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벨테브레이는 마르코 폴로를 읽었을까? - I want to Believe (4) 용틀임하는 동아시아 근세



"..., wij siende dat dese luijden seer nieuwschierig ende om wat vreemts te hooren seer genegen waren, 't beedelen aldaer geen schande is, ...." (Verhaal van het vergaan van het jacht de Sperwer, Hendrik Hamel, 1657년 11월 항목 중에서)

우리는 이 나라 사람들이 호기심이 매우 많고 이국적인 것을 기꺼이 듣고 싶어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구걸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번역 유동익, 하멜보고서, 중앙 M&B, 2003)


오랜만에 이 주제로 글을 써봅니다!

저는 과거 포스팅에서 19세기 야담집(동야휘집, 청구야담)에 등장하는 "박 화포장"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쓴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박 포장은 외딴 섬에서 거대한 뱀을 죽여 부자가 되는데, 17세기 야담집인 천예록에도 (박 화포장이라는 이름만 없이) 굉장히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최근 글에서는 어쩌면 박 포장은 17세기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였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한편, 적륜 님께서는 벨테브레이와 겹치는 시기에 조선에 표착해서 생활하던 하멜 일행이 이야기꾼으로 돈을 벌었다는 기록을 소개하신 적이 있지요.

그런데 기록을 곰곰히 읽어보면 그냥 각설이마냥 유리걸식을 한 게 아니라, 하멜 일행들이 긴 겨울을 넘기기 위해 조선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이국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으며, 이런 이야기의 값을 치뤄주었다는데 착안을 했다는 것입니다.

강진의 사람들은 도대체 이들 네덜란드인들을 불러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요? 깊고 긴 겨울밤 사랑채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코가 튼 홍모인들이 앉아서 어눌한 조선말로 멀고 먼 바다 너머 암스테르담의 도시와 인도의 바다와 아프리카의 금빛 해변과 니우암스테르담의 깊은 숲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저고리를 입은 조선 사람들이 추임새를 넣어가며 듣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봅니다.




저는 박포장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앞 부분의 기이한 술버릇 이야기와 뒷 부분의 표류담 및 거대뱀 기담이 전체 이야기 속에서 따로 논다는 점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앞에서 한 이야기가 복선이 된다던가, 표류담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능력이라던가 하지를 않거든요...


두 부분은 사실 서로 갖다 붙인 것 마냥 단절되어있죠. 
어마어마한 술을 들이켰다가 토해낼 수 있다는 능력을 이용해, 표류된 섬에서 바닷물을 삼킨채로 탈출했다가 토해낸다던가 하는 식의 연결이 전혀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단순히 희망사항이기는 하지만... 혹시 뒤에 나오는 표류담이 "박 포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도 하멜 일행처럼 조선사람들에게 이국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요?

물론입니다!
朴淵南蠻人, 崇禎戊辰漂至耽羅。 淵不識字。 以蠻語稱其姓名曰朴淵。 淵在國, 有善占候者言, 某日風, 某日雨, 其驗甚神。 航海者準之, 淵不遵其指, 遇颶而漂云。 爲人卓犖, 每言善禍福曰, 毋庸汲汲, 天報之矣。 其言類有道者。 談土風曰, 地緩, 無霜雪, 每天陰而思露, 老人言, 此中國雪下之日也。 國法, 者無輕重皆死, 由是, 國無賊。 日本琉球安南之國, 皆淵所行貨者, 亦嘗遊小人國。

박연은 남만인(南蠻人)이다. 숭정(崇禎) 무진년에 탐라에 표류하여 이르렀다. 연은 글자를 알지 못한다. 만어(蠻語, 네덜란드어)로써 그 성명을 칭하였는데, 박연이라 했다. 연이 자기 나라에 있었을 때, 날씨를 잘 알아맞히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하였는데, 어느 날 바람이 불고 어느 날 비가 내리는지 그 점괘가 심히 불가사의하다. 항해자들은 이것을 지켰었는데, ()은 그 지표를 좇지 않았기 때문에 폭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인이 뛰어나 매번 선악화복을 언급해 말하기를, “급급(汲汲)할 것이 없으니, 하늘이 갚아 줄 것이다.”고 하였다. 그의 말은 도를 깨우친 사람과 비슷했다. 토풍(土風)을 말하여 이르기를, “그 곳은 따뜻하고, 서리와 눈이 없고, 매번 날이 흐려 이슬이 내릴 것으로 생각되면, 노인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중국에서 눈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국법은 도둑질하는 자를 죄의 경중을 묻지 않고 모두 죽이며, 이 때문에 나라엔 도적이 없다. 일본, 유구(琉球), 안남(安南)의 나라는 모두 연()이 화물을 가지고 다닌 곳이며, 또한 일찍이 소인국(小人國)에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오우, 소인국! @@

표류 좀 해본 놈인가?


본론으로 들어가서, 박포장과 거대뱀 이야기를 얼핏 보았을 때 이것이 네덜란드인이 들려줄 만한 "이국적인" 이야기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한국적인 민담 같기도 하고요...


