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유교의 할고(割股)는 실크로드를 통해 수입되었나? (1) 예티와 인의예지!

안녕하세요 남중생입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치즈와 아이스크림, 우유와 모유에 대해 이야기한 "유제품 시리즈"는 잠시 뒤로 하고 "미이라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새 시리즈의 유래를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적륜 님의 18세기 목내이, 그리고 네덜란드.... 포스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이런저런 의문점을 푸는 시리즈입니다.ㅎㅎ 

적륜 님의 글에는 미이라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전근대 동아시아인에 대한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천년만년 사람의 육체가 썩지않고 남아있는데 이것을 가루로 만들어 약으로 쓴다는 게 당대 동아시아인들의 사고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했는지 짐작이 갈 정도입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이규경은 목내이에 대한 변증설을 따로 실어서 이 물건에 대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설명을 해보려 애를 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교적 합리주의의 세례를 받은 전근대 동아시아인에게 인육을 약으로 먹는다는 이야기가 과연 이해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혼란을 야기했던걸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번역해봅니다. 중국 중세사 연구자 Keith Knapp 교수님의 Chinese Filial Cannibalism: A Silkroad Impor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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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할고(割股) 행위는 실크로드를 통해 수입되었나?

고대 중국 유학자가 자신의 신체보다 신성시한 것은 없었다. 유교에서는 개인의 신체를 조상의 신체의 연장선으로 이해하였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라는 것이었다. 몸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일이었고, 몸을 다치거나 훼손하는 일은 신성모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당대(唐, 618-907)에 이르러서는 내 살을 부모님께 먹여서 병구환을 한다는 새로운 형태의 효행이 등장하였다.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내는 것으로 대표되는 이 행위는 흔히 할고(割股)라고 불렸다. 이를 두고 "불효의 효(不孝之孝)"라고 부른 학자도 있었다. [1] 여기서는 편의 상 할고(filial cannibalism)라는 표현을 계속 쓰겠다.

중국의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할고 행위는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난다. 최초 사례는 당나라 때이다. 할고 행위를 칭찬하는 이야기를 보면 당대 사회에서의 할고 이야기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대중적인 서사에 할고가 등장하는 사례로 가장 이른 것은 9, 10세기 둔황 문헌에서 최초로 확인되는 왕무자(王武子)의 아내 이야기다. [2]

왕무자는 하양(河陽) 사람이다. 개원(開元) 연간에 나라의 부름을 받아 호주(湖州, 오늘날 장수성)로 가야했다. 10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그 아내는 효성이 지극했는데, 집안이 가난하니 밤낮으로 신발을 꿰메어 살림을 꾸렸다. 시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 기력이 쇠하였다. 어느 사람이 이야기하길 "인육을 얻어 먹는다면 병이 나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시어머니가 답하길, "인육을 도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이오?" 며느리가 이 대화를 듣고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어 고깃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어머니에게 올렸다. 시어머니가 고깃국을 먹자마자 병이 나았다. [3]

위 이야기는 송-원대(960-1368)에 크게 유행하였고, 사람들에게 널리 읽힌 이십사효(二十四孝)에 일반적으로 수록되는 일화가 되었다. 송대, 금대, 원대 무덤에서 발견된 이십사효 그림을 보면 왕무자의 아내 이야기가 그려져있다. (그림 29). [4] 그렇다면 유교에서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금기시한 것을 감안할 때, 어떻게 중국에서 할고 풍습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할고가 본래 중국 풍습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왔으며 중세 중국인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당나라 사람들은 어째서 할고라는 형태의 효행을 꺼리지 않고, 오히려 설득력 있다고 여겼을까?

(그림 29.) 팔뚝 살을 베어내는 왕무자의 아내.
출처: 샨시성 박물관, 필자가 촬영.
해설: 샨시성 지샨현 마촌 4호 무덤(山西稷山馬村4 號金墓). 12세기. 진흙 조각.

중국에서 할고 풍습이 갑자기 등장한 이유는 불교 설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중앙아시아인과 중국인은 모두 자신을 희생해 남을 돕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하여 중앙아시아와 중국 북부에 걸친 여러 석굴 속에 남아있는 불교 설화 미술을 보면 자기희생의 주제를 담고 있는 경우가 주류이다. 특히 중국인은 아들이 부모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두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눈먼 부모를 위해 음식을 구하다 죽은 샤마(Śyāma, 한문 이름: 晱子 염자) 이야기와 자신의 살을 먹여 부모가 굶어죽지 않게 한 수자티(Sujāti, 한문 이름: 須闍提 수사제) 이야기였다. 당대의 중국사람들은 특히 수자티 이야기를 인상깊게 들은 만큼 이 이야기에서 할고 풍습이 등장했으리라. 중국 사회가 할고 풍습을 금세 수용한 이유는 효를 행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이전 시기의 효행담을 보면 이미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무릅써서라도 무엇이든 해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희생을 강조한 수자티 설화는 효심을 극한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유교적 효 의식을 옹호하는 세력은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효도를 받아들이기 위해, 수자티 설화를 흡수한 뒤 보다 듣기 편한 형태로 이야기를 재구성하였다. 이렇게 해서, 지각이 있는 모든 존재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고자 한 보살행의 이야기가 시어머니에게 허벅지살을 바쳐 봉양한 순종적인 아내 이야기로 변형된 것이다. 

Knapp, K. N. "Chinese Filial Cannibalism: A Silkroad Import?" in China and Beyond in the Medieval Period: Cultural Crossings and Inter-Regional Connections, eds. Dorothy C. Wong and Gustav Heldt (New Delhi: Manohar, 2014),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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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邱仲麟. “不孝之孝: 唐以來割股療親現象的社會史初探". Xin shixue 6, no. 1 (1995): 49–94.

[2] 王三慶. “《敦煌變文集》中的〈孝子傳〉新探 ". Dunhuangxue 14 (1989): 189–220.

[3] 王重民, 편저. (1980). 敦煌變文. Reprint, 2 vols. Taipei: Shijie shuju, 2: 909.

[4] 黑田彰. (2001). 孝子傳の研究. Kyoto: Shibunkaku shuppan, 25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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