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그런 논문이 아닙니다: 김어준과 문헌 표류 현상 창작물의 원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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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시사저널, 문헌 표류 현상


2005년 4월 25일, 시사저널의 박성준 기자는 "38선은 일본이 그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합니다. 고시로 유키코의 논문 내용을 소개한 이 글은 큰 주목은 받지 못하고, 원출처를 밝히지 않은채 인터넷에서 유통되다가, 2019년 2월 20일 김어준이 다시 언급합니다. 역시 시사저널 기사의 원출처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시사저널 기사가 발행된 이후로 재가공/재생산된 정보는 모두 영문 논문이 아니라 한국어 기사만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요?

우선, 기사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한국인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 일본의 역사 왜곡 행위에서 핵심은 '일제 치하'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저지른 이른바 전쟁 범죄를 사실대로 기술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이 자행한 범죄 행위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일본은 55년간 남북의 허리를 잘라 놓은 민족 분단에도 '의도적이고 구체적으로' 개입했다.

(...)

<시사저널>은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해 한반도에서 물러나는 바로 그 순간까지 '대동아 공영'의 훗날을 기약하며 한반도 분할을 상정하고, 이를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을 입증한 역사학 논문 한편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논문은 고시로 유키코의 Eurasian Eclipse: Japan's End Game in World War II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제가 "의도적이고 구체적으로", "한반도 분할을 상정하고, 이를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다"고 하는 내용을 해당 논문에서 찾아보면 되겠네요.

기사에서는 한반도 분활을 계획하는데 핵심이 된 배후 인물을 지목합니다.

논문에 따르면 일본 군국주의자들 내부에서 청일전쟁(1894~95)과 러일전쟁(1904~1905) 전야에 툭하면 들먹거렸던 '38선 분할안'을 구체적인 고려 대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때는, 태평양전쟁의 패전이 거의 확실했떤 1945년 초이다. 이같은 흐름에 결정적인 지침을 제공했던 배후 인물은 당시 일본의 현역 해군 소장이자 종전 당시 일본 해군성 교육국장이었던 다카키 소키치였다.


그리고 나서 3문단 뒤에서는 다카키 소키치라는 인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물론 다카키는 다른 전략가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와 타이완에 대한 지배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다 (60쪽 상자 기사 참조). 일본이 항복할 수 있는 '최소 조건' 3개 항의 하나로, '한반도와 타이완'에 대해 일본의 지배권 유지를 주장했던 것이다. 다카키가 열거한 나머지 '항복의 최소 조건'은, '천황제 존속'과 '일본의 산업력과 경찰 병력 유지'였다.

하지만 한반도 영구 지배는 이미 일본의 의도대로 굴러갈 상황이 아니었다. 고시로의 논문에 따르면, 태평양 전황은 1945년 접어들면서 일본에 최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즉 일본이 '항복의 조건'을 내세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잘 이해가 안 되니까 다시 한 번 봅시다. 

그러니까 기사에 따르면, 한반도 분단을 "구체적인 고려 대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는데 "정적인 지침을 제공했던 배후인물"이 다카키 소키치였습니다.

그런데 "물론 다카키는 다른 전략가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와 타이완에 대한 지배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아니, 그럼 한반도 분단을 "의도적이고 구체적으로" 획책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다카키도, 일본 내의 다른 전략가들도 모두 분할되지 않은 한반도를 상정했다면서...

사실 일본 내에서 아무도 그런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이 기사도 실토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영구 지배는 이미 일본의 의도대로 굴러갈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 그대로, 일본의 의도는 한반도 영구 지배였다는거죠. 게다가 일본은 이 영구지배라는 의도조차 "내세울 겨를이 없었"고, 전후 처리는 일본의 의도와 무관하게 굴러갔다고 합니다.

...


