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일본어를 조금은(?) 읽을 줄 알았던 이규경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19세기 조선의 만물박사 이규경의 어학실력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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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조금은(?) 읽을 줄 알았던 이규경

블로그 이웃 적륜 님께서 전부터 궁금해하셨던 점이 있는데, 바로 "이규경은 일본어를 알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恒浮海上異樣船 - 항상 바다 위에 떠있는 이상한 모양의 배 포스팅에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인용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죠.

"일본의 고래를 찌르는 창을 '삼(森)'이라고 한다."

*迪倫의 해설: 19세기 초반까지 아직 전근대적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던 일본의 포경업에 대한 설명이 생생하게 나와있습니다. 저는 실은 이규경이 이 정보를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전해들었는지가 대단히 궁금합니다. 마지막의 제가 한국어 한자음 그대로 삼(森)으로 쓴 것은 실은 이 글자의 훈독 '모리'(もり)가 맞습니다. 작살을 의미하는 일본어의 '銛'자를 '모리'라고 읽습니다. 호오! 이규경은 혹시 일본어도 좀 알았던 걸까요?


지금으로부터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적륜 님은 18세기 목내이, 그리고, 네덜란드.... 포스팅에서도 이규경의 "미이라 변증설"을 인용하면서,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 상고하건대, 아란타(阿蘭陀)의 토산물(土産物) 중에 목내이(木乃伊)가 있다고 하였으니, 서북(西北)쪽 제번(諸藩)들도 천방국(天方國)의 밀인(蜜人) 법제(法製)를 모방하여 기화(奇貨)로 삼은 것이다. 다만 이 밀인을 ‘목내이’라고 이름한 것은 음(音)만 있고 뜻은 없는데, 그 뜻을 궁구해 보면 이것이 ‘밀인(蜜人)’의 번음(藩音)이다.

아래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또 한가지 밀인이 목내이의 번음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 목내이라고 적고 '미이라'라고 읽는다는 일본어 발음조차도 파악하고 있었나 싶습니다. 화한삼재도회를 통해 실재 일본어의 발음도 실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전해지고 있엇던 것일까요? 흥미있는 단서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목내이(木乃伊)가 일본어로는 "미이라"(밀인)라고 발음된다는 것을 이규경이 인식하고 있었다면, 일본어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던게 아닐까? 하는 것이죠.


[여기서 잠깐 자기변명]

8년 전 글을 용케 기억해서 그렇게 저렇게 엮냐고요? 
하하... 제가 적륜 님 팬인 것도 있지만, 적륜재에 쓰인 글이 제 관심사에도 연관이 많이 되다보니 자꾸 읽고 또 읽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남이 궁금해하는 것을 같이 궁리하는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지만, 궁금증을 함께 나누면 폭발하는 것입니다!! 콰광!!

그러니, 적륜 님이 빅토르 프랑켄슈타인 박사님이라면 저는 충실한 이고르인겁니다. (하지만 시체를 업어오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규경은 일본어를 하였는가... 저도 무척 궁금한데요.


여기에 나름의 답을 내놓는 기록을 찾았습니다. 

네, 역시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뫄뫄 변증설입니다.^^

여기서 이규경은 우리나라의 훈민정음(본국정운)과 이두를 이야기한 다음에...

일본의 가타카나를 이야기합니다!!



"일본의 가타카나(片假字)를 경사(經史)의 구두 옆에 써 놓은 것도 마치 우리나라의 토와 같아 그대로 구결(口訣)이 된다. 가타카나를 살펴보면, <화한삼재도회>에 "가타카나는 문자의 반방(半旁)을 따서 만들었다." 하였다. 그러나 치[チ / 千], 네[ネ / 子], 이[ヰ / 井], 미[ミ / 三] 네 글자는 완전하게 쓰고 새김[訓]으로 읽는데 새김의 뜻을 취하지 않고 음을 취한 것이다. 다만 이로하(以呂波)에서 반자(半字)를 취한 것이다. 이를테면, 伊 자에서는 イ를 취하고, 呂 자에서는 ロ를 취하고, 半 자에서는 ㇵ를 취하여, 이런 것들을 모아서 가타카나를 만들어 새김을 읽기에 편리하게 한 것이니, 마치 우리나라의 (이두에서) '하고'와 같은 것이다."

마지막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두에서 "~~하고"라는 우리말 표현은 爲古라고 쓰는데, 爲자의 머리부분과 古의 아래부분(口)를 합쳐서 약자로 쓴다고 합니다. 

아걸 볼 때, 이규경 씨가 가타카나로 된 이로하 정도는 읽을 수 있었던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이 지식도 그저 화한삼재도회라던가 그런 책에서 옮기기만 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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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여기서 볼 수 있듯이 1800년대에는 일본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로하 노래"로 일본 가나를 배우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한편 동시대 일본 규슈의 벽촌에는 이로하 노래로 가타카나를 떼는 것을 모르고, 옛 하이쿠로 배운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고수한 사람들도 있었으니... 서유기의 28. 이로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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