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포이로(布爾爐)를 찾아서 (3) [특집] 유제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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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로를 찾아서 (3)

루벤 페르발과 마리에케 헨드릭센


▲루벤이 불 온도를 지키고 있다.


헤르만 부르하버가 태어난지 350주년이다. 레이던 대학교 명강사, 부르하버의 생일을 기리는데 그가 고안한 실험을 재현하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헤르만 부르하버는 1668년 12월 31일 월요일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헤르만은 동생 야코부스[역주: 원문에는 제임스라고 되어있으나, 화학실험을 함께 한 동생은 야코부스다.]과 함께 식물과 광물, 액체와 체액을 통해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였다. 30여년이 지나서 헤르만이 회고하기를 "자연체를 가지고 화학 실험으로 하느라 우리 형제가 함께 보낸 낮과 밤만 며칠이던가." [1] 부르하버가 소형 화로를 발명한 것도 이 즈음이었으리라.

새해가 밝기 일주일 전, 마리에케는 루벤스에게 "냉장고에서 우유 꺼낼 시간에 맞춰 알람 설정해놓을게"라고 문자를 보냈다. 송년회로 바쁜 와중에 31일만큼은 연휴 기간 동안에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이미 몇 주 전에 아일랜드 토탄을 인터넷으로 구매했고, 델프트 인근의 농장에서 생우유도 사놓았다. 게다가 모유수유하는 친구로부터도 젖을 받아놓았다. 이제야 시간이 생겼으니, 드디어 재료를 모아서 실험에 착수할 수 있었다.


왜 젖으로 실험을?

의사였던 부르하버는 인체에 관심이 많았다. 인체는 어떻게 작동하는걸까? 구성물질은 무엇일까? 부르하버는 신생아가 모유만 먹고 자란다는 것을 알아냈다. 어머니가 음식을 먹고 창자 속의 체액으로 소화시키면, 액체가 된 음식물이 체내를 순환한 뒤, 암죽(chyle, 유미乳糜, 림프의 일종)이 되어 모유로 변하는 것이다. 부르하버는 인간 아기 뿐만 아니라, 모든 포유류가 젖만 먹고 자라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우유를 제일 먼저 실험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2]


응유(凝乳) 만들기

▲그림 2. 오후 4시: 생우유에 식초를 넣고 가열하면 일종의 치즈가 된다. 일종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끓는 온도에서도 생우유에 산을 넣으면 응고한다"라는 제목의 첫 실험을 재현하기로 하였다. 우선 아궁이 속 토탄에 불을 붙였다. 토탄이 뜨겁게 달궈져서 이글대고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마리에케는 토탄을 도자기 그릇에 담고 소형화로에 넣어서 달궈지게 했다. 한편 루벤스는 유리 용기에 담긴 생우유에 식초를 넣었다. 이 혼합물의 온도가 화로 안에서 점점 올라가는 동시에, 일부는 서서히 유장으로 응고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치즈 만드는 과정을 재현하고 있는 셈이었다. 근세 네덜란드 공화국에서는 너무나도 흔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부르하버는 이 공정에 생리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치즈는 굳히고 나서 불에 태울 수 있었는데, 뼈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이는 아기의 신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도 젖에서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유와 같이 매우 유동적인 물질이 이런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이상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체내 모든 고형질의 유래일지도 모른다." [3]


붉은 우유

두번째 실험은 "갓 짜낸 우유를 고정된 알칼리를 넣고 끓이면 응고한 뒤, 노랗게 변하고, 붉게 변한다"는 실험이었다. 앞 실험의 절차를 그대로 따르는데, 식초 대신 암모니아를 넣는 것이다.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정말 흰 우유가 노랗게 변하고, 어두운 주황색이 되어 붉게 변하려 했다. 안타깝게도 이쯤에서 실험을 중지해야했는데, 토탄이 식어갔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교적 간단한 실험을 통해 부르하버는 흔한 질병 하나를 밝혀냈다. 산욕열이라는 증상을 앓는 산모의 젖은 "노랗게 변하고, 짠 맛이 나고, 옅어지고, 묽어진다." [4] 이로써 네덜란드에서 소 열병이 퍼진 1714년에 소들이 누런 젖을 낸 이유도 밝혀졌다.


▲그림 3. 오후 6시: 모유에 암모니아를 넣고 가열한 결과. '핏빛' 젖? 