정리해보자면,

이 기사의 첫머리에 따르면, 일제는 "의도적이고 구체적으로", "한반도 분할을 상정하고, 이를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뒤에 가서는 말을 바꿉니다. 미소 양 세력이 동아시아에서 균형을 잡게 되는데에서 일본은 최소 항복 조건조차 "내세울 겨를이 없었"고 그저 힘의 논리대로 휩쓸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저 항복조건은 한반도 분할이 아니라, 한반도 유지였습니다. 그럼 일본이 무얼 계획하고 뭐가 계획대로 이뤄진거죠?


그러니까, 이 기사를 읽고 "아, 일본이 한반도 분단을 계획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안 되는 겁니다.

기사가 소개하는 논문의 내용이 엉망이거나, 논문의 내용을 오독한 결과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하는 것이지요.



저는 논문도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재미있는 논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논문의 전체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으니, 시사저널 기사가 논문을 언급하는 몇몇 부분만 대조해보겠습니다.

먼저,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하지만 고시로는 논문에서 일본의 한반도에서 항복 전술 또한 당시 전개되던 '국제적 음모 특히 심각하게 양분된 한국 독립운동 상황에 대한 관측 결과'에 입각해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한국 내 일본 정보 당국(조선군 참모부)은 한반도 자체가 독립 노선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이같은 분열이 국제 관계와 맞물려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까지 치밀하게 계산에 넣고 항복 시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한반도 주둔 일본군의 최종 항복은 1945년 9월 9일에 있었다.


기사는, 일본이 분열된 독립운동을 관찰하고 남북의 분단을 계산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시로 유키코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은 공산주의/민족주의 진영으로만 나뉘어있던 것이 아니라 최소 4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있었다고 말하죠.

한반도에서 일본의 항복 전략은 국가들 사이에 일어나는 물밑작전에 대한 관찰을 반영하였다. 이는 특히 조선 독립운동이 심각하게 다극화되어있는 상황에 대해 그러했다. 1942년 7월 이후, 조선의 공산주의 세력은 스스로 중국공산당에 들어가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일본에 대항해 싸웠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공산주의 세력은 점점 두 파벌로 나뉘어졌다. 각각 소련과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따르는 파벌이었다. 더욱이, 해외 망명 중인 조선 민족주의 세력은 중국 국민당 정부 청사가 있는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했다. 또다른 망명 정치인 이승만은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세웠다. 그러나 미온적인 지지만을 받을 뿐이었다. 1944년 여름, 조선총독은 도쿄에서 열린 85차 국회에서 보고하길, 조선에서의 국제 첩보활동이 점점 강해진다고 하였다. 소련, 미국, 영국, 중화민국은 모두 자신의 영향권에 국한하여 조선의 "독립" 운동을 "지원"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

(Japan's surrender tactics for Korea also reflected its observations of international intrigues, especially regarding the severely polarized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ince July 1942, Korean communists had incorporated themselves into the CCP and fought against Japan in Manchuria and northern Korea. As the war dragged on, they became increasingly divided into two factions - one under Soviet and the other under CCP leadership. Furthermore, exiled Korean nationalists formed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and Chongqing, headquarters of the GMD government. Syngman Rhee, another exile, founded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in the United States, where he received only tepid support for his leadership. In the summer of 1944, the governor general of Korea reported to the Eighty-fifth Imperial Diet held in Tokyo on ever-intensifying international intelligence activities in Korea. The Soviet Union, the CCP, the United States, Britain, and the GMD government all conducted covert operations with the same goal of "assisting" Korea's "independence" movement strictly under their respective influence.)


