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먹어도 되는 인육? - On Yeti and Being Just (10) 예티와 인의예지!

10부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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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도 되는 인육?

식인 문제는 명나라 말기 의학 문헌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취했다. [51] 최초의 본초서로 알려진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실린 것 중 유일하게 인체에서 나오는 약재는 사람 머리카락이었다. 이시진은 본초강목 인부(人部)의 서문에서 인약(人藥)이 이토록 드물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어 사람과 나머지 세상 만물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52] 이시진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의(義)를 해(害)하지 않는 인체 부위만을 상세히 기록하였다고 주장했다. [53] 이시진은 도교 수련자들이 (뼈, 살, 담낭, 혈액을 포함한) 온갖 신체 부위를 "약(藥)"이라고 부름으로써 정당화한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런 관습이 비인간적이라고 보았다. 이들 항목을 인부(人部)에 실었다는 것은 이시진이 해당 약재의 사용을 우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초강목 내 어느 부문에서나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가장 이상하고 문제적인 순으로 나열하였다. 이시진은 인부(人部) 거의 마지막에 인육을 배치하였다. 그 뒤로는 미이라로 만든 약재인 목내이(木乃伊), 지역 별로 나타나는 사람의 차이에 대한 일반적 서술, 그리고 "인괴(人怪)"가 나왔다.

약으로 사람 신체부위를 사용하는 것을 기록하고 추천한 사람은 의사이자 무관인 진장기(陳臟器, 8세기에 활동)으로, 본초강목에서 이시진이 가장 자주 인용한 권위자에 해당했다. 어쩌면 의서에 인약을 그토록 많이 집어넣은 것은 진장기가 최초였을 수도 있다. 인약을 "금수(禽獸)" 부문에 함께 묶은 진장기는 사람의 타액, 혈액, 살, 장기, 얼굴에 난 털, 시체에서 난 부위 등의 재료를 약에 쓸 것을 제안했다. [54] 진장기는 각 약재가 치료하는 질병을 언급만 했을 뿐, 거기에 해설이나 주석을 많이 달아 보충하지는 않았음에도 후대 송명대 쓰인 본초서에서 많이 인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선례를 감안하여 이시진도 이 사안을 다뤄야 겠다는 압박을 느낀 듯 하다. 진장기와 달리, 이시진은 몇몇 인체 부위를 약으로 쓰는 것을 반복해서 비난했고 그 쓰임을 옹호하는 의사들에게 독설을 날렸다. 그렇다. 분명 써서는 안 되는 신체 부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 

진장기는 사람의 유골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했으나, 이시진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개 조차도 다른 개의 뼈는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55] 군자라면 으레 사람 두개골은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달리 쓸 약재가 없다면, 아주 오랫동안 묻혀있던 머리뼈는 약으로 써도 된다고 이시진은 판단했다. [56] 명대 전까지는 대개 인간의 태반을 흔히 사용하는 편은 아니었다. 명대에 들어 어떤 명의(名醫)가 수명을 연장하는 환약에 태반을 재료로 넣어 널리 유통시켰다고 한다. [57] 유구국(琉球國)의 부인은 아이를 낳은 뒤 태반을 먹는다고 기록한 문헌도 있었다. [58] 팔계(八桂) 지방의 사나운 사람들은 사내아이가 태어난 태반을 오향분(五香粉)으로 양념을 해서 먹었다. [59]  이시진은 인간의 태반을 섭취하는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몰랐다. 본초강목에서는 태반 섭취에 대한 확답을 내리지 않았다. 태반을 쓴 약이 사람의 기를 보강한다는 근거는 많았다. 하지만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신체 부위를 먹어도 되는 걸까? 혹시 윤리 강상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이시진은 양수를 약으로 쓰는 것에 아무런 문제 의식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탯줄도 마찬가지로 문제 없었다. 이시진은 탯줄이 말라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다 익은 박이 덩굴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에 비교하였다. 식물적 도상을 비유로 들어 태반의 섭취를 용납할 수 있게끔 하는 수사 기법이었다. [60]

인간의 담낭은 흥미로운 사례였다. 이시진은 북방 국경의 군인들이 사람 담즙을 이용해 상처를 치료한다고 설명하며 위급할 때에만 쓸 치료법이라고 하였다. [61] 그러나 수확해서 말린 담낭은 아주 좋은 약재였으며 예의를 거스르지 않았다. 이시진은 도적이 사람을 죽이고, 담낭을 뜯어내, 술 안주로 먹는 행위에서 선을 그었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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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일부만 번역합니다.

[58] 수나라 때(581-619) 기록된 유구국(琉球國)이라는 지명은 대만이나 류큐 섬 등으로 비정되어왔다. 수서(隋書)에 나오는 유구국의 식인에 대한 다른 기록은 Pettersson 1999:127. 참조.

[59] 본초강목, 52권, 인부(人部), 인포(人胞), 발명(發明), 1937. 여기서 필자가 "사나운" 사람이라고 번역한 글자는 료(獠) 자인데, 료(僚)의 이체자로 풀이할 수도 있다. 료(僚)는 중국 남부의 소수 민족을 가리킨다. 漢語大詞典縮印本 (Shanghai: Hanyu d cidian chubanshe, 2002), 2:2779c. 참조.

P.S. 리암 켈리 교수님의 베트남의 료자(獠子) 포스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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