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유교의 할고(割股)는 실크로드를 통해 수입되었나? (3) 예티와 인의예지!

2부에 이어 3부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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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생담과 효행담

그렇다면 당나라 의사들은 산 사람의 인육이 난치병을 치료하는데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을까? 필자는 불교의 본생 설화(자타카)와 비유 설화(아바다나) 중에서도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에서 유행한 설화가 할고를 통한 효행담에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14] 본생담은 석가모니 부처의 전생을 이야기하는 설화다. "덕행"이라는 뜻의 아바다나는 어떤 인물이 전생에서 행한 덕행을 부처가 이야기해주는 형식의 설화다. 이들 설화는 500여 건이 있다. 이야기의 교훈을 살펴보면 덕행을 가르치는 것도 있고 일상에서 겪는 위험에 조심하라는 실용적인 조언도 있다. 그럼에도 중앙아시아, 인도 북서부, 중국은 모두 회화로 묘사된 설화는 주인공이 기꺼이 자신의 신체의 일부나 전부를 희생해 남을 돕는 이야기다. [15]

레이코 오누마는 이를 두고 "사신(捨身, gift-of-the-body)" 설화라고 이름붙였다. [16] 이들 설화에서는 대승 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덕목, 무한한 자선 행위의 완성이라는 뜻의 "다나 파라미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자선 행위는 즐거움에서, 즉흥적으로, 오로지 자비심에서만 우러나와야 했다. [17]

몇몇 "사신 설화"는 자신의 신체가 약효를 띠고, 불우한 남에게 내 살을 먹이는 것이 덕행이라는 개념을 오롯이 담고 있다. 휴버트 더트는 마하세나닷타 혹은 마하세나라고도 불리는 대군녀(大軍女)의 설화의 존재를 조명하였다. 대군녀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고, 고기를 익힌 뒤, 병든 승려에게 먹여 치료한다. 더트에 따르면, 율(律, 비나야)에 등장하는 몇몇 이야기에서는 대군녀의 자비로움을 찬양하면서도 자신의 살고기를 승려에게 먹인 것에 대해서는 비난한다고 한다. 반면에 대승 불교의 대군녀 설화에서는 허상에 불과한 몸을 희생하고자 한 의지를 칭송한다. [18]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살을 먹이는 아들 이야기도 있다. 왕이 죽을 병에 걸리자 인욕(忍辱) 왕자는 6명의 간악한 대신과 상의하는데, 대신들은 사람의 골수와 눈알을 먹어야만 아버지가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왕자는 자신의 골수를 뽑고 눈알을 도려낸다. 아들의 신체 부위를 먹은 아버지는 병이 낫는다. [19] 여기서 확실히 볼 수 있듯이, 이들 설화에는 인육 및 신체부위가 약으로 쓰일 수 있다는 개념이 강하게 들어있다.

회화에 묘사된 설화를 살펴보자면, 둔황에서 가장 일찍 만들어진 축에 속하는 석굴을 보면 "사신 설화"가 중국에서 빠르게 수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세기 초에 제작된 275호 석굴의 북벽과 남벽 벽화에는 모두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을 강조하는 본생담이 그러져있다. 지성이 있는 모든 존재를 구제하는 댓가로 모공 하나하나 마다 바늘을 꽂아넣는데 동의한 비능갈리(毗楞竭梨) 왕, 사악한 브라민에게 머리를 내어주기로 한 찬드라프라바 왕(月光王), 비둘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살을 매에게 먹인 시비왕(尸毗王). [20] 허벅지 살을 베어 남을 먹이는 시비왕 설화는 할고 설화라는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275호 석굴의 벽화를 보면 손에 비둘기를 얹은 채 자리에 앉아있는 시비왕(부처의 전생)의 허벅지에서 살을 베어내는 작은 인물이 그려져있다. (그림 30). [21] 이 벽화는 남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을 강조하는 본생담이 중국에서 나타난 최초 사례에 해당한다.

