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누에를 치는) 따이 민족의 대이동 인도차이나 ~Indochine~


(누에를 치는) 따이 민족의 대이동


타이족은 현 태국을 구성하는 주민족이다. 그런데 타이족은 유사한 언어를 구사하는 동일 어족 따이(Tai)의 일부이다. 북베트남에서의 눙족, 라오스의 주민족인 라오족, 태국의 타이족, 버마의 샨족 등이 모두 따이인이다. 중국 남부, 특히 운남은 물론 귀주, 사천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해 있던 따이인이 동남아시아로 이주하면서 각지로 퍼져 간 것이다. 운남 대리 근처로부터 동남 방향으로 거의 직선으로 흘러 베트남 북부로 들어가는 홍강(홍하 Red River)과 흑강(Black River) 주변에 분포하던 따이족은 5-8세기 동안 서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1] 그렇게 해서 정착한 곳이 라오스, 태국, 버마 북동부였다.

부족간의 경쟁과 통합 과정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정치 권력을 갖는 여러 소국 즉 '무앙(muang)'이 출현했다. 무앙의 세습적 지배자는 '짜오(chao)'라고 부른다.[2]

지배자 짜오와 지배층의 관계, 그리고 따이인의 이동과 정착 과정을 와이엇은 다음과 같이 그려냈다:

한 지도자가 자신의 무앙 남자들을 모아 군사 원정대를 조직한다면, 대체로 그의 아들 하나가 이 원정를 지휘했다. 병사들은 먼 지역 한 곳을 정복하고 그곳에 무앙의 가족을 이주시킨다. 새로 정착한 이들은 "정글을 논으로" 바꿀 것이고 젊은 왕자의 지배 아래 조직된 공동체 안에서 거주하게 될 것이다. (Wyatt 1984:9)

이렇게 이동하던 따이인이 베트남, 참파는 물론 버마의 역사 기록에까지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가 11세기경이다.[3] 이 무렵 따이인은 대륙부 동남아시아 북부에 길게 정착을 완료했다.

최병욱, (2015). 개정판 동남아시아사 - 전통시대, pp. 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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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학자 핏타야왓 핏타야폰은 따이족이 베트남/라오스 북부 고지대의 수원지에서 서남쪽으로 이동해 인도차이나 반도로 퍼져나간 시점을 "기원후 1천년기의 마지막 분기(750~1000 CE)"로 보고 있다. (동남쪽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다.)

"In collaboration with nonlinguistic evidence, the loanword evidence suggests that SWT began to spread southwestward in the last quarter of the first millennium CE.
(Pittayawat Pittayaporn. pp. 64.)

그러니 5-8세기는 너무 이르다. 최신 학설에서는 8-9세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2] 9세기 기록인 만서(蠻書)에서 이야기하는 망만(茫蠻, 망 오랑캐) 참조.

"망(茫)"은 나라를 뜻하는 타이 단어 "므앙(เมือง, muang)"을 한자로 쓴 것이다. 타이 므앙의 지도자는 짜오(เจ้า, cao)라고 불렸다. 만서에 따르면 망 오랑캐는 자신들의 지도자를 다름 아닌 "망조"(茫詔)라고 불렀다고 한다. 타이 어순대로라면 거꾸로 해서 짜오 므앙(cao muang)이 될 것이다.



[3] "만서"에 따르면 망족 오랑캐는 이미 863년 하노이 인근에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시점이 너무 느리다.


동남아시아사 : 전통 시대 - 10점
최병욱 지음/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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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따이 민족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앙코르 제국(캄보디아)에 다다른 이들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13세기 말 앙코르 제국을 방문한 원나라 사신 주달관은 "잠상(蠶桑)"이라는 항목에서 당시 캄보디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잠상(蠶桑)에서는 누에 치고 뽕나무 키우는 일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일뿐만 아니라 견직물 짜는 기술까지 모두 당시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던 타이인에게 의존한다고 전한다." (최병욱, pp. 119)

왜 강성한 앙코르 왕국은 누에 치고 비단 짜는 기술을 타이인(따이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걸까요? 중국 남부에서 이동을 시작한 따이 언어 구사자들만이 비단을 만드는 기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직물을 짜다"라는 뜻의 따이 단어 탁(tʰak)이 중국어 직(織, 중고 한어 tśjək)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manomaivibool, pp. 346)

수세기가 걸린 대이동 과정에서 따이 사람들은 고향땅 광시의 기억을 대부분 잊어버렸습니다. "악어"가 무엇이었는지, "강물"이 무엇이었는지, 석회석 산이 우뚝한 고향의 지형마저 잊어버렸지만, 비단 짜는 기술만은 간직했다고 생각하니 흥미롭습니다. (참조: 양자 악어 이야기 (1) - 핏타야왓 핏타야폰의 3단계 이동 가설)


참고문헌:
Manomaivibool, Prapin. (1975). Study of Sino-Thai lexical correspondences. Unpublished Ph. D. disseration, University of Washington, Seattle.

Pittyawat Pittayaporn. (2014). Layers of Chinese Loanwords in Proto-Southwestern Tai as Evidence for the Dating of the Spread of Southwestern Tai. Manusya: Journal of Humanities, Special Issue N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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