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중국에는 중세시대가 없다? (pp. 91 - 92) 雜同散異 Superfluous Things

Craig Clunas 교수님의 Superflous Things(1991년 초판, 2004년 재판)을 초역합니다.
과거에 번역한 물건보다 사람이 먼저 품평의 대상이었다 (pp. 89-90)에서 3장이 끝나고 난 뒤, 4장의 도입부(pp. 91-92)입니다.

▲1570년대에 그린 스톤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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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옛 물건

명대 물질 문화에서는 과거의 유물을 어떤 용도로 썼는가

만사에 있어 "옛 시절"을 숭앙하고 공경하는 것이 바로 중국 문화의 기본 구성물질이라는 생각은 오늘날에도 팽배해있다. 이와 같은 생각은 헤겔이 "역사철학 강의"에서 (최초로 한 표현이 아니라면, 가장 강력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적 사회(Asiatic Society)'를 말한 것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이 시각은 지난 200년 간 중국을 둘러싼 오리엔탈리즘 담론의 핵심 부분으로 발전해왔다. 그리하여 1976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펴낸 논문집에서는 '기본적인 가정으로... 전통 중국 문화의 지적활동과 창작활동에서 가장 특징적인 방식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과거와의 상호작용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창성, 창조성, 정통성'과 같이 서양적 가치가 담긴 개념들을 중국의 맥락에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핵심 문제로 제시한 것이었다. "옛것을 추구한 문징명: 명대 화가 문징명과 중국의 고대(In Pursuit of Antiquity or Wen Chengming: The Ming Artist and Antiquity)"와 같은 제목은 중국의 다양한 문화 생산 활동에서 과거와의 상호작용이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결정적인 요소였다는 관점을 크게 강화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데이비드 로웬덜의 "과거는 낯선 나라다(The Past is a Foreign Country)"가 울린 경종에 대한 반응으로, 중세 이후 서양 세계의 문화 활동에 대한 상당량의 연구가 나왔는데, 과거와의 상호작용은 모든 사회에서 지적활동과 창작활동을 하는 하나의 특징적인 방식이라는 결론을 이들 연구가 가리키고 있다. 혹은 적어도 시간을 구조화하는 방식에서 '과거'라는 개념을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그러하다고 한다. '지난 세기의 문화와 근본적 단절'이라는 의미의 '르네상스'라는 개념 자체에 회의를 보이는 방향으로 다량의 뛰어난 학술성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바로는 근세 유럽 지식인층은 당대 남아있는 그리스 로마 시대 문헌/물질 사료에 매료되었고, 권위를 느꼈으며, 이는 중국 지식인층에서 '상고시대'의 권위를 높이 산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은 역동적인 '부활'로 보면서, 동시대 중국 수저우에서 일어난 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여긴 나머지 '독창성, 창조성, 정통성'과 같은 개념을 대대적으로 재정의해야할 정도라고 보는데에 부여할 수 있는 정당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여기서 필자의 의도는 서양과 중국이 과거와 상호작용한 양상에는 별다른 차이를 찾아볼 수 없으며 단지 과거와 상호작용이 갖는 구조 상의 중요성이 대체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차이점도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플라비오 비온도(Flavio Biondo)가 중간 시대(medias aetas)라는 개념을 고안한 1430년대 이래로 유럽 식자층이 인식한 바와 같은 '고대'와 '현대' 사이의 간극이 중국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결국 이 차이점에서 헤겔 철학의 입장이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여기서 요점은 로마 제국과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사이에 낀 '중간 시대'가 실재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주요 사상가들이 그 실재를 믿었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럽에서는 구세주 강림이라는 사건이 현재와 고대 사이의 결정적인 구분선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한나라 시대(220 BC - AD 200)와 명나라 시대의 중국 사이에도 유럽만큼이나 여러 차례의 사회/문화적 근본적 분기점이 일어났을 수 있겠으나, 집권층의 대다수가 느끼기에는 자신들이 일관된 문화 전통의 보유자라는 것을 끊을 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로마시대 유적도 없고, 중세시대 성채도 없는 중국에는 대규모 물질적 증거가 고대의 실체를 증언해주지 않았다는 점이 어쩌면, 과거가 지금과 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사람들의 시야에서 지워냄으로써, 연속성이라는 감각을 강화하는데 일조했을 수도 있다.

