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유교의 할고(割股)는 실크로드를 통해 수입되었나? (5) 예티와 인의예지!

5부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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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티 본생담이 중국에서 누린 인기

중국에서는 샤마(Śyāma, 剡子) 이야기와 수자티(Sujāti) 이야기가 효(孝)에 대한 본생담으로 가장 유명했다. 샤마 본생담은 어느 보살이 나이 든 맹인 부부의 아들이 되어 부부의 해탈을 돕는다는 이야기다. 사슴가죽을 입은 샤마가 숲에서 부모를 봉양하던 중, 왕이 실수로 활을 쏘아 샤마를 맞춘다. 죽어가는 샤마는 '왕께서는 화살 하나로 3인을 죽이셨소'라고 외친다. 왕은 잘못을 깨닫고 왕좌에서 물러나 샤마의 부모를 봉양하리라고 맹세한다. 맹인 부모가 죽은 샤마를 애도하자, 신들이 샤마를 되살린다. 1968년 케네스 천(Kenneth Ch'en)은 중국에서는 샤마 이야기가 워낙 유명해진 나머지 옛 주나라(1045-256 BCE) 때 염자(剡子)라는 가명으로 24효 이야기에 포함되었다고 밝혔다. [32] 샤마 설화가 (특히 둔황의) 중국식 불교 석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이 설화가 중국에서 환대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3] 

그럼에도 수자티의 인기는 샤마가 누린 인기를 능가하였다. 타림 분지의 키질에서는 수자티 설화가 최소 5번 묘사되어있다. [34] 툼슈크(Tumshuk)에는 마른 점토 부조에 묘사되어있다. 둔황에는 수자티 설화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본생담인데, 무려 33번이나 등장한다. [35] 수자티 설화의 등장 빈도는 둔황 석굴들이 생겨난 전체 시기를 아우른다. 수자티 다음으로 흔한 마하사트바(Mahāsattva) 본생담은 굶주린 어미 호랑이와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먹게 하는 왕자의 이야기인데, 고작 16번 등장할 뿐이다. 시샤오옌(Hsiao-yen Shih)는 수자티 설화가 샤마 설화와 마하사트바 설화의 혼합일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였다. [36] 마하사트바 본생담과는 달리, 예술가들이 수자티 설화를 표현 및 활용한 방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고 이는 수자티 본생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윈스터 카이언(Winston Kyan)은 말한다. [37] 어찌 보면 수자티 설화가 샤마 본생담을 대체했다고 할 수도 있다. 둔황에서 가장 늦은 시기에 묘사된 샤마 본생담은 수나라 때(약 581-618)에 등장한다. 반면에 수자티의 형상은 당나라 초기 이후에야 흔해지기 시작한다.

