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사절



쥐야 쥐야, 비엣 민족을 핍박하지 마라 인도차이나 ~Indo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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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쥐, 인류학의 아버지, 베트남의 가장 위대한 (유사)역사학자

지난 여름, 필자는 르엉 낌 딩(Lươong Kim Định)이라는 남베트남의 철학자에 대한 글을 썼다. 글 제목은 "베트남의 가장 위대한 (유사) 역사학자"였다.

비록 낌 딩은 철학 전공이었지만 고대 동아시아사에 대한 글을 방대하게 썼는데, 요약하자면 비엣 민족은 중국 한족 보다 먼저 중국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비엣 민족이 오늘날 사람들이 "중국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지적 전통의 근간을 창조했다는 것이었다.

위의 글에서 필자가 주장하고자 한 바는 비록 낌 딩이 (기록에 없는 정보에 기반한 주장을 내놓는 등) 전문 역사학자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여러 번 저지른 만큼 "좋은" 역사학자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낌 딩은 세계 학계를 선도하는 여러 학설(사회학, 구조주의 인류학 등)에서 영감을 받아 베트남사에 대한 대담한 전망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위대하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필자는 낌 딩의 학문이 베트남 역사에 대한 더 나은 이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에" 낌 딩이 보유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지식을 보유한 사람들이 있어서 낌 딩의 학설을 반박했고, 또 "만약에" 당시 베트남에 서로 다른 학설을 두고 논박하는 것이 학문이 진보하는데 필수적인 단계라는 것을 인지하는 학술 문화가 있었더라면 가능했으리라는 것이었다.


다만, 알다시피 베트남에는 해외 학계에 대해 낌 딩이 보유한 만큼의 지식을 보유한 역사학자가 없고, 또한 베트남에는 학설을 두고 논박하는 것이 학문이 진보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인지하는 학술 문화도 없다. 그러므로, 주요 학설로부터 영감을 받은 낌 딩의 베트남 역사를 향한 대담한 전망은 과거에 대한 더 나은 이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고(故) 따 찌 다이 쯔엉(Tạ Chí Đại Trường)이라는 역사학자가 인터넷에도 올라와있는 유고(di cảo)를 통해 지적했듯, 낌 딩의 "위대함"은 낌 딩이 내놓은 잘못된 주장들이 계속해서 유통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낌 딩은 20세기 베트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가 된 셈이다...


필자는 따 찌 다이 쯔엉이 낌 딩에 대해 내린 평가에 동의하면서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책을 한 권 읽고나니 필자가 앞에서 한 말이 옳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패트릭 윌켄이 쓴 레비-스트로스 전기다. 제목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이다.

인류학자라고 하면 (자기가 나고 자란 사회가 아닌 사회를 연구한다고 할 때) 외국어를 배운 뒤 그 사회에서 살면서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자로서 자격미달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현장 연구"는 1930년대 브라질에서 아주 짧은 시간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그조차도 아무런 어학실력을 보유하지 않다시피 한 상태로 브라질 내륙 지방을 몇 달 만에 가로지르면서 다수의 사회공동체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더러는 한 곳에 며칠 밖에 머무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레비-스트로스는 수 년이 지난 뒤에야 "현장 연구 노트"를 "작성"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는 좋은 인류학자의 자세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레비-스트로스가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라는 것일까?

레비-스트로스가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인 이유는 인류학 분야를 진일보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언어학과 같이 다른 분야의 이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대담한 주장을 내세움으로써 인류학의 진보를 가능케 했다. 또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량의 (문제투성이) 근거도 있었다. 이로써 인류학자들은 레비-스트로스가 하는 말에 골머리를 앓았고,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애를 썼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을 반박함으로써, 인류학계는 궁극적으로 인류 사회를 더욱 심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낌 딩에 대해 더 많이 읽을수록, 낌 딩이 베트남사의 레비-스트로스와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낌 딩은 역사학자로서 자격미달이었다. 그러나 그는 (구조주의 인류학과 같이 다른 분야의 이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대담한 주장을 내세웠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량의 (문제투성이) 근거도 있었다.

