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타의 손자 호가 남월왕이 되었다." 인도차이나 ~Indochine~

지난 번에 리암 켈리 교수님 블로그에서 1. 도돌이표 물의 문화 포스팅을 번역한 뒤, 너무 많은 유사역사학적 소재들에 둘러싸여 감당을 못 하겠으니, 최병욱 교수님의 신간을 보면서 찬찬히 생각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호동 왕자 낙랑 공주 이야기와 몹시 닮은 "중시 왕자 미주 공주"(?)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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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 손자 호가 남월왕이 되었다."
(佗孫胡爲南越王)

사마천의 사기, "남월열전"에 나오는 위 문장에 대해 최병욱 교수님은 아래와 같이 해설을 달았습니다.

"왜 아들이 아니라 손자가 조타를 계승했을까? 사마천은 설명이 없다. 조타가 너무 오래 살았으니 아들이 먼저 죽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대월사기전서"에서 찾을 수 있다. 조타의 아들은 중시(仲始)였다. 남월과 어우락 사이에 전쟁이 그치지 않았을 때 남월 왕자 중시와 어우락 공주 미주(媚珠)가 결혼했다. 그런데 중시가 어우락 왕의 비밀 병기를 망가뜨리고 남월로 돌아갔다. 다시 일어난 전쟁에서 남월왕이 어우락을 이기고 미주는 아버지에게 죽었다. 이를 슬퍼한 중시 역시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다. "사기"에 조타의 아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대월사기전서"의 필자가 교묘히 파고들어 만들어낸 이야기 같기도 하고 사마천은 놓쳤지만 베트남인 사이에 전해오던 기록이 정리된 것일 수도 있다.
(최병욱, 사마천의 동아시아, pp. 338-339) 


사마천의 동아시아 - 6점
최병욱 지음/산인


여기서 최병욱 교수님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십니다.

우선 첫번째는 조타에서 아들을 건너뛰고 손자로 왕위가 넘어가는 공백에 이야기를 끼워넣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가능성은 "사마천은 놓쳤지만 베트남인 사이에 전해오던 기록이 정리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우선 첫번째 가능성부터 살펴봅시다. 왜 이야기를 지어내어 끼워넣었을까요? 아마도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왕위계승을 중시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5세기에 오사련이 편찬한 관찬 정사 대월사기전서에는 이런 흔적이 여러 곳에 보입니다.락룡군과 구희가 이혼한 뒤, 영남척괴 등의 기록에서는 어머니 구희를 따른 아들들이 웅왕이 되는 반면에 대월사기전서에서는 아버지 락룡군을 따른 아들들이 웅왕이 된다고 되어있습니다. 18세기 역사가 오시사(吳時仕)는 이런 점을 지적합니다.

사관[오사련]은 아비를 따른 자들이 국통(國統)을 바르게 하기를 원했다. 그로 인하여, 그 문장을 바꿔서 "나머지 50명은 아버지를 따라 남쪽에 거했다."고 하고, 그 아래 웅왕을 이어붙임으로써, 마침내 사실이 착오되고 잊혀지게끔 했다. 독자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史氏欲以從父者為正國統,因變其文曰,五十子從父居南,而以雄王繋其下,遂使事實錯泯,讀者不能無疑。)

(리암 켈리 교수님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 오시사의 논리적 사고와 동남아시아 여성의 역사적 주체성 中)

또한 오사련은 락룡군이 구희가 정분이 나서 야반도주한 일을 떳떳한 혼인으로 윤색했다는 지적도 받습니다.
 
사관(오사련)은 이 일을 감추고는, (락룡군이) 제래의 딸에게 장가갔다고 말하였다. 정분이 났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나 추잡한 행위(鳥行)를 이야기하자니, 마찬가지로 말할 수 없어, 말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하게 된 것이다.
(史氏諱其事,言娶帝來女,耻鶉奔而談鳥行,均不可道,不如闕之。)

(리암 켈리 교수님의 락룡군과 구희의 애정도피 행각?? 中)


그렇기 때문에 첫번째 가능성은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번째 가능성은... 어떨까요? "사마천은 놓쳤지만 베트남인 사이에 전해오던 기록이 정리된 것일 수도" 있는 걸까요?

우선 켈리 교수님은 기원전 2세기 경에 일어났다는 일을 살펴보는데 15세기 기록인 대월사기전서를 들어 사용하는 것에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1700년의 간극을 어떻게 해소하냐는거죠. 같은 맥락에서 "구락(어우 락)"이라는 국호를 쓰는 것도 잘못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왕국"이 "어우 락"이라고 불렸다는 언급도 당시로부터 약 1700년이 지난 15세기에나 등장한다. 영남척괴(嶺南怪, 링 남 칙 꽈이)와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 다이 비엣 스 끼 또안 트)라는 책인데, 이 책들은 어찌 된 일인지 이때까지 한 번도 기록된 적이 없는 먼 옛날에 대해 방대한 정보를 "밝혀낸다"...

(리암 켈리 교수님의 어우 락이라는 나라는 없어 中)


더욱이 중시 왕자와 미주 공주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최초 출전이 대월사기전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6세기 문헌으로 추정되는 수경주(水經注)에 등장하지요.

"안양왕에게는 미주(媚珠)라는 딸이 있었는데, 시(始)가 단정한 것을 보았다. 주는 시와 교통하였다. 시가 주에게 묻기를, 아버지의 석궁을 가져와 보여달라고 하였다. 시는 석궁을 보고는, 석궁을 몰래 톱으로 끊고는, 남월왕에게 도망쳐 돌아가 보고하였다.   

남월은 병사를 이끌고 공격하였다. 안양왕은 석궁을 쏘았으나, 석궁이 부러져 결국 졌다. 안양왕은 배를 타고 바다로 도망쳤다. 지금 평도현(平道縣) 뒤에 왕궁성이 보이니 그 옛터다.

安陽王有女名曰媚珠,見始端正,珠與始交通,始問珠,令取父弩視之,始見弩,便盜以鋸截弩訖,便逃歸報南越王。南越進兵攻之,安陽王發弩,弩折遂敗。安陽王下船逕出于海,今平道縣後王宮城見有故處。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기원전 2세기와 기원후 6세기 사이에 등장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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