박포장은 고도에서 혼자 풀로 움막을 얽어 비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조개*소라를 줍고 청개구리*메뚜기를 잡아서 배를 채우며 지냈다. 염라 대왕 외손자라도 꼼짝없이 절해 고도의 마른 뼉다귀가 되겠구나 싶었다.

항상 밤에 잠을 못이루고 귀를 기울여 듣노라면, 매일 새벽 바람소리가 섬으로부터 산을 흔들며 언덕을 스쳐 바다로 나갔다가 해가 지면 소리가 바다로부터 물결을 일으키며 섬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아주 이상히 여겨 그때를 타서 나무숲에 몸을 숨기고 엿보았더니, 한 마리 엄청나게 큰 구렁이였다. 대들보 같은 몸체에 길이가 몇 백자나 될지 꿈틀꿈틀하는 괴물이 눈깔을 이글이글 번득이며 굴 속에서 기어나와 곰*사슴*멧돼지 등을 잡아삼키고 바다로 들어가서 고기류*거북류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가. 괴물이 다니는 길로 도랑이 나서 족히 배를 용납할 지경이다.
박포장은 칼을 예리하게 갈아서 괴물이 다니는 길목 곳곳에 날을 위로 하여 묻어두고, 주변의 대숲을 전부 베고 밑둥을 뾰쪽이 깎아놓았다.

황혼에 괴물이 바다로부터 나와 그곳을 통과하다가 주둥이에서 꼬리까지 칼날에 찢어지고 대끝에 찔려서 주기(珠璣)[6]*낭간(琅)[7]*화제(火齊)[8] 등속이 쏟아져나와 골짜기에 흩어졌다.
[6] 구슬의 일종
[7] 암록색 내지 청벽색을 내는 아름다운 돌
[8] 구슬의 일종

(박포장 이야기 전문은 여기 참조.)


그런데 제가 최근에 발견한 또다른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마르코폴로의 여행기, 동방견문록에 등장하는 이야기인데요...

음, 백문이불여일견! 한 번 읽어보시죠. 



119장 - 여기서 그는 다시 카라잔 지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야치시를 떠나서 서쪽으로 열흘 거리를 가면 카라잔 지방에 당도하게 되는데, 이 왕국의 수도 역시 카라잔이라고 불린다. 주민들은 우상숭배자이며 대카안에게 예속되어 있다. 대카안의 아들인 코가친(Cogacin)이 그곳의 왕이다. 이 지방의 강과 호수에서는 사금이 나며, 산에서는 사금보다 더 큰 금이 산출된다. 여러분에게 말하건대 얼마나 많은 금이 나오는지 금 1사기오를 은 6사기오와 바꿀 정도이다. 이 지방에서도 앞서 애기한 자패를 화폐로 사용하는데, 이 자패들은 그 지방에서 나지 않기 때문에 인도에서 운반돼오는 것이다.

이 지방에는 매우 큰 구렁이가 있는데, 이 뱀이 얼마나 큰지 보는 사람마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이며 생긴 것도 아주 징그럽다. 그것이 얼마나 크고 굵은지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겠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어떤 것은 길이가 10보나 되며 둘레가 10뼘이나 될 정도로 굵은데 그 정도면 가장 큰 것이다. 머리에 가까운 앞부분는 두 개의 다리가 있는데, 거기에 발은 달려 있지 않고 다만 매나 사자의 발톱과 같은 것이 하나 있을 뿐이다.

머리 역시 굉장히 크고 눈은 빵덩어리보다 더 크며, 입 또한 얼마나 큰지 단번에 사람을 삼킬 정도이다. 이빨도 매우 크다. 이처럼 끔찍하고도 크고 무섭게 생겼기 때문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두려워한다. 그러나 길이가 8보, 혹은 6보나 5보 정도 되는 작은 것들도 있다.

사람들은 이 뱀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포획한다. 여러분은 그것들이 낮에는 너무 더워서 땅 밑에 머물러 있다가 밤이 되면 밖으로 나와 먹이를 사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따라잡을 수 있는 동물이라면 무엇이든 잡아먹고, 강이나 호수나 샘물로 들어가서 물을 마시기도 한다. 이것들은 얼마나 크고 무겁고 또 얼마나 단단한지, 이것들이 먹거나 마시기 위해 밤중에 모래톱 위를 쓸고 지나가면, 모래 위에는 마치 포도주가 가득 찬 술통이 굴러간 것처럼 커다란 고랑이 생긴다. 사냥꾼들은 그 구렁이들을 잡기 위해 이놈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을 봐두었다가 그곳에 덫을 놓는다. 그들은 굉장히 굵고 강한 나무말뚝을을 땅에, 즉 구렁이가 지나가는 곳에 박고, 그 말뚝 위에 면도칼이나 창끝처럼 생긴 쇠로 만든 칼을 한 뼘 정도 솟아나오게 고정시켜 놓는다. 그리고는 구렁이가 보지 못하도록 그것을 모래로 덮어둔다. 사냥꾼들은 그런 쇠칼이 달린 말뚝을 여러 곳에 설치해둔다. 이 구렁이, 아니 이 뱀이 쇠칼이 설치된 길 한가운데로 내려오면, 그것이 얼마나 강한 힘으로 지나가는지 쇠칼이 가슴에서 시작해서 배꼽이 있는 곳까지 찢고 내려가 구렁이는 즉사하고 만다. 이런 방식으로 사냥꾼은 그것을 잡느다. 

