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태국어는 어디서 왔을까? (完) [특집]양자 악어 이야기

이 시리즈도 드디어 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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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스트, 강, 악어 (4) 
- 타이 언어의 동남아 전파

출라롱콘 대학 교수, 
핏타야왓 핏타야폰 (미국 코넬 대학 언어학 박사, 2009) 


서남 타이 제어의 요람이 동남아 반도의 더 남쪽에 위치했을 수도 있을까? 또다른 단어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랬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악어(crocodile, alligator)"를 뜻하는 타이 단어는 비록 지형에 대한 용어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악어를 뜻하는 타이 조어 단어는 중국어 단어 악(鱷, 중고한음 ngak)에서 빌려온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에도 타이 제어가 쓰이는 전지역에 걸쳐 이 단어를 볼 수 있는데, 몇몇 방언에서는 여전히 악어를 부르는 이름으로 쓴다. 예컨대 샨 방언의 ngëk과 샹시 방언의 ngük이 있다. 그러나 3대 지파에 속하는 대부분 타이 언어에서 해당 단어는 뱀 같이 생긴 전설 속 수중생물을 의미하게 되었다. 서남 타이 언어에서는 검은 타이의 ngïaq과 흰 타이의 ngë가 있다. "릴릿 옹깐 챙 남(lilit ongkan chaeng nam, ลิลิตโองการแช่งน้ำ)" 같은 태국 고전문학에 나오는 ngïak이라는 단어는 확실히 이 새로운 의미로 쓰였다. 현대 태국어에서 이 단어는 또다른 종류의 수중생물, 인어(人魚)를 의미하는데, 예컨대 인어공주라는 뜻의 naang ngïak("공주" + "인어")이 있다.[1]

▲표 1. 타이 조어(Proto-Tai)와 중고한어(中古漢語, Middle Chinese, 6-11세기)의 성조 대응. (Pittayaporn, 2014, pp. 49)
D행 참조. 2014년 논문에서는 태국 왕립학술원의 로마자 표기 대신 국제음성기호(IPA)를 써서 표기에 차이가 있다. 


태국에는 악어가 여러 종 있지만, 오늘날 태국어에서 악어("crocodile, alligator")을 뜻하는 단어는 "쩌라케(choorakhee, จระเข้)"라는 유래를 알 수 없는 새로운 단어다. 중국의 양자강 악어(Alligator sinensis)는 양쯔강 중하류 유역의 호수와 늪지에서만 서식한 반면, 동남아시아의 악어들(Crocodylus prosus, Crocodylus siamensis, and Tomistoma schelegelli)의 서식지는 동남아 반도의 중남부 전역에 걸쳐있었다. 이러한 분포로 인해 동남아 북부와 중국 남부는 악어가 없는 지역이 되는 것이다. "악어"에서 "전설 속 수중생물"로 의미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면 서남 타이어의 고향에 서식한 동물 중에 악어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상들로부터 들어온 악어는 신비로운 상상 속 생물체가 되어갔으리라. 그리하여 서남 타이어를 쓰는 사람들이 동남아시아 남부에서 악어와 재회했을 때에는 새로운 단어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로써 서남 타이어가 더 남쪽에서 발달했을 가능성은 없어진다. 그리하여 서남 타이 제어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가기 전 발달한 장소로는 윈난 동남부, 라오스 북부, 베트남 북부를 잇는 지역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인 것이다. 

답사지에서 여러 시간 차를 타고 온 뒤에야 구이린에 도착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심장은 쉬지 않고 뛰었다. 구이린과 양숴의 카르스트 기암괴석과 강물이 사라지리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무언가를 발견한 듯해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버스를 타는 내내, 필자는 머릿속에서 서로 다른 개념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광시의 카르스트 지형에서 베트남의 고산 지대까지, 너른 강물부터 산 속에 흐르는 계곡까지, 악어에서 전설 속 수중생물까지... 필자를 내내 괴롭히던 물음표를 이 여정을 통해 지워버린 것이다. 타이 언어는 광시에서 퍼져나가면서 홍하를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동남아시아 북부에 다다랐다. 그런 뒤 동남아 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리라. 서남 타이 제어가 가장 큰 다양성을 보이는 지역이 어디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했고, 어원론적 근거는 단편적이었지만, 필자 스스로가 찾아낸 답안이 진실과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려고 배낭을 싸면서 북부 베트남의 풍경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버스를 내리자 베트남과 광시에서 답사한 경험이 한결 더 뿌듯했고, 언어학 공부의 다음 정류장은 어디가 될지 눈 앞에 선명히 보이는 듯 하였다. 


참고문헌:

Chamberlain, James R. (1975). A new look at the history and classification of the Tai dialects. In J. G. Harris & J. R. Chamberlain (Eds.), Studies in Tai linguistics in honor of William J. Gedney (pp. 49-60). Bangkok: Central Institute of English Language, Office of State Universities.

Diller, Anthony. (2000). The Tai language family and the Comparative Method. In S. Burusphat (Ed.), Proceedings :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ai Studies, July 29-31, 1998. (pp. 1-32). Nakhon Pathom: Institute of Language and Culture for Rural Development,Mahidol University.