수자티 설화 중에서도 수자티가 자신의 몸을 부모에게 먹인다는 설화는 아마도 다른 사신담(捨身談)과 마찬가지로, 인도 북서부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해당 설화는 북서부를 제외한 인도 전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수자티는 아버지를 애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그려진다. [38] 그림 속에서 수자티가 할고를 하는 것으로 나오는 최초의 사례는 4, 5세기 키질 벽화다. 이미 문헌 사료를 통해 해당 설화는 북서부 인도의 타림 분지 지역에 단단히 근거해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39] 인도 지역의 석굴에는 해당 설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키질에서 최초로 그려진 사례가 확인되는 점, 북서부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형태로 문헌에 등장한다는 점을 볼 때, 이 설화는 북서부 인도에서 생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서부 인도/중앙 아시아는 기원전 2세기 이래로 중국문명과 접촉이 있었으므로, 수자티 본생담의 도입부가 중국 효행담에 반응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게 된다. 현우경과 잡보장경 모두 아난다가 석가모니 부처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난다가 시내에 나가 보시를 받으러 다니던 중, 맹인 부모를 위해 먹을 것을 구걸하는 효자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 효자는 좋은 먹거리를 구하면 부모님께 드리고, 나쁜 음식이나 상한 음식을 받으면 자기가 먹었다. 여기에 대해 부처님께서 가라사대, 그 정도 효행은 어려운 일도 아니며, 부처님이 전생에서 자기 살로 부모를 살린 것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다. [40] 이 도입부에서 주목할 부분은, 내가 먹는 음식 보다 나은 음식을 부모님께 드린다는 전형적인 중국식 효행의 사례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불교식 효행이 더 뛰어나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효자는 자신의 살과 목숨까지 바쳐 부모를 봉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자티 설화는 중국의 효행담에 대한 불교 측의 응답이었을 수 있다. 수자티 본생담은 이전의 효성스러운 샤마 본생담도 뛰어넘는데, 샤마는 실수로 부모 대신 죽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남을 위해 내 신체를 희생하는 것이 덕행이라는 수자티 본생담의 교훈은 이미 5세기부터 중국인들이 수자티를 모방하게끔 영향을 주고 있었다. 혜교(慧皎, 497-554)의 고승전(高僧傳)에 따르면, 북량(北凉, 397/401-39)에서 극심한 식량부족이 일어났을 때, 둔황 근처에서 온 법진(法進, 법영法迎이라고도 불림. ???-444)이라는 승려가 어느 동굴에 들어갔더니 한 자루 칼과 소금을 지닌 굶주린 사람들이 그 안에 가득했다. 법진 스님은 그 앞에 몸을 내놓고 사람들이 자신을 먹을 수 있게 하였다. 굶주린 사람들은 스님이 하라는 대로 감히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을 돕기 위해 스님은 스스로 살을 베어 소금에 버무리기 시작했다. 허벅지 살을 전부 도려낸 뒤, 스님은 이 고기가 며칠 간 먹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며칠 뒤에는 왕이 보내는 구휼단이 구호식량을 가지고 도착한다는 것이다. [41] 법진이 부모를 먹인 것은 아니지만, 이 설화는 수자티 설화와 동일한 모티프를 공유한다. 자신의 몸을 써서 임시방편으로 사람을 먹여살렸다. 아마도 법진은 수자티 본생담에 영향을 받아 그러한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의 고향이 둔황 인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법진 스님이 수자티 설화를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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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Ch’en, Kenneth. “Filial Piety in Chinese Buddhism.” Harvard Journal of Asiatic Studies 28 (1968): 82–86.

[33]
敦煌研究院. (1992). 敦煌連環壁畫精品. Lanzhou: Gansu Shaonian ertong chubanshe, p. 77.

[34] Bell, Didactic Narration, pp. 152–53.

[35] 敦煌研究院. (1992). 敦煌連環壁畫精品, p. 69.

[36] Shih, Hsio-yen. (1993) “Readings and Re-readings of Narratives in Dunhuang Murals.” Artibus Asiae 53, nos. 1-2 p. 70. 참조.

[37] Kyan, Winston. (2006) “The Body and the Family: Filial Piety and Buddhist Art in Late Medieval China.” 박사학위 논문, 시카고 대학교, pp. 53-56.

[38] Grey, Leslie. (1990). A Concordance of Buddhist Birth Stories. Oxford: The Pali Text Society, pp. 143, 238. 그리고 Cunningham, Alexander. (1962). Stūpa of Bharhut: A Buddhist Monument. Reprint. Varanasi, India: Indological Book House, pp. 76-77 및 도판 XLV II 참조.

[39] 쑨슈션(孫修身)은 북주(北周) 시대에 그려진 296호 석굴의 수자티 그림은 현우경에 실린 설화를 따른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孫修身, 敦煌莫高窟第296窟《須闍提》的研究 . Dunhuang yanjiu 1 (1992): pp. 52–58. 참조.

[40] 량리링 梁麗玲, (1998). 賢愚經硏究, p. 50, 그리고 량리링 梁麗玲, 雜寶藏經: 及其故事硏究, p. 6. 참조.

[41] 慧皎, 高僧傳, 12.44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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