둘 사이의 주된 차이점은 베트남 사람들은 낌 딩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을 접한 인류학계가 그랬듯이) 낌 딩의 주장을 배척하려고 함으로써 보다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베트남사 이해를 형성하지 않았다.  


매우 "레비-스트로스"적(的)이라고 할 수 있는 낌 딩의 주장을 예로 들어보겠다. 시경(詩經)에는 큰쥐(碩鼠)라는 시가 실려있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떡잎 먹지 마라!

삼년을 너를 참았건만

우릴 불쌍히 여기지 않는구나.

맹세코 너를 떠나 

저 행복한 나라로 가리라.

행복한 나라! 행복한 나라!

누군들 영원히 신음하리?

碩鼠碩鼠、無食我苗。 Thạc thử! Thạc thử! Vô thực ngã miêu.

三歲貫女、莫我肯勞。 Tam tuế quán nhữ, Mạc ngã khẳng lao.

逝將去女、適彼樂郊。 Thệ tương khứ nhữ, Thích bỉ lạc giao.

樂郊樂郊、誰之永號。 Lạc giao lạc giao, Thùy chi vĩnh hào!



전통적
으로는 이 시를 폭압적인 정부 및 정부 관료(큰 쥐)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낌 딩이 보기는 이 시는 북서쪽에서 중국 지역으로 이주해온 한족 세력이 더 오래전부터 있어온 토착 비엣 세력을 핍박한 고대의 일을 노래한 시였다.

물론 이런 해석을 이해하려면 우선 낌 딩이 기록하지 않은 주요 사안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은 먼 옛날 중국 지역에 두 차례의 민족의 이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농경민족인 비엣 민족이 왔고, 그 뒤에 유목민족인 한족(화족華族)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안은 잠시 뒤로 하고, 낌 딩이 위 시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보도록 하자. 낌 딩은 우선 시 속의 "큰 쥐"는 한족 침입세력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위에서 "떡잎"이라고 번역한 것은 한자로 묘(苗)인데, 이 글자는 말그대로 "떡잎"이라는 뜻이면서 고대 양자강 남쪽에 살았던 비한족 집단의 이름인 유묘(有苗)에도 들어있다. 낌 딩은 유묘가 중국으로 이주해온 (비엣 민족의 선조를 포함한) 집단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낌 딩은 "삼년(三歲)"의 "삼(三)"을 두고 정확히 3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즉 유묘가 한족 보다 해당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있었다는 뜻이라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나라"라고 번역한 부분은 "락교(樂郊)"다. 두 글자의 한자음을 따져보면 즉각 고대 비엣 민족과 연관된 단어 두 개를 떠올릴 수 있다.

고대 중국의 문헌에는 (당시 중화세계를 기준으로) 남쪽 멀리 사는 인구 집단을 두고 "락월"(雒越)이라고 불렀다. 한편 교지(交趾/阯)는 한나라가 홍하 유역에 세운 행정구역의 이름이다.

그러나, "행복한 나라"라는 표현에 쓰인 "락(樂)"과 "교(郊)"라는 글자는 "락월"과 "교지"에 쓰인 글자와 다르다. 그럼에도 낌 딩은 글자들 사이의 음성적 유사성을 들어 시의 마지막 구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었다. 마지막 구절은 사람들이 "커다란 (한족) 쥐"를 피해 새로운 "락월(雒越)"의 땅을 찾아 이동하는 것을 가리키며, 그래서 "행복"(樂)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낌 딩의 해석에 따르자면, 위의 시는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겠다.

한족 침략자여! 한족 침략자여!

유묘(有苗)를 핍박하지 마오.

오랫동안 우리는 당신들을 앞서왔건만

우리 고생을 인정하지 않는구려.

맹세코 당신들을 떠나 

저 락월(雒越)의 나라로 가리라.

락월의 나라! 락월의 나라!

누군들 영원히 신음하리?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주창한 학설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본다.

