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불고기 로드 3편] 19세기 조선의 피클드 헤링과 "가짜" 불고기!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지난 글, 불고기 로드 1편에서 아래 내용을 읽고, 정말 불+고기, 火+肉는 없는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원로 국어학자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논문 <‘불고기’ 이야기>(2006)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이 논문에서 “‘불고기’는 옛 문헌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블火’과 ‘고기肉’는 한글 창제 초기와 그 뒤의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으나 이들의 복합어인 ‘블고기’, ‘불고기’는 중세어, 근대어의 어느 문헌에서도 볼 수가 없다. 19세기 말엽에 간행된 ‘한불사전’과 ‘한영사전’에서도 심지어는 1938년에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에서도 ‘불고기’라는 표제어는 볼 수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불고기’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된 것은 1950년에 발행된 한글학회의 ‘큰사전’이 처음이다.


다행히도, 2006년에는 활성화되지 않았던 사료 데이터베이스가 우리에게는 있죠. 



두근두근...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19세기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인사편-용기류, 주각빙주(廚閣氷廚) 변증설 中

[이상생략]
                                                                                                  
"화한삼재도회"의 "생선 식해(魚醋)" 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남만지(南蠻漬) 만드는 법. 식초(醋酒) 따위를 한번 끓인다. 구운 소금을 조금만 넣고 병을 가득 채운다. 얇게 저민 날생선을 병 안에 넣는다. 하루 낮과 밤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존맛탱이다. (한번 피클드 헤링을 만든 병에) 두번째 넣어도 맛있다. 아무리 날이 더워도 5~7일을 상하지 않는다. 회를 대신하는 좋은 방법이다.

가짜 화육(假火肉) 만드는 법. 날고기에 소금을 문질러 스며들게 한 뒤 종이를 2,3겹으로 잘 감싼다. 식은 아궁이 잿더미 속에 넣는다. 1, 2일이 지난 뒤 꺼내 먹는다. 화육(火肉)이나 다를 바 없다. 불에 쪼인 고기에 콩기름(豆油)을 바르면 파리가 안 꼬인다.

《和漢三才圖會ㆍ魚醢》。 南蠻漬法。醋酒等分一沸。入燒鹽少許盛甄。以鮮魚肉䐑入其中。經一晝夜。味極美。復次加入亦佳。雖極暑。五七日不餒。以代膾良方。
假火肉
法。鮮肉將盬擦透將紙二三層包好。入冷竈灰內。過一二日而取出食。與火肉無二。曬火肉。以豆油抹之。不引蠅子。

[이하생략]

오오! 가짜 火肉이 있다면 진짜 火肉도 있다는거겠죠?
하지만, 여기서 잠깐.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여러 문헌을 인용한 백과사전이고, 저 붉은색으로 표시한 "가짜 화육 만드는 법" 부분도 역시 앞선 문헌에서 인용한 문구입니다. 

그리고 그 문헌은 바로...



고금비원(古今秘苑)이라는 청나라 책입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이 책을 18번이나 인용한다고 하네요. (아마 이규경의 할아버지 이덕무 씨가 연경에서 가져왔거나 그랬겠죠?ㅋㅋ)

그러니까 이건 "불고기"가 아니라 중국 음식 "화육"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화육(火肉, 훠로우)"은 중국식 햄이라고 합니다. 소금에 절인 다음에 아궁이 속에서 훈제한다는 설명에서도 알 수 있죠.



현재 고전DB에 검색되는 화육(火肉)이라는 단어의 용례는 고금비원의 해당 구절을 인용한 오주연문산전산고의 기록이 전부입니다. 또, 농정회요(農政會要)라는 책에 화육(훠로우)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는데, 이 책은 이규경의 좋은 친구 최한기가 쓴 책입니다.ㅎㅎ

그리고 여기서 잠정적으로 추측을 해보자면 조선시대에 불고기를 의미하는 단어로 火肉이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은 이유는 바로 옆나라 중국에서 "햄"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일제시대보다 이른 시기부터 "불고기"라는 표현이 있었음에도 "炙, 炙肉" 등으로만 꾸준히 표기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이 아쉽다기 보다는, 19세기 조선의 식탁이 얼마나 다국적일 수 있는지... 여기에 감탄하고 싶습니다.

중국식 햄과 네덜란드인의 피클드 헤링을 (중국의 백과사전, 삼재도회를 모방한) 시마데라 료안의 화한삼재도회를 통해서, 19세기 조선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통해 읽을 수 있다니!

네, 그리고 주각빙주변증설 항목에는 누가 뭐랄까봐 카스테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뭐, 가수저라는 너무 흔한 먹거리라서 별로 신기할 것도 없잖아요?

▲난반즈케


그나저나 화한삼재도회의  "남만지"라는 요리 말이죠. 비록 한자로는 南蠻漬지만 지금 일본의 "난반즈케"(생선튀김에 초절임을 얹어먹는 요리)보다는 이웃 블로거 적륜 님이 즐겨드시는 피클드 헤링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만드는 방법은 헤링을 잘 손질해서 소금과 설탕을 탄 물에 담궈뒀다가 (이것을 큐어링 curing이라고 합니다) 훈연기에서 훈연을 한 다음 식초 소스에 담궈 병에 담는 것으로 끝입니다. 참 쉽죠?!"

아마 "불고기"도 이것과 비슷한 이름 따로~ 재료 따로~의 계보를 거쳐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18세기 조선의 벙거짓골/전골 요리가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부에서는 간장 양념 석쇠구이 "불고기"가 되고, 기존의 "전골 요리"는 별개의 국물요리로 발달하고, 서울로 내려온 불고기는 평양에 두고 온 친척과는 별개로 (아마도 일제시대에) 다시 국물이 자박자박한 스키야키류의 음식이 되어버린게 아닐까요?


이름 따로, 재료 따로, 조리법 따로...

마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족"과 "재일조선인"을 보는 것 같아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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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9/01/20 13:43 # 답글

    오오 재밌습니다. 햄까지 알고 있었다니~!
  • 남중생 2019/01/20 17:08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Ddd 2019/01/20 23:53 # 삭제 답글

    생선/고기를 설탕+소금물에 담그는것은 엄밀히 말하지면 curing이 아닙니다. Curing은 고기를 설탕이나 소금따위에 절여서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고기를 물에 담그면 수분이 안없어지죠.
    https://en.m.wikipedia.org/wiki/Curing_(food_preservation)
  • 남중생 2019/01/21 00:30 #

    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방문해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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