또, 기사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 대본영은 소련이 만주 침공 및 한반도 진출에 대해서는 대비하라고 지시한 반면 미국의 한반도 진출에 대해서는 한국에 주둔중인 사령관에게 미군 상륙을 저지하라고 명령하는 등 다른 대응 요령을 주문했다. 한반도 분단을 일본이 유도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 논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945년 초, 대본영은 미국과 소련의 대 한반도 군사계획을 각각조사하기 시작했다. 1945년 2월 6일, 대본영은 조선군 본부를 해체하고는 제 17방면단을 신설해 한반도 방어 임무를 맡겼다. 대본영은 제17방면단 사령관에게 미군이 한반도에 상륙하려 하는 그 어떤 시도도 저지하라고 하면서, 또한 만주의 관동군과 협력하여 솨련의 군사활동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 

(In early 1945, the Imperial Headquarters began studying respective U.S. and Soviet military plans for the peninsula. On February 6, 1945, the Imperial Headquarters disbanded the headquarters of the Korean army and established the new seventeenth Area Army to take charge of Korean defense. The commander of the Seventeenth was instructed to resist any U.S. landing and also, in cooperation with the Kwantung Army in Manchuria, to "prepare" for any Soviet operation.) 

왜 시사저널 기사에서는 미국 상륙 저지와 소련에 대한 대비가 상반되는 내용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까요?

미군과 달리 소련군에 대해서는 결사항전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뜻이라면, 그야 당시 소련은 아직 일본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요...

위 논문 내용에서 "한반도 분단을 일본이 유도한 것"이라는 해석을 도출해냈다면 잘못 해석한겁니다. 고시로 유키코도 논문에서 그렇게 주장하지 않고요.


이건 전형적인 "문헌 표류 현상"입니다. 고시로 유키코는 여러 나라 사료의 원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역사가였지만, 시사저널의 박성준 기자는 기사를 쓰면서 고시로의 논문을 오독해버렸죠. 김어준은 고시로 유키코의 논문을 소개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그 논문 자체가 아니라, 시사저널 기사를 기반으로만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기사에서 가장 자극적인 (가장 틀린) 부분 만을 옮기게 된 것입니다.

원문을 확인해보지 않은 채 2차 가공물 만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 결과, 원사료를 통해 알 수 있던 역사의 깊이나 원래 논문이 말하고자 한 바는 점점 더 멀리 표류해버렸습니다. 




어째서 이런 오독이 일어났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이나 영토에 대한 자의식이 지나치다보면 전세계 모든 역사가 "우리 민족" 역사의 일부라고만 생각하게 되고, 세계를 뒤흔든 전쟁이 사실은 지구의 배꼽 한반도를 중심으로 돌아간 음모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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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문헌표류 현상에 대해서는, 도돌이표양자 악어 이야기에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핑백

덧글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9/02/25 10:49 # 답글

    음 그런데 사족입니다만 논문 속에 언급된 대한인국민회는 박용만과의 갈등으로 이승만이 나온 지 한참 되었고 이후부터 1940년대 당시까지 동지회가 그의 기반이었을텐데(국민회와는 갈등 관계) 옥의 티려나요..
  • 남중생 2019/02/24 20:04 #

    설명 감사합니다!
    저도 영어로 되어있는 독립단체명을 검색하면서 옮기기만 했는데 그런 옥의 티가 있었네요.
    논문에서 고시로 유키코 선생님은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를 언급했지만, 말씀하신대로 이승만은 당시에 이미 동지회(Tongjihoi)를 중심으로 활동한 것이 맞는 것으로 나옵니다.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9/02/24 20:59 #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첫인사가 늦었는데 유익한 글 쓰신 것 종종 잘 읽고 있습니다. ㅎㅎㅎ
  • 남중생 2019/02/24 21:10 #

    오, 그렇군요.^^ 앞으로도 좋은 교류 기대하겠습니다.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2/24 21:31 # 답글

    저 주장은 분단의 책임을 미국으로부터 일본으로 떠넘기는 효과가 있군요. 광주사태 인민군 개입설도 국가질서에 대한 도전의 책임을 인민군에게 떠넘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라도 막아서는 안되죠. 공론의 장에서 논쟁을 통해 걸러져야 옳습니다. 요즘 한국사회가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군요.
  • 남중생 2019/02/24 21:36 #

    그래서 이렇게 공론의 장에서 밝히잖아요.
    그리고 전에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다더니, 이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라... 제가 설득이 안 가네요;;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2/24 22:38 #

    그랬을 리 있겠습니까?
    전두환 회고록 출판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두환도 이렇게 지적을 했죠.

