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DEUS VULT! 브라질 정부의 중세 앓이 번역 시리-즈

브라질의 중세학자, 파울루 파샤 교수님의 Why the Brazilian Far Right Loves the European Middle Ages를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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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S VULT! 브라질 정부의 중세 앓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브라질 정부와 극우 집단은 그들만의 중세관을 선전하면서 수구적 정치 안건을 정당화하는 중이다.

파울루 파샤 2019년 2월 18일

▲브라질의 첫 미사. 빅토르 메이렐리스, 캔버스 유화, 1860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날, 보우소나루 집안과 친분관계가 있는 정치 블로거 펠리페 마르칭스는 당선 결과를 자축한다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트윗을 올렸다. "신질서가 도래했다. 모든게 우리 것이다! 데우스 불트!"

1차 십자군 원정의 표어라고 여겨지는 "데우스 불트"("하느님께서 원하신다"는 뜻의 라틴어)가 21세기 브라질에서 나타난 이유를 궁금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데우스 불트"라는 구호는 근년 들어 유럽과 미국의 극우파에 의해 도용당해왔고, 이제는 브라질 극우파의 선전문구가 되었다. 브라질의 2차 대선 때부터 이미 마르칭스는 트위터 상에서 "데우스 불트"를 십자군과 노골적으로 연관지어 언급했다. "새로운 십자군 전쟁이 선포되었다. 데우스 불트!" 1월 3일,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마르칭스를 대통령 직속 특수 외교 고문으로 임명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 당선 이후, 브라질 정부와 극우 집단은 그들만의 중세관을 선전하면서 중세 유럽에는 백인, 가부장주의, 기독교 만이 존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구적 역사 수정주의에 따르면 브라질은 포르투갈 역사상 최대의 업적이 된다. 브라질과 포르투갈 사이에 역사적 연속성을 강조함으로써 백인 브라질 국민 만을 유럽의 진정한 후예라고 따로 떼어놓는 것이다. 민족혈통 중심의 역사관을 통해, 브라질 극우파는 순혈주의 중세 포르투갈이라는 신화와 브라질 역사를 단단히 결부시켜 놓는다.

이 유대감을 표출하는 가장 흔한 방법으로는 소위 말하는 유대-기독교 전통을 브라질 문화의 주축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한 표현을 통해 브라질은 기독교 국가이고, 서구 문명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이러한 역사관을 19세기 이래로 추진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질의 정체성을 중세 유럽과 연관짓는다는 것은 곧 브라질에서 예로부터 이어져온 일련의 보수적 정치 운동을 긍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국민을 단합하고, 가정을 드높이고, 여러 종교와 우리의 유대-기독교 전통을 존중하고, 젠더 이데올로기를 반대하고, 우리의 가치를 보존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유세 기간 중에 한 연설에서도 브라질의 소위 "기독교 전통"을 밥 먹듯이 입에 올렸다. 지난 9월, 보우소나루는 캄피나그란지에서의 선거 운동에서 지지세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기독교 국가인 만큼, 하느님이 제일 우선입니다!" (이날 연설에서 보우소나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세속 국가라는 동화같은 이야기는 집어치웁시다! 기독교 국가가 맞습니다.") 더욱이 보우소나루의 선거 구호는 "브라질이 먼저다! 하느님이 먼저다! (Brasil acima de tudo, Deus acima de todos)"였다. 독일 국가사회주의 표어 "독일이 먼저다(Deutschland über alles)"에 종교적인 성격을 가미한 셈이다. 

브라질에 "유대-기독교 전통"이 있다는 생각은 브라질 극우 집단들 사이에 핵심 사상이 되어 퍼져있다. 예컨대 201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브라질 자유 운동(MBL) 지도자 킴 카타기리는 2017년 인터뷰 도중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단체[MBL]의 영상을 보시면, 우리는 서구 문명의 기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스 철학, 로마 법률, 유대-기독교적 종교 말이죠."

▲ 일본 이민자 3세 정치인, 킴 카타기리의 2015년 당시 사진. 현재 23세.

이러한 생각은 브라질의 우파 유권자들과 일반 대중 모두에게 인기가 있다. 2017년 브라질 파랄렐로(Brasil Paralelo)라는 극우 단체는 "브라질: 최후의 십자군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유튜브로 공개했는데, 브라질 파랄렐로의 유튜브 채널은 70만 명 이상의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영상은 현재 150만 이상의 시청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제 1화 "십자가와 검"은 중세 서구 문명의 역사를 간략하게 보여준다. 1화는 이슬람 혐오로 점철된 내용으로, 아랍 세력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과 십자군 전쟁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성전 기사단이 유럽과 포르투갈의 역사 상에서 세운 업적, "국토 회복 전쟁"이라는 뜻의 소위 레콩키스타 활동과 해외 정복 활동을 강조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포르투갈의 정복 활동과 식민지배를 통해 유럽의 문화유산이 브라질이라는 국가의 근간이 되었다고 강조하면서 중세 유럽과 브라질의 연속성을 잇는다.

