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유교의 할고(割股)는 실크로드를 통해 수입된걸까? (6) 예티와 인의예지!

6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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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티의 변신


도판 31. 수자티 본생담.
출처: akg-images의 사진. 런던, Maurice Babey 촬영.
해설: 아기 수자티가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구한다. 키질 석굴 사원. 4세기 중엽 내지 5세기. 벽화.

중국에서 수자티의 인기가 그토록 높았다면, 만당(晩唐) 시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24효의 전당에 든 것은 어째서 수자티가 아닌 샤마가 된 것일까? 42) 유학자들이 살을 써는 수자티 보다는 샤마의 이야기를 선호해서 그런걸까? 필자는 샤마 이야기와 수자티 이야기 모두가 24효에 편입되었다고 본다. 이십사효(二十四孝)의 전수자들은 불교의 샤마를 유교의 염자로 변신시킨 한편, 남자 수자티를 왕무자의 아내로 변신시켰다. 분명 근거는 희박하지만, 설득력 있다. 우선, 시기의 문제다. 왕무자 아내 이야기에서는 해당 사건이 8세기 전반에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기록된 연대는 8세기 후반이거나 9세기 초반이다. 이는 수자티 설화의 인기가 정점을 찍은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두번째로, 둔황에서 발견된 문서가 다른 곳에서 작성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왕무자 아내 이야기를 기록한 최초의 문헌이 수자티 설화가 널리 퍼진 둔황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은 시사성이 크다. 세번째로, 수자티 설화를 도상으로 묘사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수자티가 살을 베는 장면을 들 수 있다. 키질에서 이 설화는 수자티가 어머니를 죽이려는 아버지를 막는 단일 장면의 벽화로 그려지는 반면 (도판 31) 둔황에서는 항상 여러 장면으로 묘사하여 수자티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행위가 강조를 크게 둔다. 윈스턴 카이언의 논문에 따르면, 수자티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하는 장면은 둔황에서 점차 사라지는 한편, 수자티가 살을 베는 장면은 점차 증가한다. 더욱이 8세기에 그려진 장면들을 보면 수자티의 아버지가 수자티의 살을 베어낸다. 그러나 이후에는 항상 수자티가 앉은 자세로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내고 있다. (도판 32). 43) 필자는 누가 어느 부위를 베어내는지가 중요하다고 보며, 이를 통해 자기 살을 베어내는 수자티의 도상이 왕무자 아내 도상에 영감을 주었다는 주장에 신빙성이 실린다고 본다. 왕무자의 아내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 거의 항상 앉은 자세로 허벅지나 팔에서 살을 베어내고 있다.

도판 32. 수자티 본생담.
출처: 둔황 아카데미. 사진은 화둥사범대학(ECNU) 출판사.
해설: 둔황 108호 석굴. 남벽. 10세기 벽화.

그렇다면 어째서 수자티 설화를 전승한 유학자들은 수자티를 여자로 만든걸까? 그렇게 함으로써 수자티 설화를 쉽게 순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이 설화를 재구성함으로써 수자티의 아버지가 자기 아내를 죽이려 했다는 꺼림칙한 장면을 생략할 수 있다. 두번째로 초기 중세 중국인들은 과격한 효행을 여성과 연관지었다. 대개 효자 보다는 효녀가 목숨을 걸고 부모를 봉양했다. 그 이유는 여자는 친가를 떠나고 또 시댁에 새로 들어가기 때문에 집안에 대한 충성심이 항상 의심받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여성은 남성 보다 소모품으로써의 성격이 강했다. 44) 세번째로, 왕무자의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의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모든 중생에 대한 보시라는 수자티 설화의 본래 교훈이 사라지고 효도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나 자기희생을 통해 이뤄지는 행위라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며, 이 점은 자신의 살을 친어머니가 아니라 시어머니에게 먹인다는 점에서 더욱 강조된다. 수자티의 성별 전환을 감안하면 왜 인기가 덜한 불교 효자 샤마는 이십사효에 편입된 반면에 수자티는 (적어도 표면 상으로는) 편입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설화가 그토록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은 의외지만,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몇 가지 주요 평행 사례들이 있다. 주인공의 성별이 변하는 것을 두고 보자면, 유명한 관음(觀音)의 사례가 있다. 유춘팡에 의하면, 당대 초기 이래로 관음 보살은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는 여러 가지 여성의 모습을 취하는 것으로 자주 묘사되며, 명망있는 여성들이 관음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45) 롤프 스타인은 인도 신들의 양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밀교의 보살들이 흔히 남자나 여자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취하고 등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46) 1100년 경에는, 자신의 손과 눈을 병든 아버지에게 먹여 살린 묘선(妙善)이라는 재가 비구니(lay nun) 전승을 둘러싼 신앙이 발전하였다. 묘선은 천수(千手), 천안(千眼)을 한 밀교 관음의 현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후로 관음은 종종 효녀 묘선과 동일시되었다. 47) 다시 말해, 중국의 불교 신도는 남신이었던 관음을 가져다가 할고(割股)를 행하는 인간 여성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도판 33. 염자(샤마).
출처: 산시성 박물관. 필자가 촬영. 
해설: 샨시성 지샨현 마촌 4호 무덤(山西稷山馬村4 號金墓). 12세기. 점토상.

