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타이 단어와 신대 문자 인도차이나 ~Indochine~


타이 단어와 신대문자

남중생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락룡군과 구희의 로맨스 이야기는 이미 익숙할 것입니다. 이 커플이 이후에 100명의 자식을 낳은 뒤 이혼을 한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시겠죠.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 이야기로 시작을 해보고자 합니다.

"구희와 나머지 50명의 자식은 봉주(峯州)에 거처했는데, 자식 가운데 웅장(雄長)한 자를 추대해 임금으로 삼아 웅왕(雄王)이라 칭하고, 국호를 문랑국(文郞國)이라 했다. 문랑국은 동으로 남해(南海)를 끼고, 서로는 파촉(巴蜀)을 경계로 했으며, 북으로는 동정호(洞庭湖)에 닿고, 남으로는 호손정국(狐猻精國)에 접했다. 나라를 15부(部)로 나누었는데, 교지(交趾), 주연(朱鳶), 육해(陸海), 복록(福祿), 월상(越裳), 영해(寧海), 양천(陽泉), 계양(桂陽), 무녕(武寧), 회환(懷驩), 구진(九眞), 일남(日南), 진정(眞定), 계림(桂林), 상군(象郡) 등의 부(部)가 그것이다. 웅왕은 이들 부를 동생들에게 나눠 주어 다스리게 했다. 그 다음 위계(位階)로 장상(將相)을 두었는데, 상(相)은 락후(貉侯)라 하고 장(將)은 락장(貉將)이라고 했다. 왕자는 관랑(官郞), 공주는 미랑(媚娘), 일을 담당하는 벼슬아치는 포정(蒲正), 하인은 앙(卬), 여종은 초칭(稍稱), 신하는 괴(瑰)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대로 아버지가 자식에게 왕위를 전하면서 웅왕이라 부르고 그 칭호를 바꾸지 않았다.
(박희병 옮김,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 pp. 21-22.)

우와... 명칭들이 참 많네요. @@ 
지명들은 베트남과 주변 지역의 지명입니다. 예컨대 남쪽에 있다는 "호손정국"은 참파를 가리키는 말이죠.
직책명도 많은데, 무슨 뜻인지는 한자만 보아서는 알듯 모를듯 하네요.

한편, 영남척괴열전의 위 기록과 유사한 내용을 말하는 대월사기전서 기록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도 살펴볼까요?

(이번에는 리암 켈리 교수님의 블로그가 아니라, 논문을 일부만 번역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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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다시 인용하자면, 대월사기전서에는 웅왕의 치세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왕자는 관랑(官郞)이라고 불렸고, 왕녀는 미낭(媚娘)이라고 불렸다. 관리(司)가 있었으니 포정(蒲正)이라고 불렸다. 대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직위를] 전했으니, 이것을 부도(父道)라고 불렀다." 이 용어들은 모두 타이 용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 "한문(漢文)식 타이" 용어다. 타이 언어적 요소와 한문의 요소를 합쳐놓았기 때문이다.

王子曰官郞、王女曰媚娘。有司曰蒲正、世世以父傳子、曰父道。世主皆號雄王。

미낭(媚娘, 미 느엉)에서 첫 글자 "미(媚)"는 타이어의 "매(แม่, mae)"인데 "어머니"라는 뜻이다. 두번째 글자 "낭(娘)"은 타이어에서 "아가씨"를 뜻하며 중국어 "냥(娘, niang)"에서 온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관랑(官郞, 꽌 랑)"도 벼슬 관(官) 자와 사내 랑(郞) 자를 합쳐놓았다. 랑(郞)이라는 글자는 중세 중국의 관직명에 쓰였는데, 광서 지역의 원주민에게 내리는 관직이었다. 예컨대 범성대(范成大)는 "오랑캐" 추장을 "랑화(郞火)"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관랑(官郞)이라는 용어는 늦어도 당나라 때부터는 쓰였는데, 홍하 삼각주 지역에서 중국인을 대신하여 원주민을 다스리는 하급 관리를 일컫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풍(馮) 씨 가문이 대를 이어 홍하 삼각주 변방에서 이장(夷長)으로 복역했으며 "관랑"이라고 불렸다고 기록한 당나라 때 문헌이 있다.