    전두환 회고록 P541
    "독자나 시청자들의 정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언론매체들, 여론의 향배를 좇을 수밖에 없는 정치권은 그렇다 하더라도 학계에서조차 ‘민주화운동’이라는 정통적 역사 인식에 대한 어떠한 ‘수정주의적’접근도 금기되어 있는 것 같다. 광주가 계속 신화의 영역에 있기를 원하며 불편할 수도 있을 진실이 더 이상 드러나길 바라지 않는 세력이 엄존한다는 것은 뚜렷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http://qindex.info/Q/d.php?c=3211#3235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2/24 22:42 #

    예전에 딴지일보에서 동북공정과 관련해서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발해는 중국사로 흡수되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공감이 갑니다.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고려는 발해가 계승하였다는 것과 연결되어 고려는 중국사로 흡수된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죠.
    그런데 저건 황당하네요.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2/24 22:48 #

    이곳에서도 광주사태란 용어를 썼다고 차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광주사태를 폄훼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법을 발의했다고 해요.
    그럼 이런 설문에 폭동이나 반란을 선택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나요?
    https://t.co/zhliAwnWM4
  • 남중생 2019/02/24 22:54 #

    그야 폄훼하면 안 되겠죠.
    그나저나, 전에 다 이야기했던것 같은데요?
    http://inuitshut.egloos.com/m/comment/1932760/page/6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2/25 09:02 #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자유로운 평가를 할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박원순인가도 광주 금남로에서 전두환 만세를 외칠 수 있어야 헌법 상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는 거라고 했던 거 같은데...
  • 남중생 2019/02/25 09:59 #

    네,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씹고 가셨잖아요;;
  • PKKA 2019/02/24 23:00 # 답글

    핑백 감사합니다. 고시로 유키코의 주장에 대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완범 교수님은 확대해석이 있고 연결고리가 부족하다고 비판했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https://cafe.naver.com/historyarchive/14059 닉네임 "왈리"가 이완범 교수님입니다.

    그런데 논문 하나 가지고 그게 완전무결한 정설인 것인양 쓴 시사저널 기자나 김어준이나 결국 자국중심주의와 반일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시야가 좁다고밖에 말할 수밖에요;;
  • 남중생 2019/02/24 22:58 #

    오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고시로 유키코의 주장부터가 학계에서 확대해석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정도라면, 시사저널이나 김어준의 주장은 확대해석의 확대해석이 되는군요...

    PKKA님의 글은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소련-일본 전쟁에 관심이 생겨서 8월의 폭풍 책도 조만간 읽어보려구요 ㅎㅎ
  • PKKA 2019/02/24 23:05 #

    구매의사에 감사드립니다.

    고시로의 주장은 확대해석인게 다나카 소장이 비록 이전에 제출한 구상안이 대본영에서 논의되고 통과된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무슨 대단한 전략가이자 영향력있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엄연히 해군 교육사령관에 소장인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핑백한 포스팅에서 다룬 일소교섭요령에는 남만주와 한반도는 소련과의 교섭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를 볼때 대본영이 중국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미소 충돌을 유도하였다는 건 아무래도 너무 나간 해석이 아닌가 합니다.
  • 3인칭관찰자 2019/02/25 23:29 # 답글

    고시로->시사저널->김어준 순으로 가면서 논문 저자인 고시로(PKKA님 댓글에 따르면 이 사람도 확대해석한 면이 있다지만)의 의도는 날아가버린 채 이상하고 자극적인 혼종만이 남은 거군요 ;;;
  • PKKA 2019/02/26 12:10 #

    중간에 브루스 커밍스도 끼어들었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9/02/26 16:28 #

    한국전쟁 발발에 관해 수정주의적 학설을 제기한 그 미국 사학자 말인가요?
  • PKKA 2019/02/26 21:36 #

    그렇습니다. 그 사람입니다. 시사저널 기사를 보면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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