Gupta, Avijit. (2005). Rivers of Southeast Asia. In A. Gupta (Ed.), The Physical Geography of Southeast Asia. (pp. 65-79).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Kullavanijaya, Pranee, & L-Thongkum, Theraphan. (2000). Linguistic criteria for determining Tai ethnic groups: case studies on Central and South-Western Tais. In S. Burusphat (Ed.), Proceedings :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ai Studies, July 29-31, 1998. (pp. 273-298). Bangkok: Institute of Language and Culture for Rural Development,Mahidol University.

Li, Fang-kuei. (1960). A tentative classification of Tai dialects. In S. Diamond (Ed.), Culture in history: Essays in honor of Paul Radin (pp. 951-959).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Li, Fang-kuei. (1977). Handbook of Comparative Tai.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Pittayaporn, Pittayawat. (2007) A chronology-sensitive approach to subgrouping: The case of Southwestern Tai. Paper presented at the 81st Annual Meeting of Linguistics Society of America. Anaheim,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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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앙(naang)"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인용한 표(6행)를 다시 참조. 
중국어에서 아가씨 낭(娘)은 중고한어 시기에 "냥"이라는 발음으로 바뀌었는데, 
서남 타이 언어에는 그 변화가 반영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까 현대 태국어로 인어공주(나앙 응이악)는 "악어 아가씨(娘鱷)"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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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중생 : 양자 악어 이야기 (1) - 핏타야왓 핏타야폰의 3단계 이동 가설 2019-01-29 16:50:12 #

    ... 뱀 같이 생긴 전설 속 수중생물</a>"이라는 뜻으로 와전되었을까요? 그 전에 광시 지역에 있을 때 이미 전설 속 괴물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확실히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직관적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전근대 베트남을 연구하는 리암 켈리는 핏타야왓 핏타야폰의 "3단계 이동 가설"을 바로 그런 식으로 오해해버립니다. "그래서 타이 조어 구사자들이 악어가 없는 광시 지방에 살고 있었을 때, 이들은 옛 중국어 구사자들로부터 악 ... more

덧글

  • 코로나 2019/01/24 22:16 # 답글

    전에 인도네시아 지역 언어에 대한 글을 읽다가 오스트로네시아계 동부 권역에서 사용되는 대양어군(Oceanic)의 공통 조어에는 '식물'을 뜻하는 낱말이 없고, '풀', '덩굴식물', '대나무', '판다누스', '(기타)나무' 등이 동등하게 최상위 분류 항목을 이룬다는 얘길 본 기억이 나네요. 필자도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대나무'와 '판다누스'는 대양어군이 쓰이는 도서 지역 사회에서 이곳저곳에 쓸모가 많아서 저렇게 위신이 높은 것이다, 정도로 추측하더군요.

    지리 조건은 사람들이 언어로 세계를 표상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니까, 그걸 역으로 이용해서 언어의 변천으로 언어 사용 집단의 지리적 조건을 추적할 수 있다니 정말 멋진 착상이에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재밌는 글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D
  • 남중생 2019/01/24 23:24 #

    대양어군이라고 하면, 대만의 아미스 계열 언어가 폴리네시아로 퍼져나간걸 의미하는거죠?
    아마 울창한 숲 같은 복잡한 식물계를 보지 못하고, 아일랜드 호핑을 하면서 퍼져나가면서 제각각의 식물들을 다시 명명하면서 그런게 아닐까 추측하게 되네요.

    유구(오키나와) 고유어에도 식물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던데, 단지 유구열도에 특이한 식물이 많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여기에도 비슷한 이유가 숨어있는건지 궁금해졌습니다! +_+
  • 코로나 2019/01/25 13:37 #

    정확히 어디서 읽은 글인지 기억나질 않아서 문헌을 찾아봤는데 다행히 잘못 인용하진 않았네요. 출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Malcolm Ross, "Linguistic Evidence for Prehistory: Oceanic Examples." in Issues in Austronesian Historical Linguistics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7), 67-101. 정확히는 이 논문에서 Bethwyn Evans의 "Ethnobotanical Classification"(2008)이라는 글을 인용하고 있어요. 전자는 오픈 액세스이니 구글링하면 받아보실 수 있습니당 :p

    음... 포모사계 언어는 사실 제 주 관심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아미스인이 대만 원주민 가운데 현대에 가장 유력한 집단이긴 할 텐데, 아미어나 동부포모사어군 자체의 계통발생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 어떻든 타이완에서 출발해 란위섬, 루손섬 등으로 나아간 사람들이 대양어군의 먼 선조 격 언어를 사용했겠죠? 위에 제가 적은 Malcom Ross 논문에 따르면 필리핀 북부에 이들이 도착한 것이 약 2,000 BCE 전후이고, 불과 몇백 년 만에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군도로 퍼져나갔다가 1,400 BCE 이전에 뉴기니 앞바다 비스마르크 제도에 도달해 여기서 처음으로 300년 간 쭈욱 머물며 라피타(Lapita) 문화를 발달시키면서 대양 조어(Proto-Oceanic)를 형성했다고 하는군요.

    류큐어는 막연히 일본어랑 비슷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신기한 부분이 많나 봐요. 인도차이나 쪽을 주로 파시는 줄 알았는데 오키나와까지 들여다보시고 계셨군요!
  • 남중생 2019/01/25 15:41 #

    중화 문명이 전통적으로 중화가 아닌 공간으로 전파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ㅎㅎ 베트남, 유구는 그런 점에서 취향 저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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