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니칸드로스의 독사 퇴치제 2부: 농촌의 공포와 민간요법 [특집] 뱀, 여자, 위험한 것들

Recipes Project 합동 블로그의 Nicander's Snake Repellant Recipe. Part 2: Pastoral Horor and Rustic Remedies를 번역합니다. 지난 번 번역한 1부에 이어서 2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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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칸드로스의 독사 퇴치제 2부: 농촌의 공포와 민간요법

몰리 존스-루이스

이번에는 새로운 관점에서 니칸드로스의 독사 퇴치제 제조법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 고즈녁한 농촌 지역에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극적 설정이 있고, 피에 굶주린 뱀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장미향 풍기는 뱀죽을 몸에 바른 주인공이 있다.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니칸드로스가 그리는 세계에는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다. 니칸드로스가 쓴 시의 형식, 언어, 신화적 비유는 모두 페르가몬 왕가의 후원 아래 놓인 도시 상류층 문화의 산물이다. (니칸드로스를 후원한 아탈로스 왕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칸드로스는 빈번히 뱀이 들끓는 길목을 걷고, 뱀이 우글대는 곳에서 잠을 청하고, 손수 밀 농사를 지어서 뱀 퇴치제가 많이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조언하는 시를 쓴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고대의 상류층 사람들도 여행 중이거나 농촌 별장에서 지낼 때 뱀 걱정을 할 수도 있었겠으나, 밀밭에 나가서 추수하던 사람이 휴식 시간에 니칸드로스의 시를 통해 뱀 이야기를 읽지는 않았으리라.

여기서 시문학의 장르가 작용하는 것이다. 니칸드로스는 농촌을 배경으로, 시골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이 전형적인 장르의 시를 쓴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자연을 다루는 교훈 시의 문체는 마치 바깥에서 일하는 농부를 돕기 위한 것처럼 쓰였다. 비록 실제 작가와 독자가 아무리 도시적인 삶을 살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니칸드로스의 세계에는 한 가지 주요 차이점이 있다. 목가적 판타지를 재치있게 전복한 것이다. 니칸드로스의 화자는 질서잡힌 시골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뱀이 우글대고 전갈이 곳곳에 도사린 공포체험을 선사하고 있다.

▼디오스코리데스 아니키아 사본(6세기)의 장미 그림. 
재료에서 뱀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인 사슴, 밀랍, 장미유가 여기서 중요해진다. 우선 장미부터 살펴보자. 니칸드로스 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간 철학자이자 식물학자인 테오프라스투스에 따르면 장미 향유는 다른 냄새를 덮어버리는 효능이 워낙 탁월한 나머지, 향수 상인들이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겠다 싶으면 공기 중에 장미 향유 냄새를 분산시켜 고객이 제대로 향을 분간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뱀과 사슴을 넣고 끓인 죽을 상상해본다면 장미 향유로 냄새를 덮을 필요가 있겠다는 것도 족히 알 수 있다. 게다가 고대의 장미 향유는 소금을 듬뿍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방부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제조법에서 "곱게 갈은" 등급이라는 것은 바로 이 소금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슴 골수도 여기에 넣기 적절한 재료다. 사슴이 희귀동물은 아니지만, 주로 시골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동물이면서 도시 사람 중에서도 사냥한 고기를 구입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면 사슴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도시에 있는 약국 입장에서 (니칸드로스가 명시하듯) "신선한" 사슴 골수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사슴 뿔은 뱀을 퇴치하는 연기를 피우는데 종종 사용되었고, 기원후 1세기에 활동한 디오스코리데스에 따르면 사슴 골수도 야생 동물을 몰아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슴 골수라는 재료도 마찬가지로 고대 세계의 의약학과 맥락을 같이하며, 시의 배경이 되는 시골 감성을 한결 더하는 것이다.

니칸드로스가 밀랍을 말한 것은 구색 맞추기에 가깝다. 밀랍은 약에 들어가는 흔한 재료인데 대개 응고제 역할을 하도록 넣는 것이다. 밀랍은 예나 지금이나 (뱀-사슴-장미 죽 같이) 액체형 혼합물을 보다 피부에 바를 수 있는 고약 형태로 굳히는데 쓰인다.

그렇다면 니칸드로스의 뱀 퇴치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류의 시는 당대의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였다.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TV에서 코스모스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일화, 신화, 애니메이션 기술을 이용하듯이 니칸드로스는 청중에게 익숙한 이야기와 심상을 연결지어서 교육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 니칸드로스 본인이 독을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당대 전문가가 쓴 문헌에 기초해서 시를 썼고, 후대 자연철학자들은 테리아카를 믿을 만한 자료로 취급했다.

뱀 퇴치제만 두고 보자면, 과연 고대 지중해 세계의 농촌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교미하는 뱀을 찾으러다닌 사람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니칸드로스는 시에서 명확한 지시사항을 내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문학 속 레시피가 아니더라도 레시피라면 으레 찾아볼 수 있는 요소가 들어있다. 아마도 이 구절의 영감이 된 실제 민간요법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어느 요소가 그 흔적인지 확인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니칸드로스가 제공하는 제조법을 요소 별로 떼어놓으려고 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오히려 훌륭한 창작 레시피를 읽는 것만으로도 치유 효과가 있다. 이 싯구의 모든 부분이 상류층 청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맞춤제작 되어있다. 우선 익숙한 설정이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면서 급박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그런 다음 인간의 지식과 힘이라는 형태로 안정을 주는 것이다.

뱀 공포증에 시달리다 못해 지친 사람들을 위해 이 제조법은 그 자체로 환상을 통한 치유로 작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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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는 교훈시의 문체는 마치 바깥에서 일하는 농부를 돕기 위한 것처럼 쓰였다. 비록 실제 작가와 독자가 아무리 도시적인 삶을 살더라도 말이다." (니칸드로스의 독사 퇴치제 2부: 농촌 공포와 민간요법 中) 또한 "head of household"는 여기서는 "살림꾼"이라고 번역했지만, 뒤에서는 맥락에 따라 "가장"이라고 명시했다.&n ... more

덧글

  • 2019/02/05 22: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2/06 01: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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