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불고기 로드 2편] 조선시대 의학 이론과 "구박"받는 불고기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 이번 글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불고기"라는 말의 용례를 추적하는 포스팅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먹는 불고기의 요리형태를 다루지 않는 글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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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자세히 보니 키니쿠...


 
이 글에서 18세기 후반, 홍역에 걸린 세자에게 약처방을 잘못 한 의원을 탄핵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살펴보았지요.


"비록 어리석은 아녀자라도 감히 감장(甘醬)이나 우육(牛肉)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삼(蔘)이나 부자()이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 1786년, 6월 1일 기사)

열병이니 홍역에 뜨거운 성질을 가진 인삼과 부자를 처방한 것이 잘못이라면서, "어리석은 아녀자는 감장(단 간장)과 소고기도 가까이 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장과 우육으로 만드는 요리가 인삼이나 부자를 능가할 정도로 뜨거운 성질을 연상시킬 만한 음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불고기"라는 음식 이름이 바로 이런 뜨거운 성질을 연상시킨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1786년에 "불고기"라는 표현이 이미 널리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한편으로는, 과연 불고기가 당시 의학 이론 상으로 뜨거운 성질을 가진 음식이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또 찾아보았습니다.

고기의 의학적 성질!!


조선 전기의 야담집 필원잡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이사철(1405~1456)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필원잡기는 1486년에 간행되었으니, 거의 동시대의 이야기로군요.
 
○ 문안공(文安公) 이사철(李思哲)은 몸집이 커서 음식을 남보다 유달리 많이 먹었는데, 항상 큰 그릇의 밥 한 그릇과 찐 닭 두 마리와 술 한 병을 먹었다. 등에 종기가 나서 거의 죽게 되었는데, 의원이 불고기(炙肉)와 독주(毒酒)를 금해야 한다고 말하니, 공이 말하기를, “먹지 아니하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먹고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면서 여전히 술을 마시고 불고기()를 먹어도 마침내 병이 나으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귀를 누리는 사람은 음식 먹는 것도 보통사람과 다르다.” 하였다.

李文安公思哲體質豐大。飮食過人。每食一大器飯二蒸鷄一壺酒。患背腫臨絶。醫云宜忌炙肉毒酒。公曰與其不食而生。毋寧食之而死乎。飮酒啗炙如常。卒獲平善。人皆曰享富貴者。飮食亦異於常矣。


오... 그러니까 몸에 열/염증을 일으키는 증상에 불고기(炙肉, 적육)는 해롭다는 인식이 1400년대에 이미 있던겁니다. 
그냥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고 "구운" 고기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문 의사도 그렇게 말하고, 서거정과 같은 지식인이 보기에도 타당하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고기를 먹고도 병이 낫는게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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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심 님이 과거에 소개하신 필원잡기 기록

특히 필원잡기에 등장하는 경주부의 빛나는 구슬 이야기는 여러 블로거 분들께서 다뤄주셨습니다.
이선생 님의 빛의 구슬(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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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야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선 전기에도 먹었을 일반적인 고기구이를 의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저 적육(炙肉)이라는 한자 표현만으로는 오히려 의원이 구이류는 전부 안 된다는 뜻으로 말했을 가능성이 높죠.

그러니까 고기구이 --> 뜨거운 성질 --> 먹으면 노노 인겁니다. 

딱 "불고기"라는 요리명으로 좁혀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네요...


그렇다면, 야담집 말고 실제 의서(醫書)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술과 불고기"라는 조합은 피해야 할 음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됩니다.

특히 몸에 열이 나서, 몸이 건조해서 생기는 병일 때 그렇습니다.

다만 의서에는 "지지고 구운 음식" 전반을 가리키는 구박(灸煿)이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불고기(구육灸肉, 또는 적육炙肉)에 해당하는 표현은 드물고요. 


1. 조선 중기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다음과 같은 유행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소변은 꿀처럼 달고"라는 표현에서 예상하셨겠지만... 네, 당뇨병을 경계하는 노래입니다.

歌曰, 消渴消中消腎病, 三焦五藏生虛熱, 惟有膀胱冷似氷, 意中飮水無休歇, 小便晝夜不流通, 骨冷皮焦心肺裂, 本因飮酒炙煿多, 酒餘色慾勞無節, 飮水喫食日加增, 肌肉精髓轉枯竭, 漩甛如蜜滑如油, 口苦咽乾舌如血, 三消病狀最爲危, 有此仙方眞妙訣. 
노래에, "소갈ㆍ소중ㆍ소신병은 삼초와 오장에 허열이 나는 것이고, 오직 방광만은 얼음처럼 싸늘하다. 물 생각이 쉴새없이 나고 밤낮으로 소변은 나오지 않으며, 뼈는 차고 피부는 타며, 심폐는 찢어진다. 술 마시고 구운 음식(炙煿) 많이 먹고, 술 먹은 뒤 성생활을 하니 절제가 없다. 마시고 먹는 것이 날로 늘어나도 기육과 정수는 도리어 말라간다. 소변은 꿀처럼 달고, 입은 쓰고 목은 마르며, 혀는 피처럼 붉다. 삼소의 증상 제일 위급하니 이 선방은 진실로 묘결이다"라고 하였다.


2. 허준과 동시대에 활동한 의사 양예수의 의림촬요에서도 삼소문(위에서 말하는 소갈, 소중, 소신병)에 대해 비슷한 금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삼소36 〔三消門 三十六〕 
대기(大忌 크게 꺼리는 일)
음주(飮酒), 성교(性交)〔房事〕, 기름진 음식과 밀가루〔麵〕 음식, 달이거나 볶거나 굽거나 말린 음식[煎炒灸煿], 술지게미〔糟藏〕ㆍ짠 음식〔醎物〕ㆍ뜨거운 음식ㆍ오신(五辛).

3. 같은 책, 8권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습니다.  

"이 병의 원인은 모두 기름진 음식과 습열을 돕는 소주(燒酒), 불고기(灸肉) 등을 먹었기 때문인데, 이들이 몰리면 담(痰)이 생기고 담은 비토(脾土)의 기능을 방해한다." 

原其病由, 皆膏梁之味, 濕熱之物, 燒酒灸肉, 鬱遏成痰, 以致脾土受害.  


[중간 결론]

그러니까 술과 구운 요리(炙煿, 灸肉) 그리고 성행위 등은 모두 몸에 열을 높인다는 건데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앞서 제시한 상소문의 (감장+소고기 = 뜨거운 성질)이라는 언급에서 "불고기"라는 표현을 유추해내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미 당시에 난로회나 전골 요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감장+소고기 구이요리가 있었기 때문에, "불고기"라고 불리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어리석은 아녀자가 꺼리는 뜨거운 성질의 요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아있거든요!
이건 다음 글에 이어서 쓰겠습니다.ㅎㅎㅎㅎ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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