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당나라에서 원나라까지 의약 교역- 백랍다의 약방문 (2) 예티와 인의예지!

앞서 백랍다의 약방문 (1)에서는 미이라 때문에 고민하던 이시진을 그렸는데요.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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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취미(Exotica)

이시진이 골머리를 앓던 이유는 이국적인 의약품의 약 성분을 집성하고 이해하는 오랜 중국 전통 때문이었다. 소경(蘇敬, 656-660년 경 활동. 이후 소공蘇恭으로 개명)은 중국 토종이 아닌 동물, 식물, 광물을 중국 주류 의약학 내로 편입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소경이 동료들과 함께 작업한 신수본초(新修本草, 당본초唐本草라고도 한다)는 중국에서 최초로 정부가 후원한 의약사전이었다. 신수본초는 657-659 연간에 집성되었으며, 문헌 전체가 현전한다. 신수본초에서 설명하는 850개 약 항목 중, 외래 약재가 중국 의약학 속으로 편입된 것은 30건이었다. 여기에는 비단길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온 후추, 안식향(벤조인), 오배자 등이 포함되었다.

신수본초는 중국과 주변국가 사이의 천연자원 및 의약품 교역이 번성한 시기에 집성된 수많은 의학 서적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집성된 의학 서적은 거의 전부 유실되었으며, 이중 제목으로만 아는 본초서도 있고, 후대의 본초서에 인용된 형태로만 남아있는 유령 서적도 있다. 지금은 유실된 호본초(胡本草)는 8세기에 집성되었으며, "오랑캐(胡)" 땅에서 나오는 약재를 설명하는 7권으로 되어있었다. 이순(李珣, 923년 경 활동)이 집성한 해약본초(海藥本草)는 후대 문헌에 인용된 내용으로 재구성한 형식으로만 남아있다. 이순의 해약본초는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수입하는 약재만을 다루는 책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현전하는 해약본초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해약본초라는 문헌은 이국적인 약재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현전하는 부분이 문헌 전체를 대표하는 거라면, 해약본초는 여행기, 지방지, 여타 외국 기물(奇物) 기록을 주로 인용하여 당시의 정통 본초 서적에 보충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금은 가루, 산호, 화석 갑각류, 향이 나는 풀과 나무, 코끼리 엄니와 코뿔소 뿔, 올리브는 해약본초에 실린 131종의 약재 중 일부에 불과하다.

당나라 때 중국에서는 페르시아 및 이슬람 아랍 세력과의 교역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와 같이 이국적인 물건에 대한 집중도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중앙 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싼 중국과 이슬람권의 계속된 갈등에도 불구하고, 동서 양방향으로 이어진 육로와 해로 교통은 풍부한 교역 기회를 제공하였다. 특히, 당나라는 약재, 약물, 향신료의 신시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경제 호황과 항해 기술의 진전으로 소합향, 오배자, 공작석, 다마스크 철강, 직물처럼 당 이전부터 잘 쓰이던 물질 뿐만 아니라, 침향, 장미향수, 용연향 같은 향,  인디고 같은 염료, 카다몸, 정향, 육두구 껍질과 열매 등 정말 중요한 향신료까지 교역품의 범위가 넓어졌다. 이 중 다수가 의약품 제조법에서 흔히 찾는 재료가 되었다. 한편 동남아시아는 이전 시기부터 중국의 교역 상대였으며, 향토 사치품과 중계 무역품을 제공하였다. 이들 물품 중 상당수는 "이국적인" 의약품으로 쓰였으며, 5세기 말 6세기 초에 중국-동남아 교역이 증가한 덕분에 기존 의약품 목록에 추가되었다. 중국을 여행한 불교 승려들 또한 활발한 종교 물품 교역을 이끌었는데, 향과 향나무, 상아, 백단나무로 만드는 불탑과 조각, 종교의식에 쓰이는 유리 그릇 등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들 물품 중 다수는 의약 분야에서 쓰였고, 중계무역을 거쳐온 물품 중 상당수도 페르시아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들 교역로는 약재와 약물 뿐 아니라, 대량의 의학 지식 및 의학 문헌을 교역하는 주요 통로이기도 했다. 이들 문헌과 지식은 교역로를 따라 운송되는 여러 의약품을 이해하는 방식에 새로운 맥락을 제공하였다. 이국적인 약재가 한문으로 번역되거나 음차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부터는 본래의 맥락과 극적으로 다른 중요도나 의미를 띠게 되었다.

몽골 세력이 지배한 원나라(1271-1368) 때 이 현상은 더욱 부각되었으니, 이슬람 과학자들은 중국의 과학기술에 큰 족적을 남기고 갔다. 원나라 정부는 천문학과 의학을 담당하는 특수 기관을 설립하였는데, 이 두 분야는 이슬람 문헌과 관행으로 보강할 수 있겠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1271년, 회회사천대(回回司天臺)가 북경에 세워졌다. 회회사천대는 관료 여러 명과 18명의 천문학자가 속해있었고, 1284년부터는 원 제국의 달력 계산 업무를 도맡아 했다. 태의원(太醫院, 1260년에 설립된 황립 의학 학원)은 의학 교육을 보조했고, 몇몇 다른 관청에서도 의약품과 향의 수집 및 제작을 담당하였다. (1263년에 서역의약사西域醫藥司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광혜사(廣惠司)는 이슬람 의학과 약학만을 담당한 관청 중 하나였다. 원나라 조정은 이슬람권의 식이요법과 의학을 다루는 회회약방(回回藥方)이나 음선정요(飮膳正要) 같은 책의 편찬을 주문하였다. 음선정요는 주로 몽골 식이요법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슬람 의학과 식이요법에 대해서도 상당히 깊게 들어간다.

이슬람 과학 및 의학 지식을 후원하는데 관심을 보였던 몽골 지도자들이 더 이상 중원을 다스리지 않게 된 이후에도, 명대 초기까지 이슬람 지식을 배우는 것은 급선무로 여겨졌다. 원말 또는 명초에 역관들이 맡게 된 사업 중에는 회회약방이라는 놀라운 의서를 제작하는 일도 있었다. 회회약방은 36권으로 된 책으로, 의약 제조법과 약재 설명이 실려있었는데 다수의 약재명이 페르시어(回回) 문자와 한자가 병기되어 있었다. 회회약방의 대부분은 유실되었으나, 현전하는 세 권과 목차를 보면 페르시아 문자와 한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약재명이나 지명 등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람어, 고전 페르시아어, 아랍어, 터키어를 한자로 음차해 옮겨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회회약방은 적어도 세 명의 집필진이 작성한 것인데, 그 중 적어도 한 명은 페르시아 언어 및 의학 전문가로서 약재명을 페르시아 문자로 적어넣었고, 또 한 명은 북경 출신 중국어 구사자였는데, 주석을 보면 북경 방언이 보이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집필진은 상당 기간 공동 작업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장소에 함께 머무르면서 작업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 작업은 이슬람 의학 경전을 한문으로 초역하는 것이었다. 회회약방 집필진은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미이라 제조법을 번역했을 뿐 아니라, "티리악"이라고 흔히 불리는 약의 종류를 여러가지로 언급하였다.

Nappi, C., (2009). Bolatu's Pharmacy: Theriac in Early Modern China. Early Science and Medicine, 14 (6), pp. 74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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