낌 딩과 레비-스트로스는 둘 다 인류사회와 과거를 해석하는데 대담한 신방법론을 내놓음으로써 문헌과 인류사회의 표면 아래 "숨어있는 의미"를 밝혀내고자 하였으나, 그들의 주장은 굉장히 주관적이었고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었다.

레비-스트로스의 경우, 그가 인간 사회에 대해 내놓은 해석이 얼마나 주관적인지는 후대 인류학자들이 밝혀놓았고, 더욱 심층적인 해석을 내놓고자 하였다.

낌 딩의 경우, 그의 주장은 진지하게 논박의 대상이 된 적이 없고, 그 대신 오늘날 베트남 대학 교과서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따 찌 다이 쯔엉과 필자는 모두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본다. 낌 딩은 "베트남의 가장 위대한 (유사) 역사학자"다... 단지 우리 둘은 서로 다른 "위대함"의 요소를 가리키고 있고, 주장을 함에 있어서 신랄한 정도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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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음, 그러니까 유사역사학자를 너무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 위에 링크를 건 글도 시경의 도덕적인 해석을 따르고 있는데, 과연 2011년에도 "큰 쥐"를 풍자하고 싶었나보다.
한편 또다른 이글루스에 실린 심경호 선생님의 번역도 있다.

시경의 도덕적 해석과 제례적 해석은 지난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수 세기 동안 중국의 학자들은 시경을 도덕의 맥락에서 해석했다. 그러나 그라네는 시경을 지역 제례와 축제의 산물로 보았으며, 중국 학문 전통에서 나온 도덕적 해석과는 무관하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락월의 노래가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한족의 노래도 있을 법한데, 그들은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아마 漢華가 우승을 해서 굉장히 행복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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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9/01/07 01:54 # 답글

    으으음... 전 민속학이나 문화인류학을 좋아하는 편이라 관련 서적을 줏어읽는데 레비-스트로스의 이름을 몇 번이나 발견하곤 했지요. 언젠가 본인의 저작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는데....
    유사 역사학자와 비교하시면... 왠지.... 괴로워집니다....ㅠㅠ
    대저 유사 역사학자라 함은 이성은커녕 신념도 주장도 아닌, 아집과 신앙에 사로잡힌 인간들이니까요. 뭐, 위에도 있지만서도....
  • 남중생 2019/01/07 05:17 #

    사실, 역사학계를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면 현시점에서 "레비-스트로스 학설에 기반한 연구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마 켈리 교수님께서 본문에서 언급하셨듯이 많은 논박을 거쳐서 더 정밀한 학설들이 자리잡은 것이겠지요!

    그보다도, 이 글의 본론은 "유사역사학을 논박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방치하면 더 위험해진다는 것도 있지만, 그저 유사역사학을 퇴치하고 청소한다고만 여길 것이 아니라, 청소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물건도 찾고 뭐 겸사겸사 그런 장점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젊은 역사학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 그리고 그 이전부터 꾸준히 활동해주신 초록불 님의 활동 등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남중생 2019/01/07 05:18 #

    아, 그리고 아집과 신앙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저도 괴롭습니다ㅠ
    그건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어쩔 수 없나봐요.
  • 역사관심 2019/01/07 04:10 # 답글

    낌 딩의 경우, 그의 주장은 진지하게 논박의 대상이 된 적이 없고, 그 대신 오늘날 베트남 대학 교과서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 놀랄 노자.
  • 남중생 2019/01/07 05:08 #

    오호호호, 본문 마지막에 있는 책 표지를 기억하시면 앞으로 번역하는 글에 또 등장할겁니다.
    기대(?)하시라~
  • 함부르거 2019/01/07 14:44 # 답글

    한화 이글스 까지 마세요... ㅠㅠ 그래도 작년엔 잘했잖아요. ㅠㅠ 20년 됐지만 한국시리즈 우승도 한 적 있어요... ㅠㅠ 창단 때부터의 팬은 웁니다. ㅠㅠ
  • 남중생 2019/01/07 15:22 #

    앜ㅋㅋㅋㅋㅋ 저도 사실 좋아하는 팀이라서 저렇게 말한겁니다. 악의는 없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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