▲ 그림 30. 시비왕 본생담.
출처: 둔황 아카데미. 아키야마 테루카즈, 마츠바라 사부로. Arts of China: Buddhist Cave Temples New Researches, Alexander C. Soper 번역. Tokyo: Kodansha International Ltd., 1969. p. 34. 
해설: 비둘기를 보호하는 시비왕이 허벅지 살을 베어낸다. 둔황 275호 석굴. 북벽. 5세기 초. 벽화.

275호 석굴의 특징은 중앙아시아/인도 서북부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소퍼의 주장에 따르면 색채의 사용이나 (중국의 관례와는 반대로) 본생담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따라가도록 되어있다는 것을 볼 때, 이 석굴은 중앙아시아적 특성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22] 비능갈리, 찬드라프라바 본생담은 인도 내에서 발견할 수 없으며 현전하는 빨리어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설화들은 타림 분지의 키질에 그림으로 남아있다. 벨은 본생담이 중앙아시아를 거치면서 변형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소승불교의 본생담은 단순히 덕(파라미타)에 대한 변론이었으나, 대승불교 본생담은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잔혹한 취향에 맞춰지면서 소름돋는 자기희생 설화로 재탄생하거나 변화하였다." [23] 법현(法顯, 337/342-422 경)의 불국기(佛國記)에서는 이러한 폭력적인 설화 중 많은 수가 인도 서북부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페샤와르(Peshawar) 근처의 탁샤실라(Takshaśilā, 한문 이름은 잘린 머리라는 뜻의 절두截頭)[24]라는 왕국에서 부처님이 전생에 보살이었을 때 자신의 머리를 남에게 바쳤다고 법현은 이야기한다. 더욱이 시비왕이 살을 베어 매를 먹인 장소는 이곳에서 서쪽에 있다. [25] 5세기 서북부 인도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잔혹한 사건들이 현지에서 일어났다고 믿고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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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Jin Baoxiang 金寶祥, “和印度佛教寓言有關的兩件唐代風俗.” In 唐史論文集 by 金寶祥, pp. 31–43. Lanzhou: Gansu renmin chubanshe, 1982; Cai Jingfeng 蔡景峰. “唐以前的中印醫學交流". Zhongguo keji shiliao 6 (1986): pp. 21-22.

[15] Bell, Alexander Peter. Didactic Narration: Jataka Iconography in Dunhuang with a Catalogue of Jataka Representations in China. Münster: Lit Verlag, 2000. pp. 56, 113, and 118 n. 245.


[16] Ohnuma, Reiko. Head, Eyes, Flesh, and Blood: Giving away the Body in Indian Buddhist Literatur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pp. 26–51.

[17] Cummings, Mary. The Lives of Buddha in the Art and Literature of Asia. Ann Arbor: The University of
Michigan, 1982. pp. 65-66. and Ohnuma, Head, Eyes, Flesh, and Blood, pp. 140-98.

[18] Durt, Hubert. “Two Interpretations of Human-Flesh Offering: Misdeed or Supreme Sacrifice?”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College for Advanced Buddhist Studies
1 (1998): pp. 59–76.


[19] Baochang 寶唱 (ca. 466–?). Jinglü yixiang 經律異相. 31. 164. 미치하타 료우슈우 道端良秀, “中国仏教と食人肉の問題", pp. 399-400에서 재인용. In 慈覚大師研究, edited by 福井康順, pp. 391–404. Tokyo: Tendai gakkai, 1964.

[20] Bell, Didactic Narration, pp. 64-75.

[21] 이 설화의 여러 갈래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Parlier, Edith. “La légende du roi des Śibi: du sacrifice brahmanique au don du corps bouddhique.” Bulletin d’Etudes Indiennes 9 (1991): 133–60.

[22] Soper, Alexander. “Northern Liang and Northern Wei in Kansu.” Artibus Asiae 21, no. 2 (1958): p. 152.

[23] Bell, Didactic Narration, p. 113.

[24] 탁샤실라 왕국의 한문 이름인 절두(截頭)는 산스크리트 이름을 직역한 것은 아니지만, 탁카시라(takkashira)라는 쁘라크리트(Prakrit) 단어를 의역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탁샤실라는 "돌을 자르다"라는 뜻이다.  

[25] Legge, James 번역. A Record of Buddhistic Kingdoms, New York: Dover Publications, 1965. p. 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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