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콜론이 안 달린 논문 제목들 [베트남과 한국]

켈리 교수님의 The Colon-less Titles of Vietnamese Dissertations를 번역합니다.
---------------------------------------------------------------------------------------------------------------------------------

콜론이 안 달린 논문 제목들

미국에서 학술적인 글을 썼을 때 제목에 콜론(:)을 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콜론을 다는 목적은 콜론 앞에 오는 내용과 뒤에 오는 내용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콜론 앞에 오는 내용은 무엇이며 뒤에 오는 내용은 무엇일까?

콜론 뒤에 오는 내용은 책이나 논문의 내용에 대한 직설적인 서술이다. 콜론 앞에 오는 내용은 기존에 학자들이 설명/관찰/이해하지 못한 어떤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고안한 창의적인 표현이다. 


몇 가지 전형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베네딕트 앤더슨의 명저는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이라는 제목이다. 이 책은 무엇에 대해 쓴 책인가? 말그대로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을 담고있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당시로써는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다. "민족"은 원초적인 것이 아니라 근대적이고 결국 "상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전까지 학자들이 인식하지 못한 관점이다. 앤더슨은 이것을 알고, 자신의 주장을 집약한 표현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다른 전형적인 사례로는 제임스 스콧의 "약자의 무기: 농민 저항의 일상적 형태"가 있겠다. 이 책은 무엇에 대해 쓴 책인가? 말그대로 농민 저항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스콧은 "약자"인 농민에게 많은 주체성을 부여하고 농민이 강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일을 더디게 하는 식이다.

스콧이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농민이 이와 같은 전략과 주체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아무도 생각치 못했다. 스콧은 "약자의 무기"라는 표현을 고안해냄으로써 자신이 하려는 큰 주장을 지칭할 수 있는 축약어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후대 학자들이 각자의 연구를 하면서 발견하는 현상을 설명할 표현도 만든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아시아의 공장 노동자들을 연구하는 학자는 노동자가 고용주에 저항하기 위해 기용하는 다양한 "약자의 무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교양있는 독자라면 이 학자가 하려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배후에 있는 큰 개념을 볼 수 있다. 


며칠 전, 최근 베트남에서 통과된 박사학위논문 일람을 보고 있었는데, 논문 제목에 하나같이 콜론이 달려있지 않다는 점에 눈이 갔다. 이 제목들은 논문이 무엇을 다루는지 보여주는 "팩트" 정보 만을 담고있던 것이다. 

이걸 보고 있으니, 필자가 베트남 학자들과 여러 차례 가진 대화가 생각났다. 필자는 베트남 학자들이 "누가 어느 년도에 무엇을 출간했는지"에 대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머리속에 담고있어서 매번 놀란다. 그러나 베트남 학자들은 그 저술에서 "누가 무엇을 주장했는지", "어떤 패러다임을 뒤엎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개가 거시기에 대한 책을 2002년에 출간했다는 식이다. 

그러니까 그 책의 요점은 무엇이었는가? 그 학자의 주장은 무엇이었는가?  Không có ai nói được, bởi vì không có argument gì cả, chỉ có “facts” thôi.
(역주: 아무도 말해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런 주장도 없이 팩트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세계 모든 학자가 미국식(또는 서양식)으로 학술 성과를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상의 공동체"와 "약자의 무기" 같은 개념이 진정으로 학술연구를 진보하게 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앤더슨과 스콧과 같은 학자들이 세계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다른 학자들도 자신들의 연구 관점을 다시 생각하게끔 자극을 받는 것이다.

필자는 모든 학자들이 모든 학술 성과를 내놓을 때마다 이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통찰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없다면 왜 글을 쓰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콜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로써 베트남 학자들은 콜론 뒤에 오는 학문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문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콜론 앞에 놓을 수 있는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

한 학위논문에 대한 서평을 보면, 이렇게 써있다. "Luận án được đánh giá là có một số đóng góp về mặt lí luận và thực tiễn. . ." (역주: 본 논문은 이론과 실제에 있어 몇 가지 공헌을 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것과 아마존에서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소개하는 글을 비교해보자. "베네딕트 앤더슨이 쓴 민족주의에 대한 명저, 상상의 공동체는 1983년에 처음 출간되자마자 새로운 학문 분야를 창조해냈다."

이것은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겠으나, 몇 년씩 들여서 "몇가지 공헌" 밖에 못하는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을까? 모든 학자의 저술은 "거대한 공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학자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창조"하는 "명저"를 내야한다. 

여기에는 문화적인 것도 있다. 위의 베트남어 문장은 일종의 "학술적 겸손"이 어느 정도 작용해서 그렇게 쓴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학문 발전에 해로울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선배를 비판하는 것이 지양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예 연구자가 "몇가지 공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거대한 공헌"을 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그건 선배들이 이미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터무니 없고 해로운 시각이다. 선배들이 해놓은 연구의 혜택을 받는 것은 모든 학자가 그렇지만, 선배들의 학술성과를 능가하고 뒤엎는 것도 이들이 해야할 일이다. 

지금 세대의 학자들이 선배 학자들에 비해 앞으로 멀리 나아갈 수 없다면, 더 이상 학술활동이란 것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실상, 젊은 학자들은 선배들에 비해 멀리 갈 수 있고 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콜론 앞에 놓을 수 있는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개념을 제시해도 인정받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 

P.S.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한국, 베트남, 지역학"도 참조.
베네딕트 앤더슨이 등장하는 벨기에가 필리핀을 지배했다면?도 참조.


핑백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