그것을 잡으면 배꼽을 통해 담즙을 꺼내서 비싼 값에 판다. 여러분은 그것으로 놀라운 약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미친 개에게 물린 사람에게 그것을 작은 1디나르 무게 정도로 조금만 주어 마시게 해도 즉석에서 치유된다. 또 여자들이 출산을 하지 못하고 고통으로 비명을 지를 때에도 그 뱀의 담즙을 조금만 마시면 마시는 즉시 아이를 낳는다. 세번째 효험은 사람 몸에 는 어떤 종양이든 이 담즙을 조금만 바르면 며칠 안으로 치료된다는 것이다. 지금 설명한 이런 까닭으로 이 큰 뱀의 담즙은 그 지방에서 매우 귀한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이 뱀은 고기 맛이 좋아서 사람들이 즐겨 먹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 여러분에게 또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뱀이 사자나 곰이나 다른 맹수들이 새끼를 낳는 곳으로 가서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잡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먹어치운다는 사실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김호동 역, 320-323쪽)


이 "뱀을 사냥하는 방식"도 유사하지만 "곰"을 잡아먹는다는 띠용(!)한 구절까지 일치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동방견문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신비로운 동방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전근대 유럽인들이라면 누구나 읽은 베스트셀러였지요.

물론, 저는 여전히 이와 비슷한 거대뱀 이야기가 마르코 폴로와는 무관하게 조선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을 염두에는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강진의 사람들은 도대체 이들 네덜란드인들을 불러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요? 깊고 긴 겨울밤 사랑채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코가 튼 홍모인들이 앉아서 어눌한 조선말로 멀고 먼 바다 너머 암스테르담의 도시와 인도의 바다와 아프리카의 금빛 해변과 니우암스테르담의 깊은 숲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저고리를 입은 조선 사람들이 추임새를 넣어가며 듣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봅니다.


벨테브레이 혹은 하멜 일행이 조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여행담을 이야기하다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이야기도 섞어서 들려주는 것이지요.ㅎㅎ

"동양의 신비"를 조선인에게 역수출하는 네덜란드인들...


그리하여, 이번에도 뇌피셜 가득한 남중생 블로그였습니다!

적륜 님 글을 업어오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하였으니, 마무리도 그렇게 지어보렵니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조선을 집으로 삼은 박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가 기록을 남겼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개인적으로 박연의 이야기가 연구와 더불어 영화같은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의 일생이 유명한 하멜보다 실은 휠씬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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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박연이 자신의 고향에 대해서 묘사하기를 "그 곳은 따뜻하고, 서리와 눈이 없고, 매번 날이 흐려 이슬이 내릴 것으로 생각되면, 노인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중국에서 눈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인"과는 다른 "바타비아인"의 독자적 정체성을 일부 VOC 사람들은 갖고 있던게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글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연경재전집 기록에 보면, 박연은 기골이 장대하고 추운 날씨에도 솜옷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의 강건함은 어디 가지 않는 것인가요...

17세기 동아시아에서 흔들리는 "유럽인"의 아이덴티티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의 이전 글 참조.
동아시아인들이 보기에 추위에 강한 네덜란드인에 대해서는 타치바나 난케이의 서유기에서 해당 기사 참조.


P.S. 2 
동방견문록의 저건 뱀이 아닌거 같은데... 하시는 눈썰미 좋으신 분들!
거기에 대해서도 다음 글에서 적어보겠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덧글

  • 진냥 2019/01/11 11:08 # 답글

    이야기가 바꾸는 역사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얼마 전에 [해상 실크로드 사전]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네덜란드의 상선 라프데 호가 이런저런 고난으로 표류해 일본에 도착해 해체된 와중 이 배의 선수상이었던 에라스뮈스 상이 일본 절에 흘러들어가 화적관음으로 숭배받았대요. 관음으로 숭배받은 에라스뮈스, 조선인 화포장이 된 벨테브레이... 해상무역에 열 올린 만큼 네덜란드 사람들(?)의 운명 중에는 진짜 신기한 일화가 많은 듯합니다!
  • 남중생 2019/01/11 12:26 #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인거죠 ㅎㅎ
    플라잉 더치맨!
    그나저나 네덜란드인이 관음으로 숭배받은 이야기는 저도 찾아봐야겠습니다! 꽤나 큰 발견인데요?
  • 迪倫 2019/01/14 08:44 # 답글

    오오오! 재미있습니다. 좀더 찾아봐야겠습니다.
  • 남중생 2019/01/14 10:27 #

    오오오오! 적륜 님이 재미있어하신다니 제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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