그러나 정작 서구 문명이라는 개념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포함한 몇몇 정치적/역사적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최근에 고안된 정치적 창작물이다. 브라질의 극우 세력은 중세 유럽이 브라질의 진정한 과거라는 식으로 비춤으로써, 자국의 실제 역사를 표백해버린다. 게다가 현재에도 진행 중인 정치적 잔혹함까지 표백한다. 이를테면 인종차별, 여성혐오 동성애혐오, 종교적 불관용 등이 오늘날까지 활개치는 브라질의 모습이다.

인종차별은 현대 브라질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브라질은 1888년에 이르러서야 미 대륙에서 마지막으로 노예제를 폐지한 나라다. 2017년, 브라질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중 70%가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을 대상으로 일어났다. 브라질 감옥의 수감자 중 60%를 넘는 비율이 흑인이다. 마찬가지로, 젠더 폭력과 여성혐오는 브라질 일상의 핵심적 요소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여성 살해 5위 국가다. 여기에 더해, 브라질은 성소수자가 살기에 가장 위험한 나라로 손꼽힌다. 매년 수십 건의 성소수자 혐오범죄가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근년 들어 종교적 불관용도 상승하는 기세다. 브라질 국민의 대다수는 스스로를 (대체로 가톨릭 및 복음주의) 기독교도라고 이야기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이 실천하는 종교 행위는 몹시 다양하다. 아프리카계 브라질 사람들의 종교를 수행하는 이들이 주로 불관용 행위의 피해자가 된다.

이러한 배경에 놓인 브라질은, 중세 유럽이 백인종, 가부장주의, 기독교의 시대라는 상상이 자라나기 쉬운 토양이다. 극우 세력은 브라질의 역사에서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주민의 역사를 지워낸다. 이들이 브라질 역사에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기여한 바를 지워내는 것이다. 이렇게 상상한 과거 속에서 포르투갈은 멀리서 온 식민 세력이 아니라, 브라질에게 유럽 언어와 문화를 준 "본국"이 된다. 질베르토 프레이리는 브라질에 인종 민주주의가 존재한다는 신화를 창조했다. 브라질에서는 "세 인종"이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극우파가 이야기하는 역사는 프레이리 이전의 관점으로 돌아가있다. 브라질의 과거가 백인종 만으로 이뤄진 순결한 역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을 도용한 선동가들의 목표는 과거를 재구성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듯, 현재와 과거는 이어져있다. 브라질 역사를 새로 쓴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특정 사안을 추진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우소나루가 캄피나그란지 유세 중에 말했듯이, "다수를 위한 브라질을 세웁시다! 소수는 다수에게 굴복해야 합니다! 법률은 다수를 보호해야 합니다! 소수파는 여기에 적응하거나 사라져야 합니다!"라는 것이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정치 사상적 기반은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가부장제 가정이 권위주의 국가의 기틀을 담당하며,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종교적 불관용이 일상생활에 각인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보우소나루 정권은 현재 이미 선거기간에 내세웠던 공약대로 소외 집단을 보호하던 주요 공공정책을 폐지하였다. 보우소나루 정권을 묘사하는데 수구 정권이라는 말보다 어울리는 표현은 없다. 보우소나루 정권을 브라질이 지난 수십년간 이뤄낸 온건 진보주의 성과에 대한 강경 보수 세력의 반동인 것이다.

브라질 극우에게 백인 순혈의 중세 유럽 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현 정권이 따르는 핵심 원칙과 정권의 원동력이 되는 사회 운동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우소나루 정권을 포함한) 브라질 극우가 "브라질을 다시 중세로" 되돌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들은 단지 중세 유럽을 이상적인 과거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불러일으켜, 고결한 미래를 건설하는데 활용하려는 것이다.

극우 세력이 중세를 무기로 활용하는 현상은 전지구적 문제로, 미국과 서유럽에서 유독 눈에 띠게 발생하고 있다. 영어권의 극우 유튜브 스타 폴 조셉 왓슨은 브라질 1차 대선에서 보우소나루가 승리한 직후, 마르칭스를 인터뷰했다. 2018년에도 마르칭스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아들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와 함께 미국의 극우 정치활동가 스티브 배넌과 접촉했다. 심지어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는 "문화 마르크스주의에 맞서" 자신과 스티브 배넌이 연합하는 것이라며 자랑하기도 하였다.

현재 브라질에는 해결되어야할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는 전세계적으로 학계에서 해결되어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중세학자들은 교육과 연구를 수행할 때, 극우 세력에 맞서 이러한 신화를 깨야 한다. 서유럽이라는 한게를 넘어, 다양한 젠더를 수행하는 적극적인 주체들이 살아간 다인종, 다종교 세계라는 새로운 "전지구적(global)" 중세는 이와 같은 복합성을 진정으로 포용함으로써 전지구적 백인우월주의에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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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바람불어 2019/02/22 10:14 # 답글

    브라질을 남미 식민지가 아닌 유럽의 연장이라고 정체성을 만들어가는거군요.
  • 남중생 2019/02/22 11:05 #

    그렇습니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하이트나 호주의 백호주의와 비슷한 맥락인거죠.
  • 쿠리치바노 2019/05/08 13:10 # 삭제 답글

    현지 사는 사람으로서 체감하기에는 반은 맞고 반은 과장된 이야기 같군요.
  • 남중생 2019/05/08 23:18 #

    의견 감사합니다! 브라질에 사는 한국인의 입장도 궁금하던 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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