원문: Craig Clunas, Superfluous Things: Material Culture and Social Status in Early Modern China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4), 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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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년대에 그린 스톤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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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블랙하트 2019/01/09 09:54 # 답글

    1570년대의 스톤헨지는 지금의 모습과 별 차이 없는데 (그 사이 한두개 무너지지 않았나 싶지만...) 1440년대에는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걸 보면 그 후 붕괴라도 있었던 모양이군요. 아니면 1440년대의 스톤헨지 묘사가 사실과 다르거나...
  • 남중생 2019/01/09 15:07 #

    오, 그런 점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예리한 추측 감사드립니다.
    저는 말씀하신대로 130년 사이에 사실주의적인 화법이 더 발달한 것일 가능성을 우선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 나인테일 2019/01/09 16:39 #

    '혹시 처음부터 부서진 모양으로 만들어진 설치예술일까' 라는 발상은 하지 않았을테니 돌무더기를 기초로 건재하던 시절의 모습을 저렇게 상상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진 않습니다.
  • 남중생 2019/01/09 16:41 #

    그렇죠. 조금 더 옛날 그림에서는 (신화 속 거인들이 멀린의 지령을 받고) 스톤헨지를 짓고있는 모습을 그리기도 하니까, 분명 쇠락하기 이전의 완성된 모습도 충분히 상상했으리라 생각합니다.
  • Fedaykin 2019/01/09 13:48 # 답글

    서양사람들이 느끼는 고대 로마와 동양사람들이 느끼는 요순시대의 차이는 그리스 조각상 같은 물질 유물의 차이일까요? 요순시절엔~~ 운운하는게 심심치 않게 나오던걸 보면 어느정도의 단절감은 느꼈을거같은데 서양 만큼은 아닌것이라...흐음.
  • 남중생 2019/01/09 15:11 #

    저도 저 가설이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소개해보았습니다.
    콜로세움과 개선문이 뻔히 서있으면, "아아, 저건 로-마다"하게 된다는 건데...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이나 청동기 시대 유물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지는 않았던걸까요?

    아마 만리장성은 진나라 때도 쌓았고 명나라 때까지도 열심히 쌓았으니, 예나 지금이나 쌓는거 계속 쌓자...했을 수도 있겠지만,
    상나라/주나라 청동기는 중국 문명이라는 느낌이 안 들 정도로 이질적인 디자인이 팍팍 눈에 띄는데 말이죠^^
  • 나인테일 2019/01/09 16:40 # 답글

    유럽엔 예수라는 기점이 있었다면 중국에는 사상적 기점인 주나라와 정치적 기점인 시황제가 있지요. 기점이 없다고 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 남중생 2019/01/09 16:50 #

    클루나스 교수가 말하는 기점이란, 그 이후로 큰 변화가 일었다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전과 이후로 나뉘느냐에 초점을 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진시황의 통치를 후대 중국인들도 분명히 대단한 기점으로 생각하고 진시황의 "옥새"에 어마어마한 상징적인 의미를 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점을 0년으로 따지고 앞뒤로 계산하는 달력을 만들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더러 진시황의 옥새를 되찾으면 새 연호를 지정하는 정도였죠.
    (http://inuitshut.egloos.com/1932258)

    유럽인들에게 "로마"는 "주나라"처럼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졌지만, "로마" 그 자체로 전후를 따지는 분기가 되었다기보다도 그 시대 중에 일어난 기독 강림이라는 단일 사건의 시사성이 워낙 크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이 해석에 완전히 수긍이 가지는 않습니다... 어딘가 미심쩍어요.ㅎㅎ
  • 이탁 2019/01/14 18:37 # 답글

    르네상스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맹마냥 추앙한 걸 생각하면 헤겔로 대표되는 관점은 다소 당황스러운 말이죠. 유학에서 요순 시대는 루소의 자연상태에 비견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속성'이란 추단은 '분절성'에 주목한 것만큼 여전히 서구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두 개념은 선형적 세계관이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남중생 2019/01/17 04:29 #

    음, 그럴까요?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고대 시대의 "재발견" = 르네상스를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실재한 고대"와 "재발견" 사이의 간극을 뭐라고 이름붙여야 하니까, "중간 시대"가 생긴다는 해석이고요.

    그러니, "중세에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추앙해온 연속성이 있지 않느냐?"라는 비판이 더 적절하겠죠.

    루소의 자연 상태는 신대륙 "발견"과 함께 미대륙 선주민을 본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 것이라고 학자들이 해석하는데, 중국의 요순시대에 대한 개념은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고 알고있습니다.

    다만 중화권에도 분명 비슷한 현상은 있었습니다. 근세 베트남이 인근 산악 민족을 보고 자신들의 과거를 비추어 본 사례(http://inuitshut.egloos.com/1936191)가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19세기까지 중국이나 조선 모두 선사 시대의 유물(돌 화살촉, 고인돌)을 보고 자신들의 과거와 연관짓지는 못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본 블로그에서는
    베트남 민족사에 있어 청동북은 무관하다?(http://inuitshut.egloos.com/1931916) 포스팅을 소개드립니다.
    이 밖에 국내에서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이선복. (2003). 벼락도끼와 돌도끼: 고고자료에 대한 전통적 인식 연구. 서울대학교 한국학 모노그래프 6.
    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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