실험을 통해 배운 점

우선, 토탄은 냄새가 지독하다! 근세시대 사람들은 토탄 냄새가 어딜 가나 자욱해서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둘째로, 우리가 제작한 실험 기구가 제대로 작동했다. 부르하버의 소형 화로는 화로 속의 열기를 고르게 퍼뜨리면서도 (섭씨 60도 언저리의)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우유를 대상으로 실험했다는 점에서도 크나큰 업적이다. 우유를 끓여보았다면 알겠지만, 2초만이라도 한눈을 팔았다가는 난리가 난다. 그런데 우리는 15분간 글루바인[역주: 덥힌 와인]이랑 올리볼렌[역주: 네덜란드 도넛]을 먹으면서 휴식시간을 가졌는데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세번째로, 부르하버의 실험을 재현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속이나 광물을 이용해 정교하고 위험천만한 공정을 따르거나 묘약을 만들던 동시대 사람들과는 판이하다. 역사적인 재현 작업은 그 방법이 복잡하고 문제적인 소지가 크다. 왜냐하면 역사를 반복하거나 역사적 주체들의 경험을 재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험을 통해 과거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다. 재현 작업을 통해 우리의 직선적이고 문헌기반의 역사 이해가 보다 더 다차원적이 될 수 있다. [5] 예컨대, 이런 실험을 통해 우리는 부르하버가 왜 그토록 인기 강사였는지 알 수 있는데, 그가 설계한 소형 화로만 있으면 직접 실험을 해보면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번째로, 시간과 끈기가 더 있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떤 경우든지 마찬가지지만, 부르하버가 젖을 가지고 하는 실험 중에는 12일이 걸리는 것도 있다! 소화를 거친 젖이 시어지는 실험인데, 소화작용을 모방하기 위해 섭씨 37도로 가열한다. 마지막으로, 근세의 과학실험을 재현하는 것은 재미있다. 도서관 밖에서 연구 주제를 접하는 것은 사고를 환기시켜준다고 하겠다. 실험하면서 찍은 사진과 영상은 홍보용으로도 좋다. 독자 여러분도 재미있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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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르만 부르하버, 화학의 기초 (런던, 1735), A3r. 中 '헌사'

[2] 헤르만 부르하버, 화학의 신법 (런던, 1741), 2, 185.

[3] 상동., 187-188. 

[4] 상동., 188-189.

[5] 파멜라 H. 스미스와 토니 빈톄스, "자연과 예술: 제작과 지식: 16세기 실물 석고본 기술의 재현." 계간 르네상스 63 (2010): 128-79. 마리에케 M. A. 헨드릭센, 우아한 해부학. 18세기 레이던 해부학 수집품 (레이던과 보스턴: 브릴 출판사, 2015), 1장. 도나 빌락 등., "제작과 지식 프로젝트: 회상, 방법, 새로운 방향," 웨스트 86번가 23권 1호 (2016): 35-55. 햘마 포스, 로렌스 M. 프린치페, H. 오토 시붐, "도서관에서 실험실, 다시 도서관으로: 과학사의 도구로써 실험," 앰빅스 63권 2호 (2016): 85-97.


[역자 후기]

우유를 태우면 뼈 냄새가 난다니... 칼슘이요, 칼슘 앞서 다룬 "과학 이전의 과학들"과 다를바 없어 보이지만 헤르만 부르하버는 인류가 의학과 과학을 이해하는데 큰 전환점을 제공한 인물입니다. 각종 체액에 관심이 있던 부르하버는 인체의 최초 구성물질이 어머니의 젖이고, 그러니까 젖을 제일 먼저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이것은 한편 "금속이나 광물을 이용해 정교하고 위험천만한 공정을 따르거나 묘약을 만들던 동시대 사람들"과 대비됩니다.

네, 그렇습니다. 부르하버는 금속제(?) 약물에서 탈피를 시도한 첫 과학자로 손꼽힙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매독환자에게 수은을 처방하거나, 안티몬을 만병통치약이라고 먹지 않습니다. 더 이상 황금을 음료로 녹여서 먹으려고 하지도 않지요. 모두 부르하버 선생님 덕분입니다. 유기화학과 무기화학도 이런데서 분류되어 나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포이로를 찾아서" 시리즈는 이것으로 완결인 듯 하지만, 부르하버를 다룬 글은 앞으로도 차차 소개해보겠습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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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중생 : RECIPES PROJECT 원문 게재 순서 2019-02-22 11:3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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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함부르거 2019/02/22 10:27 # 답글

    근세 과학이란 게 지금 보면 별 거 아닌데 당시에는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였겠죠. 시리즈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남중생 2019/02/22 11:07 #

    ㅎㅎ 그렇습니다. 이렇게 유럽 과학 이야기를 살펴보다가 동시대 조선/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생각해보면 또 재미있어요!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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