포정(蒲正, 보 찡) 또한 합성어인 것으로 보인다. "포(蒲)"는 타이어의 "푸"(ผู้, 사람)거나 "포"(พ่อ, 아버지)일 수 있다. 한편 정(正)은 "요새"를 뜻하는 타이어 "치엥(chieng)"일 수 있다. 이 단어는 중국어 성(城, cheng)에서 왔다. 그렇다면 "푸 치엥" 또는 "포 치엥"은 성주(城主)를 뜻하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대월사기전서에서 대대로 통치권을 물려받았다고 하는 "부도(父道, 푸 다오)"라는 것은 장로를 뜻하는 "푸 타우(ผู้เฒ่า)"거나 검은 타이 족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부르는 호칭인 "푸 타우(ผู้ท้าว)"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어째서 한문식 타이 용어가 15세기에 집성한 베트남 역사책에 등장해서 고대 관직명을 나타낸다고 일컬어지는지를 물을 수 있다. 대월사기전서에 이들 용어가 편입되었다는 것을 통해 일종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15세기 베트남에 들어선 레 왕조는 새 왕조로서 정당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었는데, 정당성 표현을 위한 여러 방법을 모색했다.

군사적으로 레 왕조는 타이 인구집단이 살고있던 서북쪽 방면으로 영토를 넓히고자 하였다. 상징적으로는 레 왕조가 고대로부터 정치를 계승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고대상(像)을 만들어냄으로써 국가의 힘을 보이고자 하였다. 이렇게 새로이 상상한 역사에 한문식 타이 용어를 편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큰데, 베트남인이 타이인을 정복을 통해 복속시켰을 뿐 아니라, 먼 과거로 타이인을 배치시킴으로써 복속시키도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베트남인은 과거 한때 타이인이었으나, 세상이 변한 것이다.

Kelley, L. C. Tai Words and the Places of the Tai in the Vietnamese Past. Journal of the Siam Society, Vol. 101. pp. 8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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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한문식 타이 단어였군요. 그래서 한자만 읽었을 때 뜻이 아리송했던 겁니다.
그리고 15세기에 들어서 타이 인구집단에 비해 비엣 인구집단이 훨씬 강성해짐에 따라, 비엣 인구집단은 타이 인구집단을 "약체"로 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과거" 상태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미개한 구시대적 존재라고 본 것이지요.

비엣 사람들은 단지 그런식으로 어렴풋한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 적극적으로 타이족을 보면서 참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먼 옛날에 대해 잘 모르겠는 부분은 타이 족의 지금 모습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 역사서에서도 타이 족의 언어를 가져다 비엣 족의 상고사를 그려냈습니다. 굳이 선후 관계를 따지자면 타이 인구집단이 동남아시아를 찾아온 것이 비엣 인구집단 보다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최근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타이 족이 베트남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8, 9세기의 일입니다. (2. 도돌이표: 타이 언어와 비엣 언어 참조.) 15세기 베트남에서 이 정도의 과거도 기억하지 못했다면 기원전의 일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베트남 영토 내에 사는 타이 소수민족의 옛 문자를 들고 와서 한자를 쓰기 이전 베트남의 고대 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베트남에서만 일어났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도쿠시마 현에 있는 신대 문자가 적힌 깃발 두 장 (연합뉴스). 解明 님 블로그에서 전재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한글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많이 유통되었다. 언어로의 한국어가 아니라 문자로의 한글에 대한 정보였다. 주변 여러 나라의 글자를 배우고 싶다는 지적인 욕구도 있었지만 일본인의 속마음은 조금 더 복잡했다. 일본의 지배층은 한반도가 대대로 일본의 속국이라고 믿어왔다. 그들은 속국의 언어와 문자를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글을 공부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라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의 국수주의 학문인 국학(國學)을 완성시킨 사람이다. 그가 아들에게 한글 공부를 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요즘 어떤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한류 열풍이 불어서 일본 사람이 한글 공부를 했다고 말한다. 아니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에게는 히라타 아쓰타네라는 제자가 있었다. 문제의 아히루 문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히라타는 일본인이 중국의 한자를 쓰고, 한자를 바꿔 만든 히라가나를 쓴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한자가 일본 열도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일본에 고유의 문자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주장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히라타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아히루 문자를 비롯한 10여개의 문자를 발견했다. 아니, 발명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한국의 어떤 사이비 역사학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한국인은 한자를 쓰기 수천 년 전부터 가림토 글자라는 걸 쓰고 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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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등 참조.


"일찍이 한 나라에는 각기 한 나라의 문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아직 한자가 당도하지 않았을 시절에 마땅히 문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강 상류의 오랑캐 노자(夷)를 보면, 또한 그 문자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이 상세하지 않아, 시대를 고증하기 어려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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