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난학에 대해 무심코 드는 생각 용은 환골하고 뱀은 탈태한다

가짜 인어 이야기를 번역하고 나니,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서 글로 정리해놓고 자러 갑니다.zzz
저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동물을 좋아하는지라, 블로그 이웃분들도 남중생이 남중생하는군 하고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ㅋㅋ
--------------------------------------------------------------------------------------------------------------

1. 용에 대한 관심이 악어에 대한 관심으로

호우레키 11년(1761년) 봄 나가사키 데지마의 네덜란드 상관장 M. Hujishorn의 외과의사 바우에르(George Rudolf Bauer)와 요시오 코우사에몬(吉雄幸左衛門) 등을 이끌고 에도에 참부하였다. 에도 혼세키마치의 나가사키야는 그들의 지정 숙소였다. 이때 히라카 겐나이는 나가사키야를 찾아가 사누키(讃岐) 쇼도시마(小豆島) 산 용골을 바우에르에게 보여주고 이것은 흔히 말하는 슬랑가스텐인가 아닌가 하고 물었다. 슬랑가스텐(슬랑헨스테인, Slangensteen)이란 남만에서 건너온 석약(石藥)을 말하는 것이다. 바우에르는 말한대로라며 인도 특산물 슬랑가스텐이 일본에서도 난다는 것에 놀랐다. 겐나이는 이 즈음부터 용골은 코끼리뼈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바우에르가 겐나이에게 쇼도시마 산 용골을 코끼리 뼈 화석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담이지만 요시오 코우사에몬은 이 바우에르로부터 의과 의술을 배워 메이와 6년(1769년)에는 마에야 료우타쿠와 스기타 겐파쿠가 요시오 코우사에몬에게 지도받게 된다. 그들의 노력의 결정 "해체신서"가 태어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의 일이다.
(이마이 이사오의 논문, 에도시대의 용골논쟁 中)


"근세에 네덜란드에서 길이가 1척 정도 되는 타룡의 새끼를 약수에 담궈서, 커다란 사각 플라스크에 집어넣어 가져왔다. 약수에 담궈두면 그 색과 형상이 갓 잡았을 때와 같다고 한다. 오륙년 전에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역관 요시오 코우사에몬이 네덜란드에서 길이가 4척 정도 되는 살아있는 타룡을 얻었다. 몹시 용맹해서 사람을 보면 잡아먹으려는 기색이 있었다. 오랫동안 길렀지만, (타룡을 다루는 것이) 조심스럽고 힘에 겨울 정도였다. 기르는 방법이 사치스러워서, 결국에는 요시오 씨가 죽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나가사키에 놀러갔을 때는 타룡은 이미 죽어 흔적도 볼 수 없었다.
(타치바나 난케이, 서유기 中 타룡 기사. 타치바나가 나가사키를 방문한 것은 1783~1784년.)

1761년, 히라도 겐나이와 바우에르의 용골 논쟁. 요시오 코우사에몬 통역.
1769년, 마에노 료우타쿠와 스기타 겐파쿠 네덜란드어 학습. 요시오 코우사에몬 가르침.
1771년, 해체신서 완성.
1777~1779, 요시오 코우사에몬 악어(타룡) 구입.


2. 유니콘에 대한 관심이 일각고래에 대한 관심으로 

1787, 오오츠키 겐타쿠, "육물신지(六物新誌)"에서 일각고래를 하나의 마당으로 다룸.
1887, 영미권 수출용 "해파리전(The Silly Jelly-fish)" 삽화에 일각고래 등장. (유니콘과 해파리 포스팅 참조.)



3. 인어에 대한 관심이... 인어에 대한 관심으로

1791년, 산토우 쿄우덴(山東京伝)은 "하코이리무스메 멘야 닝교(箱入娘面屋人魚)"라는 패러디 소설을 출판한다. 
용궁에 간 우라시마타로가 잉어 부인과 바람을 피워서 인어가 탄생한다는... 설정. 


1801년, 산토우 쿄우덴은 진귀한 구경거리를 묘사하는 "코와 메즈라시키 미세모노가타리(這奇的見勢物語)"라는 책을 출판한다. 박제 인어 삽화가 실린 최초의 책이다.



4. 잠정적(?) 결론

흐음... 그러니까 제가 하려는 말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런 패턴이 보이니 신경 쓰여서 정리해봤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건 이 사람들이 반드시 더 넓은 세계와 서양지식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겁니다.
타치바나 난케이는 난학 의술에 어느 정도 관심은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한의학 전통의 상한 의학이 본진이었고, 악어 이야기도 본초강목을 인용하면서 마무리 짓지요. 아니, 오히려 악어 이야기를 한 것도 네덜란드 상인들이 가져오는 이국적인 동물이 아니라 사츠마 번 유황도에 나는 "토종" 생물이라고 주장하려던 의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타치바나 난케이는 왜 박쥐를 몰라야 했을까? 참조.)

해파리 동화책에 삽화를 담당한 화가는 외국인 취미에 맞추는 동화책 그림 그리는 일이 너무 수준 낮다고 여겨서 다음부터는 동화책 삽화는 맡지 않았다고 합니다. 잇속에 밝은 개방적인 마인드는 아니었던 거지요.

그리고 상상 속의 동물(용, 유니콘, 인어)에서 실제(악어, 일각고래, 박제 인어)로 관심의 방향이 향한다고 해서 반드시 정확한 실체에 가까워지는가 하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뭐... 좀더 생각을 이리저리 굴려본 다음에 추가 포스팅할게요.ㅠㅠ (아마 양자 악어 이야기에서)

P.S.
참고로, 산토우 쿄우덴은 노조키카라쿠리 그림으로도 유명합니다. 더 정확히는 타이먼 스크리치 선생님께서 산토우 쿄우덴을 "발굴"해내서 유명하지요...
=======================================================================================================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