여기에 더해 중국 불교에서 본생담을 근본적으로 변형한 것으로는, 샤마 이야기가 가장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샤마 본생담이 중국에서 변형되어 기록된 최초 사례는 2개의 둔황 사본에서 나온다. 이들 사본에서 샤마는 맹인 부모의 모든 수발을 다 들어준 외국인으로 나온다. 샤마는 종종 사슴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슴을 벗으로 사귀었다. 어느날 부모님을 위해 사슴떼와 섞여 물을 기르던 중, 왕이 실수로 샤마를 쏘아 맞췄다. 죽기 직전, 샤마는 '왕께서는 화살 하나로 3인을 죽였군요'라는 명대사를 읊고, 이야기는 여기서 갑자기 끝난다. 48)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래의 샤마 본생담에서 3부분을 빠뜨렸다는 것이다. (1) 샤마는 노부부의 해탈을 돕기 위해 태어난 보살이라는 것. (2) 왕이 샤마의 부모를 돌보기 위해 왕좌에서 물러남으로써 자비의 완성과 자선을 실천한다는 것. (3) 샤마가 진실된 서원(Vow of Truth) 또는 신들이 내려준 묘약을 통해 부활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이 설화에서는 샤마의 희생적인 부모 봉양을 강조하는 한편, 왕이 실천한 불교적 덕목이나 불교의 구원적인 힘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곽거경(郭居敬, 1295–1321에 활동)이 쓴 이십사효시(二十四孝詩)는 이후 정전(正傳)이 되는데, 여기서 샤마는 주나라 때의 염자(剡子)라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눈멀고 병든 부모가 사슴 젖을 청하자, 효성이 지극한 염자는 사슴가죽을 뒤집어쓰고 사슴떼와 어울린다. 그때, 웬 사냥꾼이 염자를 쏘려고 하나, 염자는 상황을 설명하고 죽음을 모면한다. (도판 33). 49) 이 설화는 중국의 먼 과거를 배경으로 하며, 샤마는 죽음을 맞기는 커녕 효성 덕분에 해를 입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샤마 설화가 겪은 파란만장한 변형을 염두에 둘 때, 중국의 편집진이 수자티 설화도 근본적으로 변형하였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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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만당기(838-907)에 이십사효 장르가 탄생한 것에 대해서는, 鄭阿財. (1982). 敦煌孝道文學研究. Taipei: Shimen tushu gongsi, pp. 492-94.와 道端良秀. (1964). “中国仏教と食人肉の問題". In 慈覚大師研究, 福井康順 편집, pp. 391–404. Tokyo: Tendai gakkai, pp. 130–32. 참조.

43) Kyan, “The Body and the Family,” pp. 63–106.

44) Knapp, Selfless Offspring, pp. 169–78.

45) Yü Chün-fang. (2001). Kuan-yin: The Chinese Transformation of Avalokitesvara.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pp. 293-312.

46) Stein, Rolf A. “Avalokiteśvara/Kouan-yin.” Cahiers d’Extrême-Asie 2 (1986): pp. 24-43. 참조.

47) Dudbridge, Glen. (1978). The Legend of Miao-shan. London: Ithaca Press, pp. 10-18.

48) 이 설화 재현은 P. 3536과 P. 3680.을 혼합한 것이다. 程毅中. "敦煌本〈孝子傳〉與睒子故事". Zhongguo wenhua 5 (1991):
p. 150. 참조.

49) 謝寳耿. (2000). 中國孝道精華. Shanghai: Shanghai shehui kexueyuan chubanshe, pp. 2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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