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유니콘과 해파리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제목 수정 알림: 앞서 오주연문장전산고 기사의 제목 海玻璃辨證說을 "해파리 냉채 변증설"이라고 번역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자()와 해파리를 변증하는 설"이라고 풀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선 해파리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버린다고 써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해파리 냉채는 언제부터 생긴 음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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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과 해파리

우리나라의 "별주부전"과 상당히 유사한 이야기가 일본에도 있습니다. "해파리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용왕님(혹은 왕비)가 병에 걸리자, 약을 찾으러 해파리가 육지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1887년에 "어리석은 해파리(The Silly Jelly-Fish)"라는 제목으로 영어 번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 전래동화에 호기심을 보일 서양 독자들을 위한 책이군요.

이 책에서 어의(御醫)들이 모여서 약을 처방하는 장면을 봅시다.


앗! 일각고래 우니코오루(ウニコオル)!


서양에서는 유니콘의 뿔이 영험하다는 전설에 따라, 코뿔소 뿔이나 일각고래 뿔이 (짝퉁) 약재로 거래되었고... 이게 일본까지 전해졌다는 이야기는 저와 블로그 이웃 적륜 님이 여러 차례 했습니다.

적륜 님 블로그에서는,
엣센스만 요약하자면 18세기 후반, 네덜란드인이 관찰한 일본에서 "유니콘의 뿔만큼 비싼 값으로 팔린다"며 인삼과 비교했지요. 동양의 인삼, 서양의 일각고래! 인 것입니다.

역시 18세기 후반 일본의 의사, 타치바나 난케이도 청새치라는 물고기를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주둥이 길이가 2척 6치나 되는데, 끝이 날카롭고, 껍질은 상어 같으며 그저 짐승의 뿔 같으니, 물고기에게 (달려)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우니코오루(一角)의 주둥이라는 것도 이 물고기를 보니 믿을 수 있다."

바로 이런 맥락을 거쳐, 메이지 일본에서 외국에 수출하려고 출판한 전래동화책에는 일각고래가 용궁의 어의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약을 구해오지 못해서 두들겨 맞는 해파리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각고래가 아니라 해파리지요?
그러니까 해파리에 대한 변증도 해보렵니다.

바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中 "자()와 해파리 변증설(鮓海玻璃辨證說)"입니다!

아니, 이 아저씨는 무슨 온갖 것들을 다 변증하고 있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니 그런 생각은 잠깐 뒤로 합시다.ㅎㅎ 

우선 이규경 아저씨는 다음과 같이 첫머리를 끊습니다.

자(鮓)는 자서(字書)를 보면 음(音)은 자(子)고, [뜻은] 생선 젓갈(魚菹)이다. 우리나라(我東)에는 본래 음식(飮膳) 중에 자(鮓)라는 것이 없다. 

디용? 우리나라에 생선 젓갈이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요?

이규경 선생님의 변증에 따르면, 자(鮓)는 초(酢) 그러니까 식초와 통하는 글자이기 때문에, 식초장(酸醬)에 담그는 젓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김치(沈菜)나 식해(食醢)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似是。如今沈菜。又如食醢者也。)

그런 다음 중국의 온갖 자(鮓)를 나열한 뒤, "모두 우리나라에는 없다(皆我東所無)"고 합니다.

하지만 생선젓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바닷가 사람이 먹는 위어(葦魚, 멸치과 생선) 식해, 멸치(蔑魚) 식해, 가자미(比目魚) 식해 따위가 있으니, 이것들이 곧 중원의 자(鮓)에 해당하는 종류다. 또 굴 김치가 있고, 홍합 식해가 있다. 대합, 소합 등도 식해, 김치를 하니, 마찬가지로 자(鮓)에 해당하는 종류다.

이렇게 우리나라 젓갈류를 소개한 뒤, 일본 화한삼재도회의 "피클드 헤링(南蠻漬)" 레시피를 소개한 뒤, "이것 역시 자(鮓)에 해당하는 종류다(此亦鮓之類也)라고 선언하지요. 그 다음으로는 다시 조선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호서 지방, 호남 지방, 해서와 관서(兩西) 지방, 동북 지방의 바다에는, 사투리(土名)로 해파리(海玻璃)라고 하는 것이 있다. 모양이 물거품(水泡)을 닮았다. 파도 위에 부유한다. 만약에 이것을 잡아서 찔러보면 피를 흘린다. 그 쓰임을 모른다. 사람들은 [이것을] 먹지 않으며, 버리고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듣기로 등주(登), 래주(萊)에 황당선 사람이 이것을 가져가는데, 백반(白礬)에 담그면 오래 가고 썩지 않는다. 옷에 풀칠(糊錦)하는데 쓴다고 한다. 

옥편(字書)에서 생선젓갈 자(鮓) 자의 주석을 살펴보면, "초(酢). 동해 물고기 이름이다. 모양은 피가 엉긴 것(凝血) 같다. 머리 마디(頭目)가 없고, 속에는 내장이 없다. 새우떼(衆鰕)가 이것을 따라다닌다."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혹시 해파리를 말한 것인가? 어느 종류인지 상세히 알 수 없다. 또 그 쓰임(功用)이 어떠한지 기록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시골에 나와있는 중이라, 고증할 책이 없으니, 도리어 어리석은 자만 못하니, 한탄할 뿐이다. 


옷! 황당선에서는 고래만 잡아간게 아니라, 해파리도 잡아갔군요. 다만 왜 잡아가는지는 이규경 씨도 불확실했나 봅니다. 저도 "호금()"이라는 구절은 잘 모르겠어서 일단 옷에 풀칠한다고 번역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규경 아저씨가 할 일이 없어서 해파리나 변증하고 있었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서울 집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살고 있었고, 자신의 방대한 서재를 활용할 수 없으니 너무 답답했나 봅니다. 

해파리 변증설에서 이규경은 자서(字書), 그러니까 옥편 한 권 만을 계속 인용합니다. 귀양살이라도 하던 중이었던걸까요? 그나마 수중에 있는 옥편 한 권을 들고 글을 썼을 이규경의 한탄이 유독 사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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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황당선을 타고 다니는 19세기 서양인들은 "피가 엉긴 것 같이 생긴" 해파리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어딘가 고혹적이고 독기를 품은 너울너울함이 매력 포인트였나 봅니다. 이런 크리스마스 카드도 만들었으니 말이지요...;;

P.S. 2 
멸치과 생선 위어에 대한 정보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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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迪倫 2019/02/18 13:56 # 답글

    오! 우니코루도 등장하는 해파리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가 언젠가 우니코루 사진을 직접 찍은 것 보여드리겠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분관에서 우연히 구석에 있는 우니코루 뿔과 마주쳤었답니다. ㅎㅎ
  • 남중생 2019/02/18 14:00 #

    ㅎㅎㅎ 사실 이 글을 쓴 계기에는 황당선과 해파리, 일각고래가 등장하는 글을 읽은 적륜 님이 의욕에 가득차서 새 글을 쓰리란 기대도 있었습니다. 적륜 님의 글도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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