 완곡하게 표현하기를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명대부터 나온 계륵편의 여러 판본에서는 예쁜 여자아이의 고기를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으로 서로 다른 것이 쓰였다. 이들 용어에는 거의 항상 "양(羊)"이 들어갔다. 더 심한 경우에는 사람 고기가 개고기나 돼지고기에 비견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인육을 얻기 위해 사람을 도살하는 기술을 일컫는데 이런 표현이 쓰였다. 이렇듯 동물에 비교하고 비유함으로써 식인종이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과 인육을 끊임없이 동물에 대비함으로써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근세 시기를 거치는 동안 인간은 한결 더 동물에 가까워졌다. 비유를 통해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굳은 것이다.

명말에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했을까? 우리가 보았듯이, 이시진이 내린 답은 자연 속 인간의 위치가 무엇인지 하는 이해에 기반해있었으며, 그 위치로 인해 인간과 인약(人藥)이 자연계의 일부인 동시에 자연계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군자와 동포는 동물이 아니었지만, 동물에 빗대어질 수 있는 인체 부위를 섭취하는 순간 그는 도덕성과 인간성을 일부 내려놓는 셈이었다. 여기서는 먹는 자나 먹히는 자(문명인, 야만인 모두)나 경계성 동물 및 인간 이하의 영역으로 떨어졌다. 조학민(趙學敏, 1719-1805)과 같은 후대의 권위자는 그 어떤 인체 부위도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16세기에 이 경계선은 아직 형성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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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일부만 번역합니다.)

[69] 고금도서집성의 계륵편에는 "불미갱(不美羹)"이라고 되어있고, 사고전서에서는 "불선양(不羨羊)"으로 되어있다. 필사 과정의 오류로 인해 이러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필사하면서 생긴 실수 때문에 후대 문헌에도 해당 용어가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원대 철경록에는 "하갱양"(下羹羊)으로, 사고전서에 실린 명대 문헌 옥지당담회(玉芝堂談會)이 계륵편을 인용한 부분에는 "위미양"(爲美羊)으로 나와있다. 

[70] 도종의는 계륵편을 인용하면서 나이들고 몸이 마른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 이름이 해당한다고 밝혔다. 

[73] 본초강목, 52권, 인부, 인육, 발명, 1939-1940.
(역주: 이시진이 한 말이 아니라, 도종의의 철경록에 나오는 말을 이시진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P.S. (너무 맛있어서) 양고기를 부러워할게 없다는 불선양(不羨羊)을 보니, 조선의 승기악탕, 또는 승가기가 연상된다... 

"원래 조선에서 '승기악탕'은 맛이 뛰어난 음식을 나타내는 별칭으로 '도미면' 이 그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관 연회에서 스기야키가 조선 관리들에게 대접된 후, 빙허각 이씨의 책 <<규합총서>> 에서 왜관음식으로 닭찜 '승기악탕'이 소개되며, 한글학회의 '큰사전'에서 '승기악탕'은 도미면과 스기야키의 조리법이 합쳐진 새로운 요리로 정의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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